갓 입덕한 덕후의 추진력
남편은 응원팀의 암흑기, 전성기 골고루 다 맛보고 이제는 생활이, 습관이 되어버린 오래된 팬이었다.
잔잔하게 오래도록 변함없이 꾸준한 마음이 평소 남편의 성격 그대로였다.
반면 나는 뭐든 좋아하면 급속도로 빠르게 타올라서 빠르게 재만 남는 성격이었는데, 그런 나의 행동력에 남편의 심정은 밑에 첨부한 이미지 그 자체였다.
다음 경기가 마침 홈경기라 빠르게 좋은 응원석을 예매하고, 경기 당일이 되자 망설임 없이 유니폼을 두벌 구입했다.
시즌권 때문에 억지로 보러 다니던 시절에는 팀스토어의 굿즈를 구입한 적은 자주 있었다.
응원팀의 마스코트가 워낙 귀여워 팀에 관심이 없었을 때임에도 부지런히 마스코트 관련 굿즈를 구입했었기 때문인데, 유니폼을 제 돈 주고 살 생각은 전혀 해본 적이 없었다.
이전에 좋아해서 구입했던 유니폼에 마킹한 선수들이 다른 팀으로 이적만 하면 다행이고, 사건사고에 휘말리거나, 사생활 문제가 터지거나, 안 좋게 이적하거나 하는 둥의 문제들 때문에 나에게 선수 마킹이 된 유니폼이란 비싸고 자리차지만 하는 예비 쓰레기였다.
차라리 응원용 수건류는 청소용으로라도 쓸 수 있지, 유니폼은 정말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오래도록 팀에 대한 의리를 지키며, 한결같이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온 외인선수가 둘씩이나 있다.
그래서 나는 망설임 없이 유니폼을 살 수 있었다.
그리고 시즌권으로 보러 다니던 시절의 나를 몹시도 괴롭히던 여름이 되었을 때, 나는 처음으로 땀을 흘려도 불쾌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하면 땀을 덜 흘릴까 하며 온갖 더위에 대한 방책을 찾던 나였는데, 열심히 응원하며 땀을 한 바가지 흘리고 나면 오히려 더 상쾌해진다는 기분을 처음 알게 되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운동을 하는군, 하고 처음으로 운동하는 사람들이 이해가 되기도 했다.
워낙 움직이는 걸 싫어하고 누워있는 걸 좋아하다 보니 그냥 그 사람들과 나의 성향이 다르게 타고난 게 아닐까 했는데 이런 상쾌함이라면 나도 운동해 봐야겠다-라고 그때는 생각했었지만, 아직도 운동은 하지 않고 있다. (ㅋㅋ)
나보다 더위를 훨씬 더 많이 타는 남편은 무척 괴로워 보였지만, 모처럼 입덕시킨 책임감 탓인지 티를 내지 않으려 부단히 애쓰며 나를 따라 바지런히 직관을 다녔다.
그리고 경기일정을 모두 개인 달력 어플에 저장해 두고 한주 한 주 경기만을 기다리던 무렵, 한 달 정도 뒤에 제주도에서 열리는 원정경기 일정이 눈에 띄었다.
제주도, 예전에 여행 갔을 때 아주 행복하게 다녀온 기억이 아직 남아있었다.
여행과 덕질을 동시에? 당연히 가야지.
그래도 혹시 모르니 남편에게 의사를 물어보았는데, 맨 위에 첨부한 그림의 심정인 듯 보였다.
너무 먼 원정지역은 나의 하찮은 체력을 배려해 가지 않아도 된다는 암묵적 합의가 있었는데 제주도라니?
심지어 렌터카 업체와 항공편, 근처 숙소들까지 죄다 내가 알아놨고, 자신은 몸만 가서 운전만 하면 된다니.
나름 올드팬인 남편이었지만 비행기를 타고 가야 하는 원정경기는 갈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그렇게 남편은 달리는 폭주 열차 같은 나의 추진력에 몸을 실었고, 제주도 원정의 날이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