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때쯤 쓴 일기를 봤더니 온통 술 얘기만 적혀있다.
아마 응원하는 축구팀이 강등위기에 놓인 것에 대한 스트레스와 연말 분위기가 합쳐져 술을 계속 마셨던 것 같다.
날이 추우니 술 생각이 저절로 나기도 했을 것이고..
올해는 응원하는 축구팀의 강등이 확정되었지만 술을 마실 수 없는 신세가 되어버려 쓸쓸히 탄산수만 마셨다.
그래도 한 달 정도를 금주하며 스트레스받을 때 술 대신 해결하는 방법을 여러 개 찾아두었더니 그럭저럭 견딜만했다.
다만 문제는 맛있는 안주를 먹을 때였는데, 육회를 소주 없이 먹기란 불가능한 것이 아닐까 했는데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꾸준히 참다 보니 제법 버틸만한데?라는 생각에 육회도 한번 먹어볼까 했던 것인데, 육회를 한입 먹는 순간 정말 그렇게 소주 생각이 간절할 수가 없었다.
그냥 금주중이었으면 모르겠다 하고 한입 마셨을 수도 있었지만 건강이 달린 문제라 겨우 참아냈다.
예전에 육회에 사이다라니 정말 괴로운 조합이라는 식의 얘기를 쓴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이번에 그 괴로운 조합에 도전해 봤고 역~시나 괴로운 조합이었다.
사이다의 단맛이 육회의 느끼함을 더 부각시켰고, 그렇게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육회를 남겼다.
물론 환경을 생각해서 남긴 육회는 모두 남편의 안주가 되었다.
게다가 연말이 다가오고 있다 보니 더더욱 괴로워진다.
술이 싫어서 안 마시는 것과 술을 사랑해도 못 마시는 것은 정말 크나큰 차이가 있었다.
미리 선약이 되어있어서 거절도 못 하고 나간 술자리에서 사실은 컨디션이 이러이러해 나는 음료수를 마시겠다고 선언했고, 일행 모두가 흥겹게 취해가는 속에서 혼자 맨 정신으로 앉아있으려니 고문이 따로 없었다.
그렇다고 술 못 마시는 나 때문에 분위기가 가라앉는 것도 신경이 쓰여 억지로 흥겨운 척하면서 분위기를 맞추고 있자니 옛날에 술 안 마시던 나는 도대체 어떻게 이 분위기에 어울렸던 건지 궁금해졌다.
생각해 보니 술자리에서 술을 안 마신적이 없었던가..?
이건 진정으로 내가 온전히 받아들여야 할 나의 업보다..
술이 없는 일상에 적응이 좀 되려니까 연말이라는 큰 시련을 넘어야 한다니..
인정하지 않으려 했지만 나는 정말 심각한 알코올중독이었나 보다.
어느 연예인이 업무에 지장만 주지 않으면 알코올중독이 아니다, 애주가다.라고 하는 걸 본 적이 있는데 술을 끊고 보니 술 생각이 계속 나는 거면 그냥 알코올중독이 맞는 것 같다.
우리나라가 술에 관대하다 보니 기준이 좀 느슨할 뿐이지, 이 정도면 중독이 맞다.
맨 정신으로 지내다 보니 자기 객관화가 조금씩 되기 시작하는 것 같다.
분명 저녁에 맑은 정신으로 책을 읽고, 취미생활을 즐기는 것은 틀림없이 행복한 일인데 왜 자꾸만 술에 취해 홍냐홍냐 거리던 지난날들이 그리워질까..
알코올에 흠뻑 절여놓은 뇌가 아직 해독이 덜 된 모양이다.
오늘도 나는 반주를 그리워하며 술 없는 안주를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