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상 서른은 한참 전에 지났는데 요즘에서야 서른 즈음에 노래가 이렇게 와닿을 수가 없다.
서른이 됐을 때는 드디어 이십 대를 지났다는 홀가분함이 더 컸다.
이십대라는 빛나는 청춘에 이것도 해봐야 될 것 같고, 저것도 해봐야 될 것 같고, 해야 될 것도 많은데 항상 반짝반짝 빛이 나야 될 것 같고, 쉬면 안 될 것 같은 초조함과 압박감을 드디어 내려놓게 된 홀가분함.
갑자기 왜 이리 감성적이 되었냐... 하면 내 자기소개에 적힌 글귀 때문이다.
술, 축구, 게임 좋아하는 사람
나를 요약하면 이랬었다. 몇 달 전만 하더라도 그랬었다.
뒤에 붙어있는 기억력이 어쩌고 저쩌고는 술을 안 마시던 어린 시절에도 안 좋았긴 하니까 넘어가야지.
아무튼 나를 소개하라고 하면 직업으로 소개하기엔 특색도 없는 직장인이었고, mbti만으로 설명하기에는 같은 mbti라도 성격은 얼마나 다양하며, 어떤 자리냐에 따라서 천차만별로 바뀌기도 하는 거니까.
그래서 그냥 내가 사랑하는 것들로 나를 설명하기로 했었는데 왜 사랑은 영원할 수 없는 걸까..
열역학 제2법칙 때문일까? ㅎ
사실 셋다 아직도 좋아하지만, 좋아해도 이별해야 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술은 B형 간염 때문이고, 축구는.. 강등까지는 괜찮았는데 내부 비리라던가, 이런저런 복잡한 문제들이 하나씩 튀어나와서 나를 힘들게 만들었다.
어릴 적부터 스트레스를 받으면 몸 여기저기 고장이 나거나 아프기 시작했는데, 이번에는 축구 덕분에 안 그래도 지병이 있건만 병 한 가지가 더 생겼다.
작년에도 강등될락 말락 할 때 심한 어지럼증과 이명증상이 있다가 잔류가 확정됨과 동시에 사라졌었는데, 올해는 강등까지는 미리 각오한 터라 괜찮았지만 그 이후의 문제들을 접하고 다시 재발해 버린 것이다.
메니에르 증후군인지 뭔지, 이것도 완치가 어려운 놈으로 관리가 중요하다고 한다.
관리방법은 스트레스 안 받기인데.. 그럼 축구 안 봐야지 어떡해 암만 좋아해도 내 몸이 제일 소중한걸..
게임은 20대 시절부터 함께해 온 퇴행성 관절염 때문에 이별해야 될 상황이다.
물론 소소하게 천천히 혼자 많은 컨트롤이 필요 없는 게임을 하면 그만이긴 하다.
컨트롤러로 하는 동물의 숲이나, 심즈 같은 걸 하면 손목이 아프지도 않고 그럭저럭 즐길 수 있다.
다만 문제는 내가 파밍이나 컨트롤이 필요한 온라인 rpg게임도 좋아한다는 점이다.
퇴행성 관절염이 생긴 것도 디아블로 3 덕분인데, 그 뒤로 손목에 무리가 안 가는 게임만 소소하게 즐기며 손목의 시큰거림이 조금 돌아오는 듯했으나 디아블로 2의 리메이크 게임이 나오고는 겨울만 되면 텀블러 뚜껑도 못 여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그쯤 되고 보니 사태의 심각성이 느껴져 집에 오면 게임 대신 책을 읽거나 손목에 무리가 안 가는 류의 게임만 소소하게 즐기다가 반주에 정착하며 손목의 건강도 돌아오는 듯했지만..
반주를 즐길 수 없게 되고 보니 다시 게임 생각이 나서 아이온 2에 손을 대고 말았고, 나는 지금 시큰거리는 손목을 쥐고 타자를 치고 있다.
나란 인간은 왜 이렇게 도파민에 취약할까..
자기소개를 바꿔야 될 것 같다. 도파민에 약합니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