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낳는다고요..
앞의 글에서도 쓴 적이 있지만 B형 간염 활동성 진단을 받았고, 의사 선생님은 의료인으로서 해야 할 당부들을 해주셨다.
그중에는 당연히 수직 감염의 위험성과 함께 임신하기 전의 주의사항들과 그에 관한 세세하고 긴 설명들도 있었다.
그 부분은 대충 흘려들었는데, 다른 부분보다 길어지자 집중력이 훅 떨어져서 살짝 송구한 마음으로 말을 자르며 저는 딩크족이라 다른 부분으로 넘어가주셔도 될 것 같습니다 하고 말씀드렸다.
의사 선생님은 그건 모르는 일이다. 생각은 바뀌기 마련이다. 라며 끝까지 세세한 설명을 이어가셨고, 나는 조금 피곤해졌다.
B형 간염이라 빨리 지치기도 지쳤겠지만, 사람을 설득하기가 조금 지쳤다.
이제 노산인 나이라서 조금 자유로워졌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이런 설명을 해야 되나 싶어서 조금 지쳤다.
물론 의사 선생님은 의료인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하신 거라 생각한다.
오히려 설명을 안 해주시면 그 부분에 항의하는 사람들이 더 많겠지..
내가 지쳤다는 것은 딩크족이에요~ 했다가 말을 바꿔 딩크족이었어요~ 하는 분들 덕분이다.
이분들 덕분에 나는 내가 정말 아이를 가질 생각이 전혀 없다. 안 낳고 싶다. 앞으로도 안 바뀐다는 것을 상대의 기분이 상하지 않게 구구절절 설명해야만 한다.
사회가 요구하는 정상성을 벗어나는 것부터 이미 설명을 길게 해야 하는 부분인데, 진심이라는 것까지 덧붙여 설명해야 된다니..
이 부분은 비혼주의자인 친구들도 비슷한 피로를 느끼는 것 같았다.
비혼주의였던 나를 결혼하게 만든 운명적 사랑~ 이런 내용의 브이로그나 책들이 많이 나오다 보니 자신은 정말 결혼 생각 자체가 없는데 자꾸 괜찮은 사람을 못 만나서 그런다는 식으로 몰아간다는 것이다.
결혼 생각이 아직 없는 것과 결혼 생각이 아예 없는 것은 아주 큰 차이가 있음에도 사람들이 자꾸 그런 식으로 몰아가는 것은 비혼주의를 밝힌 뒤 말을 바꿔 결혼하는 분들이 큰 몫을 한 게 아닐까?
뭘 하든 간에 서로 존중하고 넘어가는 사회가 되면 가장 희망적이겠지만 그게 아니다 보니 자꾸 말을 바꾸는 사람들 덕분에 나의 진정성(?)을 어떻게 증명해야 되나 싶어진다.
그리고 노산인 나이가 되어서 이제는 임신 관련 얘기를 덜 듣게 되어 편안하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는데, 요즘은 40~50대에도 시험관으로 도전하는 사례들이 많아져서 그런지 아직도 날 포기(?) 하지 않는 분들이 다시 생기기 시작했다.
이 정도 되니 50대가 되어서도 언제 낳을래~~~ 하는 얘기를 듣게 되는 게 아닐까.. 겁이 덜컥 난다.
내가 딩크족으로 사는 제일 큰 이유는 나의 편안함과 기타 등등이 제일 우선이지만, 부가적으로는 기후재앙에 대한 걱정도 있었다.
만약에 진짜 얘기치 못할 사고로(ㅎ) 아이가 생긴다면 그 아이가 살아가야 될 세상이 너무 험난할 것 같았다.
게다가 남편이나 나나 가장 좋아하는 취미가 게임이다 보니 모범적인 부모가 되어주기도 힘들 것 같았고, 경쟁 사회에서 아이가 이겨낼 수 있도록 받침이 되어주기는 더더욱 힘들 것 같다는 이유도 있다.
이렇게 심사숙고할수록 아이를 안 가질 이유들이 더욱 확고해져서 안 가지는 건데 왜 낳으면 다 해결된다는 식으로 말을 얹는 걸까..
얼마 전 조금 친해진 단골 가게 사장님도 애는 몇 살이냐고 물어오셔서 딩크족이라 아이가 없다고 답변하니 애를 왜 안 낳냐며, 애가 있어야 좋다, 애가 있어야만 부부사이가 확실해지는 거라는 식으로 덕담 아닌 덕담을 해주신 적이 있다.
본인 입장에서야 호의로 하시는 말씀이라 그럼 저흰 가짜부부인가 보네요~ 하고 웃고 넘어가긴 했었다.
나의 재치가 조금 자랑스러워 부모님과의 식사자리에서 이 에피소드를 들려드렸는데, 이 얘길 들으신 아빠의 답변에 빵 터져서 그 답변으로 이번글을 마무리해야겠다.
-그렇게 좋으면 본인들이 더 낳으면 되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