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에 일곱

11. 우주보다 유주

by 늙은 아빠

바람에 녹음이 실려 코끝을 간지럽히는 오월이었다. 지금의 아내와 함께 떠났던 첫 여행이었고 상대를 향한 일방적인 마음 탓에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의 연속이었다. 어차피 마음의 크기가 같을 수는 없지만 순간의 주저함에도 불안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최대한 치밀하게 준비해야 했다.

제주도 성산일출봉 주차장에서 내려 매표소를 향할 때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좀 전에 아기 낳았어. 누나도 아이도 다 건강하니까 걱정하지 말고.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삼 남매, 남동생이 태어난 1979년 이후 5명의 가족 구성원으로 살아온 우리 가족은 누이의 결혼과 함께 6명이 되었고, 드디어 오늘 한 명이 더 추가되어 7명이 되었다. 마흔이 넘어 천덕꾸러기 대접받던 누이가 맘 좋은 남자를 만나 쫓기듯 서울을 떠나 전라도 광주로 터전을 옮기고 멀어진 거리만큼 마주치지 않아도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각자의 삶에 큰 걱정이나 궁금증을 유발하지 않았었다. 내 누이에 대한 마음도 그러한데 같은 시간대를 살아왔다고 해도 몇 번 마주치지 않았던 새로운 가족 구성원에 대한 기대가 있을 리 만무했다. 부모의 걱정, 특히 아버지의 고민을 일소에 해결해 준 감사함을 가끔 떠올리는 정도였던 것 같다.



그런데, 조카의 탄생은 매형의 등장과는 다른 차원의 경이로움이었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것이 생겨 우리 가족의 범위를 확장한 것이다. 형용할 수 없는 궁금증과 설렘이 온몸을 휘감았다. 일흔이 넘은 아버지와 일흔을 바라보는 어머니에게 할아버지, 할머니가 될 수 있게 해 준 아이에게 고마울 따름이었다.



그렇게 처음으로 가족 단톡방이 만들어졌다. 하루에 수십 번 신생아의 사진이 올라왔고, 나와 남동생은 초 단위로 다른 사진을 요구했다. 그 수많은 사진 속 아기의 모습이 별반 다르지 않았겠지. 고개를 좌우로 돌려 눕혔거나 감거나 실눈을 뜨는 정도가 아니었을까. 아이의 매 순간을 상상하는 일이 기쁨이고 설렘이었다. 나에게도 남동생에게도 아버지, 어머니, 우리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그러했다.



평소 퇴근 후 저녁 식사 자리에서나 얼굴을 마주하고 말없이 식사하는 것으로 등본상 가족 구성원임을 확인하던 우리가 새로운 가족 구성원의 탄생을 주제로 웃으며 이야기를 멈추지 않는 경험은 경이로운 일이었다.






출산 후 50여 일이 지났다. 단지 마흔이 넘었다는 이유로 집안의 우환처럼 떠남이 기쁨이었던 누이는 새 생명을 안고 모두의 간절한 기다림 속에 본인이 나고 자랐던 서울로 당당히 돌아왔다. 누이를 기다린 건 아니었을지라도 누이 덕분에 나의 유주가 할아버지와 할머니, 삼촌이 있는 서울집에 첫발을 내딛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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