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스탕
1월의 첫 번째 주말 일요일이었다. 습관처럼 확인한 스마트폰의 기상 예보 앱은 매우 화창한 날씨를 예고하고 있었지만 그 아래 적힌 숫자가 내 동공을 확장시켰다. 섭씨 영하 1도라니. 한국이나 시카고에 사는 사람들이 들으면 코웃음을 칠 온도일지 모르지만 일 년 내내 온화한 기후에 적응해 버린 캘리포니아 러너들에게 이 숫자는 재난 경보나 다름없었다. 이곳의 겨울은 기껏해야 영상 4도에서 10도 사이를 오가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영하라니. 이것은 분명 북극의 한기가 내비게이션을 잘못 찍고 캘리포니아로 남하한 것이 분명했다.
문제는 내 옷장이었다. 나의 러닝 기어 데이터베이스에는 영하의 기온에 대응할 수 있는 항목이 존재하지 않았다. 반팔 티셔츠와 4인치 쇼츠 그리고 얇디얇은 티셔츠가 전부인 나의 러닝 컬렉션은 캘리포니아의 태양 아래서 땀을 배출하는 데에만 최적화되어 있었다. 영하의 날씨에 반팔과 반바지를 입고 나가는 것은 운동이 아니라 냉동 실험에 자원하는 꼴이었다. 하지만 나는 주어진 환경 변수 내에서 최적의 해를 찾아내는 직종이 아니던가. 나는 옷장을 뒤져 레이어링 시스템을 가동했다. 반팔 런닝티셔츠 위에 하얀 긴팔 면티셔츠를 걸쳤다. 하체는 어쩔 수 없이 반바지를 입되 긴 양말을 신어 노출 면적을 줄이는 것으로 타협했다.
가장 치명적인 약점은 손이었다. 달리기를 하면 혈액이 대근육으로 몰리면서 말초신경이 분포한 손끝은 급격히 차가워진다. 영하의 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며 달릴 때 장갑이 없다면 손가락이 툭 하고 떨어져 나갈 것 같은 고통을 맛보게 된다. 오래되서 고무 코팅들이 떨어져 나가고 있는 장갑을 찾아 냈다. 스타일은 엉망이 되겠지만 동상에 걸리는 것보다는 나았다. 그것마저 없었다면 후드 티셔츠 소매를 길게 늘려 손을 감추면서, 펭귄처럼 뛰어야 했을 것이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현관문을 열었을 때 맞이한 새벽 공기는 날카로운 칼날 같았다. 초보 러너에게 이 순간은 가장 큰 진입 장벽이다. 포근한 이불 속의 안락함과 문밖의 현실 사이의 괴리감. 신발 끈을 묶고 현관을 나서는 순간 멘탈이 추위에 얼어붙어 바사삭하고 부서지는 환청이 들릴 지경이다. 달리기를 시작하면 찬 바람이 온몸의 피부를 때리고 귀는 떨어져 나갈 듯 얼얼해지며 목장갑을 낀 손가락 마디마디가 쑤셔온다.
이 고통은 초보자나 베테랑이나 평등하게 찾아온다. 다만 그 고통을 해석하는 알고리즘이 다를 뿐이다. 초보 러너의 뇌는 이 고통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막연한 공포가 함께 하지만, 베테랑의 뇌는 경험 데이터를 바탕으로 희망 회로를 돌린다. 버티면 몸의 보일러가 가동되고 체온이 올라가면서 이 추위는 상쾌함으로 치환될 것이다.
사실 이런 날씨에는 신년의 결심 따위는 무력해지기 십상이다. 새해 첫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정기 런에 나오겠다고 투표한 인원은 평소의 반토막이었다. 추위라는 변수는 러너들의 의지 함수 값을 가차 없이 떨어뜨렸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클럽장으로서 누군가는 나와 있을 것이라는 믿음과 아무도 안 나오면 혼자서라도 이 추위를 정복하겠다는 오기를 가지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무엇보다 차가운 공기가 미세먼지를 밀어낸 뒤 찾아오는 그 투명한 시야와 지평선 너머로 떠오르는 황금빛 일출이 주는 장엄함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약속 장소에는 나를 포함해 총 네 명의 용사가 모여 있었다. 3월 1일에 있을 나파밸리 마라톤 풀코스를 준비하며 비장한 각오를 다지고 있는 예비 풀 마라토너. 지난 하반기 허리 부상으로 긴 재활의 시간을 보내고 복귀한 베테랑 러너. 그리고 이제 막 달리기의 맛을 알아가고 있는 열정 넘치는 초보 러너. 마지막으로 그들에게 달리기의 불꽃을 계속 지펴야 하는 나. 이렇게 넷이었다. 우리는 서로의 입김을 확인하며 인사를 나눴다.
'와 오늘 진짜 춥네요. 그런데도 나오시다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
나는 너스레를 떨며 분위기를 띄웠다. 추위에 굳은 몸을 갑자기 움직이면 부상의 위험이 크다. 우리는 평소보다 훨씬 느린 페이스로 웜업을 시작했다. 달리기가 시작되자마자 자연스럽게 두 그룹으로 나뉘었다. 25km 장거리 지속주(LSD)를 계획한 나파밸리 러너와 내가 선두 그룹을 형성했고 아직 장거리가 부담스러운 부상 회복 러너와 초보 러너가 후미 그룹을 형성했다. 후미 그룹은 12km 정도를 달리고 컨디션을 봐서 추가로 더 달릴지 결정하기로 했다.
우리는 속도를 올리기보다는 일정한 리듬을 유지하며 거리를 쌓는 데 집중했다. 나파밸리 러너와 나란히 달리며 근황 토크를 시작했다. 자녀 교육 문제부터 시작해서 요즘 핫한 러닝화의 미드솔 기술력에 대한 분석까지 대화의 주제는 종횡무진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고강도 훈련이 아니라면 이렇게 옆 사람과 대화를 나누며 달리는 것은 지루함을 없애주는 최고의 진통제이자 엔돌핀이다. 입으로는 수다를 떨고 다리로는 땅을 미는 멀티태스킹 속에서 우리는 추위를 잊어가고 있었다.
한참을 달리다 뒤를 돌아보니 후미 그룹과의 거리가 꽤 벌어져 있었다. 시야에서 그들이 점처럼 작아졌을 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날씨도 추운데 우리끼리만 너무 앞서 나가는 건 아닐까. 뒤에 처진 사람들은 지금쯤 찬 바람을 맞으며 외로움과 싸우고 있을지도 모른다. 비록 페이스는 다르지만 우리는 같은 시간에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팀이 아닌가. 나는 옆에 있던 나파밸리 러너에게 제안했다.
우리 잠깐 뒤로 돌아서 저분들 데리고 올까요?
저 멀리서 열심히 달려오는 두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우리를 발견한 그들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우리는 서로 교차하며 손을 흔들고 파이팅을 외쳤다. 잠시 속도를 늦춰 그들과 나란히 달리며 호흡을 맞췄다. 그때 자전거 라이딩 경력이 있는 부상 회복 러너가 숨을 헐떡이며 흥미로운 이야기를 꺼냈다. 이렇게 앞서간 사람들이 뒤처진 사람들을 데리러 다시 오는 걸 자전거 동호회에서는 무스탕이라고 불러요. 전투기가 쓩 하고 날아가서 아군을 구해오는 느낌이라서 그런가 봐요.
무스탕? 전투기 P-51 머스탱을 말하는 건가? 아니면 야생마? 나는 그 순간 또다시 어원의 유래를 분석하고 싶은 욕구가 솟구쳤지만 일단은 그 단어가 주는 어감이 꽤나 멋지다고 생각했다. 빠르고 강력한 존재가 곤경에 처한 동료를 구하러 가는 영웅적인 이미지. 우리는 그 길 위에서 서로에게 무스탕이 되어주었다.
그렇게 몇 번의 무스탕을 반복하며 6km정도까지 함께 달렸다. 어느덧 해는 솟아올랐고 등줄기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추위에 대한 공포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이제부터는 각자의 훈련 목표에 맞춰 거리를 조절해야 할 시간이었다. 나는 후미 그룹에게 인사를 건넸다. 이제 몸도 다 풀렸으니 각자 페이스대로 뛰시죠. 먼저끝나면 기다리지 마시고 가셔도 됩니다. 혹시 커피 한잔하실 거면 연락 주시고요. 너무 추우니까 감기 조심하세요.
우리는 다시 속도를 높여 25km를 향해 나아갔다. 남은 거리는 오롯이 나와 나파밸리 러너의 몫이었다. 묵묵히 마일리지를 쌓아가는 동안 내 머릿속에서는 아까 들은 무스탕이라는 단어가 계속 맴돌았다. 집에 돌아가면 꼭 찾아봐야지.
LSD 목표 거리인 25km를 거의 다 채우고 출발 원점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두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연락이 없는 것을 보니 먼저 운동을 마치고 귀가한 모양이었다. 하긴 영하의 날씨에 땀 흘린 채로 밖에서 기다리는 건 고문이나 다름없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잘 뛰고 가셨나 보네요. 우리도 마무리하죠.
나파밸리 러너와 나는 가민 시계의 거리가 정확히 25.00km가 되도록 공원을 이리저리 배회했다. 러너들에게는 숫자의 깔끔함을 맞추려는 강박증이 있다. 24.98km에서 멈추는 것은 화장실에서 뒤처리를 안 하고 나오는 것만큼이나 찝찝한 일이다. 그렇게 마지막 200미터를 채우기 위해 주차장 구석을 돌고 있는데 저 멀리 두꺼운 패딩 재킷을 껴입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두 사람의 형상이 보였다.
설마?
가까이 다가가 보니 아까 헤어졌던 부상 회복 러너와 초보 러너였다. 그들은 덜덜 떨면서도 우리를 보자마자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미안함과 고마움이 동시에 밀려왔다. 그들은 자신들의 운동이 끝난 지 30분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완주하는 모습을 보고 인사하고 가겠다며 그 추위 속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아까의 그 단어 무스탕이 너무 궁금해서 검색창을 두드렸다. 자전거 용어 무스탕, 사이클 무스탕. 하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그런 용어의 실체는 발견되지 않았다. 널리 쓰이는 표준 은어도 아니었고 자전거 커뮤니티에서도 생소한 단어였다. 아마도 부상 회복 러너가 예전에 활동했던 특정 동호회에서만 쓰던 그들만의 은어였던 모양이다. 무스탕(Mustang)이라는 단어가 주는 빠르고 강인한 이미지 때문에 잽싸게 달려가서 뒤처진 사람을 챙겨온다는 의미로 붙인 별명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추론해 본다.
오히려 달리기 동호회에서는 이와 유사한 행위를 일컫는 아주 예쁜 우리말 용어가 있다. 바로 마중런이다. 오는 사람을 나가서 맞이한다는 뜻의 마중. 주로에서 먼저 목표를 달성한 러너가 아직 힘겹게 달리고 있는 동료를 위해 코스를 거슬러 올라가 함께 뛰어주는 행위. 그것은 단순한 동반주가 아니라 당신을 혼자 두지 않겠다는 연대감의 표현이다.
오늘 우리는 주로 위에서 서로에게 마중을 나갔다. 춥고 힘든 길을 혼자 가게 두지 않으려 되돌아 달려갔다. 그리고 훈련이 끝난 후에는 주차장에서 우리를 기다려주는 또 다른 형태의 마중을 받았다. 먼저 간 사람이 되돌아오고 먼저 끝난 사람이 기다려주는 이 순환 속에서 영하 1도의 추위는 설 자리를 잃었다.
일상에서 누군가를 마중 나가는 일이 일 년에 몇 번이나 있을까. 공항에서 귀국하는 가족을 기다릴 때나 혹은 아주 귀한 손님이 오실 때가 아니고서는 우리는 대부분 약속 장소에서 스마트폰을 보며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데 익숙하다. 내가 있는 곳에서 편하게 기다리는 것이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달리기는 굳이 땀을 흘리며 그 사람이 있는 곳까지 달려가는 비효율을 선택한다. 그 수고로움이 바로 마중의 본질이다.
무스탕이면 어떻고 마중이면 어떠랴.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 차가운 아침 서로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속도를 줄이고 방향을 돌렸다는 사실이다. 이 추운 날 우리 클럽의 의리를 확인하게 해 준 마중. 참 기분 좋은 단어다. 굳이 달리기에서까지 그런 의미를 찾아야 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대답하겠다. 달리기야말로 사람과 사람이 가장 정직하게 만나는 행위이기에 그 마중의 의미가 더욱 빛나는 것이라고.
그 주차장의 풍경은 아마 오랫동안 내 기억의 저장소에 따뜻한 파일로 남아있을 것이다. 영하의 날씨를 녹인 것은 태양열이 아니라 사람의 온기였다. 다음번 정기 런에서도 나는 기꺼이 누군가를 위해 뒤를 돌아볼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함께 달리는 이유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