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정말 나일까?

누구냐, 난

by 다토

숙제, 심부름, 방 청소... 하기 싫은 것들에 지쳐 버린 어느 날, 나에게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 '가짜 나'를 하나 만들어야겠어! 그래서 그 녀석에게 몽땅 시켜야지!" 나는 얼른 모아 둔 용돈을 탈탈 털어서 도우미 로봇 한 대를 샀다. 집으로 가는 길에 로봇에게 '가짜 나 작전'을 설명했다.

"오늘부터 너는 가짜 내가 되는 거야!"

"네, 주인님!"

"가짜라는 게 들키지 않도록 나랑 똑같이 행동해야 해."

"그렇게 할게요. 그럼, 주인님에 대해 자세하게 알려 주세요."

"어떤 것부터 알려 주면 좋을까...?"

[이게 정말 나일까?] 글, 그림/ 요시타케 신스케

나는 분명 하나인데, 타인이 말하는 '나'도... 하나인가? 가족들이 보는 나의 모습, 회사 동료들이 보는 나의 모습, 친구들이 보는 나의 모습, 어른들이 보는 나의 모습, 어린아이들이 보는 나의 모습, 커뮤니티에서 처음 만난 사람이 보는 나의 모습... 혼자일 때의 나와, 관계 속에서의 나는 모두 같은 모습일까? 과연 어떤 것이 진짜 내 모습일까? 나는 어떤 사람일까?


나도 내가 어려운데, 타인이 나를 정의한다는 것, 내가 누군가를 평가하고 판단할 수 있다는 건 대단한 착각일지 모른다. 사람들은 한 개인의 일부 모습만을 보고 쉽게 평가한다. 이것 또한 내 경험의 한 부분일 뿐이지만, 살면서 마주한 본인이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책을 많이 읽는다 자부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본인의 판단이 정확하고 옳다 믿으며 타인에게 평가와 판단의 도장을 쉽게 찍어댔다."딱 보면 알아."라는 말도 비슷하게 등장하는 언어였다. 기업가의 자녀들에게서도 공통된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사람을 빠르게 파악해야 하는 위치에 있어서였다 이해는 해보지만, 보이는 말과 태도에서 불편함이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사람은 쉽게 도장을 찍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각자에겐 다양한 모습이 있고, 다양한 모습 전부가 한 사람이다. 대상과 상황에 따라 다른 모습들이 나오는 나는. 지극히 정상이다. 사람은 여러 감정, 성격, 면모가 동시에 존재하는 복합적인 세계다. 그러니 다양한 내 모습에 혼란스러울 필요가 없다. 그저 나의 다양성이다. 나는 그냥 내가 아니다.



이름, 성별, 생일, 키, 몸무게, 혈액형, 가족관계, 사는 곳. 나를 가장 쉽게 정의할 수 있는 것들이다.

빈틈 많은 박 아무개. 여자사람. 여름에 태어나 수박을 좋아하는. 키는 171cm, 몸무게는 48kg였던 시절이 있긴 했었는데 지금은 너무 멀리 와버렸구나. 혈액형은 B형, 가족관계는 부모님과 언니, 남동생, 형부, 올케, 조카 1,2,3호. 그리고 생각보다 잘 삐지는 시바 한 마리. 서울 살다가 얼마 전 경기도로 이사를 했다.


나는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있다. 양재천, 커피, 고래, 하리보 지렁이 젤리, 고기, 파란색, 파란 장미, 해바라기, 곰돌이푸, 드럼, 향수, 필레아페페를 좋아한다. 강의 듣기, 안 해본 거 해보기, 비 오는 날 음악 들으며 멍 때리기, 온천, 청바지에 박스티, 혼자만의 시공간, 헬스장에서 무게 치기(?), 숨이 가쁠 때까지 뛰기, 엄마랑 전화로 수다 떨기, 돼지 저금통에 동전 모으기, 목표 정하기, 방탈출, 머리 좋은 사람의 천재성 구경하기, 낙서하기, 슈돌에 나오는 정우, 샤갈의 그림, 어르신들과 아이들, 추리물, 뻔하지 않은 전시, 강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공연, 딸기 생크림 케이크... 기차 타는 것도 너무 좋아한다!! 긴 시간 동안 음악을 듣고 여러 생각들에 빠지고 이것저것 끄적이고. 좋다 좋다 너무너무 좋다. 좋아하는 것들은 끝없이 떠오른다. 떠올리기만 해도 기분 좋고 설렌다. 좋아하는 건 한없이 떠오르는데 싫어하는 것들은 한참 고민하게 된다. 나이를 먹어가는 것에 대한 장점으로 싫어하는 것이 줄어든다는 것을 꼽을 수 있겠다. 어릴 때 싫어하던 음식이 이제는 없어서 못 먹는 음식이 되었다는 걸 느꼈던 순간. 싫다는 감정은 생각보다 쉽게 흩어버릴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했었다. 나는 무엇을 싫어하는가? 음... 찬물 샤워. 여름에도 찬물 샤워는 조금 어렵다. 통제. 매우 취약한 부분이다. 더위. 여름에 녹아내리는 눈사람 재질이다. 미지근한 물. 한겨울에도 아이스를 선호한다. 맛집 줄 서기, 쓰레기 함부로 버리기, 사람 많은 곳, 나에게 시선이 집중되는 시간(극복해 가야 할 과제), 낯선 사람들 사이에 끼어 있기.(나에겐 도전의 개념이다.)

나는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있다. 자전거 타기, 어린아이와 말싸움하기. 좋아하는 일에 몰입하기, 나른한 날에 시 쓰기, 타인의 장점 찾기, 처음 보는 사람 팔짱 끼기(당연히 동성의 경우에만!!), 누군가의 자존감을 지켜주기 위한 노력, 혼자 여행 다니기, 크게 성공한 내 모습 상상하기, 여러 일들을 굉장히 산만하게 해내기, 집에 놀러 온 누군가의 배를 꽉 채우기... 등등을 할 수 있다. 고소공포증이 있어 놀이 기구 타기는 힘들다. 짐작하건대, 평생 스카이 다이빙이나 번지 점프는 안될 것 같다. 물을 무서워하는 편이다. 물이 허리까지만 와도 긴장하는 내가 프리다이빙에 도전했었다. 정말 못할 것 같은걸 눈 꼭 감고 해내면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길래, 높은 곳은 죽어도 안될 것 같길래, 깊은 물에. 도전해 봤었다. 강습 시작하고 30분 동안 그냥 뛰쳐나갈까 말까만 계속 생각했었다. 안될 것 같았다. 터질 것 같은 심장과 머리끝까지 곤두세우는 날카로운 감정이 솟구치는 나를, '이거 한다고 안 죽어, 여기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기절하면 알아서 구해줄 거야. 그냥 한번 해봐~'하면서 다독이는 내가. 끈질기게 싸우다가 결국은 해냈던 기억. 몸 잘 쓴다고 칭찬도 받았다. 한 번 강렬하게 경험하고 나니 , 이제 어느 정도는 감당이 된다. 아직 물에도 못 뜨는 사람이지만 올해는 수영에도 도전해 보려 한다. 할 수 없는 일도 노력으로 개선해 나갈 수 있다.


나의 흔적. 나는 정리정돈을 잘하는 편이 아니다. 여기저기 벗어놓은 옷, 매번 잃어버리고 찾기를 반복하는 핸드폰과 지갑. 먹을 때도 잘 흘린다. 분명 1인 가구로 오래 살았는데 언제나 우리 집엔 내가 모르는 대여섯 명의 누군가가 함께 하는 것 같은 기분. 분명 나 혼자 이렇게 어질렀을 리가 없어(?). 이것도 지금은 많이 노력 중이긴 하다. 바로바로 치우려는 노력. 깨끗한 공간을 유지해 보려는 노력. 나에게 좋은 환경을 제공하고자 하는 노력.


너무 행복하고 너무 슬프고 너무 즐겁다가 너무 화가 나기도 했던 과거의 나는. 이제는 많이 무던해진 듯하다. 대체적으로 좋음. 더 좋음과 덜 좋음 사이. 슬프거나 화나는 감정을 어느 정도 유연하게 흘려보내는 법을 터득한 것 같다. 좋다는 감정은 한 없이 풀어주는 편. 하루 속에서 좋아하는 것들을 찾는 것을 즐기는 편. 감정은 소중히 다루어 줄 때 가볍게 떠나는 것 같다. 그게 어떤 감정이던 말이다.



오로지 나만 볼 수 있는 세계. 그 안에는 무엇이 있을까? 할머니 냄새 실컷 맡고 싶은 나, 언니에게 사과해야 하지만 아직은 가라앉힐 시간이 필요한 내 마음, 나를 오해하던 그 사람, 까만 세상 속에서 주저앉아 있던 나도 있고. 나의 창작물들이 자유롭게 살아 숨 쉬고. 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신나게 수다를 떠는 곳. 먹다 남은 과자. 뒷 이야기가 궁금한 책. 이불킥 하고 싶은 그때 그 기억. 용기 내지 못한 마음.


주변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존재인가? 부모님께 나는 삼 남매 중 가장 신뢰도가 높고, 타지에 있는 언니와 동생에게 부모의 역할을 대신해 주길 바라게 되는 사람. 언니에게 나는, 착하지만 못된 동생. 동생에게 나는 까탈스럽지만 뭐든 해주는 호구. 친구들에게 나는, 여전히 우물가에 내놓은 어린애. 지인들에겐 힘들 때 기대고 싶은 큰 바위. 외가에선 애교쟁이 핵인싸, 친가에선 조용하고 차분하고 일 잘하는 모범생. 우리 집 시바에겐 떼쓰기도 좋고 애정표현하기도 좋은, 조카들에겐 독차지하고 싶은 존재. 누군가에겐 차갑고 다가가기 어려운 사람, 누군가에겐 세상 만만하고 말랑한 사람, 누군가에겐 빌런, 누군가에겐 구원자. X에겐 헤어졌어도 사업하면서 회계장부는 맡기고 싶은 사람.




나는 아직 만들어지고 있는 중이고, 시시각각 변하기도 하니까. 앞으로 마주하게 될 모든 것들 안에서 또 변해갈 나니까. 우리는 모두 각자만의 이유로 변해 간다. 그러니 이것도 저것도 그것도 모두 나인 것을. 다양한 모습 모두 내 안에 존재하는 예쁜 빛깔들인 것을. 한 가지 모습으로 정의되지 않는다고 해서 굳이 진짜와 가짜로 이것저것 구분 지을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말랑한 나도, 거친 나도, 흔들리는 나도, 단단한 나도, 모두 '나'이다. 비추는 빛의 각도에 따라 색이 달리 보인다고 해서 다른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나는 그 모든 색을 품은 하나의 고유한 존재이니까.


귀찮으면서도 왠지 조금은 즐거운 일. 나에 대해 생각해 보는 일.



나는 단 한 명밖에 없어. 할머니가 말씀하셨는데, 인간은 한 사람 한 사람 생김새가 다른 '나무'같은 거래. 자기 나무의 '종류'는 타고나는 거여서 고를 수 없지만 어떻게 키우고 꾸밀지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대. 나무의 모양이나 크기 같은 것은 상관없어. 자기 나무를 마음에 들어 하는지 아닌지가 가장 중요하대.


[이게 정말 나일까?] 글, 그림/ 요시타케 신스케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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