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하고 부드럽게, 마음 접기
작은 아이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꽤 긴 시간 동안 색종이를 접는다. 밋밋하던 평면의 종이는 아이의 손 안에서 접고 접히며 새로운 형태로 빚어진다. 종이공룡의 머리가, 네 발이, 그리고 앙증맞은 꼬리가 점차 정교해진다.
종이나 천을 겹치는 것을 '접다'라고 표현한다. 그런데 '접다'라는 동사는 펼쳐진 물건이 제 기능을 못하게 멈춘 상태일 때에도 쓰인다. ‘우산을 접다’, ‘부채를 접다’처럼.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포기하거나 그만두는 행위에도 동사 '접다'가 쓰인다. 그만두고 멈춘다는 의미로 쓰이는 '접다'를 생각하다가, '마음을 접는다'는 말이 떠올랐다. 왠지 가슴 한 구석이 아려오는 말이었다.
엄마로 살고 있지만 엄마가 되는 것을 한 번도 꿈꿔보지 않았다. 큰 아이와 두 살 터울로 작은 아이를 낳기까지, 하던 일에 대한 그리움과 동경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것이 강박이 되어 미래를 고민하느라, 당장의 하루와 이미 주어진 역할을 더 소중히 여기지 못했다. 아이 모유를 먹이면서도, 이유식을 만들면서도, 설거지를 하면서도. 나는 시시때때로 앞날을 걱정했다. 앞으로 무슨 일을 하며 살지 말이다. 엄마로 살며 이전의 '나'에서 새로운 '나'로 정체성을 재정립해 가는 과정들은 쉽지 않았다. 혼란과 불안, 두려움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돌아보면 그 시간들은 하드보드지 같은 고집스럽고 편견 가득했던 내 마음을 색종이처럼 유연하고 부드러운 마음의 재질로 바꿔주었다. 그러면서 독불장군처럼 홀로 꾸던 꿈, 그리고 꿈에 대한 어떤 고착화된 마음을 접는 시간들이었다.
아이들을 키우며 천천히, '엄마'라는 꿈을 그리게 되었다. 엄마가 된 것은 경험 이전의 생각보다 좋았고, 날이 갈수록 좋았다. 지금은 부족해도 내일은 더 나은 엄마가 되어야지. 나이가 들수록 좋은 엄마가 되어야지. 오 년 후에는, 십 년 후에는 어떤 엄마가 될까. 하며 엄마라는 평생의 꿈을 더 크게 품게 되었다.
한 때 꿈꾸던 일을 접어야 한다면, 그것은 새로운 꿈의 기회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동사 '접다'의 사전적 의미처럼 그만두고 포기한다고 해도 그걸로 끝은 아닌 것이다. 첫사랑에 대한 마음을 접어야 할지라도 시간이 지나면 새로운 사랑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꿈도 비슷한 것 같다. 20대 시절처럼 어떤 거창한 미래를 찾아 헤매기보다 요즘의 나는 구체적이고 단순한 목표와 계획들을 세우게 되었다. 그리고 그 중심엔 무엇보다 '좋아하는 마음'을 두었다. 때로 그 목표와 계획대로 실행하지 못하더라도 나 자신을 채근하며 괴롭히진 않으려 한다. 힘들면 하던 일을 접을 수도 있다. 내려놓고 포기할 수도 있다. 마음을 접는다고 해서 끝이 아니란 것을 이제는 안다. 한쪽 마음을 접으면 또 다른 한쪽의 마음으로 새로운 꿈과 기회가 펼쳐진다는 것을 마흔 즈음이 되어서야 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