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초등학교는 대부분 겨울방학이 끝나면 곧바로 새 학년이 시작된다. 하지만 내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2월이면 꼭 봄방학이 기다리고 있었다. 마냥 좋았던 여름 방학이나 겨울 방학과 달리, 봄방학은 부담스러운 방학이었다. 열흘 남짓한 짧은 방학이 끝나면 새로운 학년이라는 진급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뒤바뀐 3월의 교실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뒷문 앞에 설 때면 늘 두근대고 두려웠다. 이 시간을 건너뛸 수만 있다면. 그럴 수 있다면 나는 낯선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다소 적응된 4월이나 5월쯤의 교실 속으로 뛰어들고 싶었다.
더 이상 올라갈 학년이 없는, 어른인 내게 공식적인 봄방학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하지만 여전히 새로운 것들을 배우거나 익힐 때면 어느 순간 자체 봄방학을 하고 만다. 처음 얼마 동안은 열정이 불타올라 그것만 생각하며 앞만 달린다. 그러나 첫 단계를 지나 다음 단계로 나아갈 때쯤 마음이 쉽게 시들해진다. 스스로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다. 열정이 사그라들면서 이전엔 보이지 않던 상황과 환경, 그리고 나의 열악한 재능 탓을 하면서 그 자리에 주저앉는다. 좋게 말하면 자발적 봄방학을 시작하는 것이다.
부끄럽게도, 어른이 되어 시도했던 일 중에 이렇게 하다 그만둔 일들이 참 많다. 그런 것들 중 하나가 바로 운전이었다.
만일 아이들이 없었다면 나는 여태껏 면허 없이 살았을 유형이다. 버스나 지하철을 아무리 오래 타도 지루함과 불편함을 못 느꼈으되, 지도 읽기와 방향 찾기에 서툰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도로 위의 운전은 내게 두려움 그 자체였다. 그래서 20대를 지나 30대 중반을 지나면서도 면허 따는 일을 요리조리 피해 다녔다.
사실, 결혼 전에 했던 일은 기동력이 무엇보다 필요했다. 면허가 없었음에도 입사할 수 있었던 게 신기하다. 하던 일의 특성상 늘 가지고 다니는 장비가 있었고 외근이 많았다. 당시 중간급 선배가 없었던 나는 거의 십 년 연차 위의 부장님이 사수 역할을 해주셨다. 그분은 신입이 모르고 잘못한 일들에 대해서는 엄격하고도 꼼꼼하게 가르치셨던 분이었다. 내가 발바닥에 땀나도록 촬영한 영상을 왜 사용할 수 없는지, 공들여 만든 자막을 왜 바꿔야만 하는지 납득이 가도록 일일이 알려주시고 설명하셨다.
촬영을 나갈 때마다 부장님과 나는 콤비처럼 자주 다녔다. 그런데 갓 입사한 신입이 면허가 없으니 운전은 늘 부장님이 하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와 함께 다니며 항상 기사 역할까지 하셨던 부장님은 운전 못하는 나를 타박은커녕, "왜 운전 안 배워요?"라는 질문조차 하지 않으셨다.
그렇다. 부장님은 운전을 아주 좋아하는 분이셨다. 그분은 승용차도 꼭 경주차 카레이서처럼 정말 터프하고 빠르게 운전을 하셨다. 부릉, 부릉, 부아아아아아아앙-. 그래서인지 급출발에 급제동하는 습관이 있으셨다. 자신은 운전은 '스틱', 수동 변속기 운전만 운전으로 친다고 하셨다. '오토', 자동 변속기 운전은 운전의 맛이 느껴지지 않는다면서. 스틱이니, 오토니 분간도 못하던 나는 조수석에 앉아 조금 벌벌 떨면서 그를 따라다녔던 것 같다.
미팅이 있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은 중요한 날이어서 부장님과 나, 그리고 회사 대표님까지 함께 차를 타고 갔다. 역시나 운전은 부장님이 하셨고 어쩌다가 조수석엔 대표님이, 나는 뒷좌석에 앉고 말았다. 회사에서부터 강남의 미팅 장소까지 웬일인지 길이 막혔다. 카레이서 같은 부장님도 교통 체증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약속된 시간보다 15분이나 늦어버렸다. 당시 미팅을 담당했던 나는 마음이 콩닥콩닥했다. 드디어 우리가 들어갈 식당 간판이 보이자마자, 나는 부장님께 이렇게 외치며 황급히 내릴 태세를 갖췄다.
"부장님, 저기 오른쪽 가로수 밑에서 내려주시면 되세요!!!"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을 대표님이 들으시곤 어이없다는 듯 웃으시며 받아치셨다.
"부장님이 택시 기사가?"
사투리 억양이 강하셨던 대표님 말이 귀에 꽂히며 나는 '아차' 싶었다. 다급한 마음에 평소 택시 기사님들과 헤어질 때 얘기하던 말투 그대로 말해버린 것이다. 그 뒤로 아, 운전은 내가 해야 맞겠구나 생각했다. 누군가 나 대신 운전석에 앉아 핸들을 잡는다는 것은 그만큼의 섬김과 수고를 감당한다는 뜻이다. 타인의 운전에만 익숙했던 나는, 그때 기사 역할을 자청하셨던 부장님께 제대로 감사하단 인사를 한 적이 있었던가.
아무튼 직장 생활에 인복이 있었다. 나는 퇴사할 때까지도 면허 없이 그럭저럭 잘 버틴 것이다. 마음 한 구석엔 언젠가 면허를 따야 한다는 부담감이 커져버렸지만. 그 부담감은 본격적으로 아이 둘을 낳아 키우는 전업주부의 삶을 살면서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거기에 남편의 등 떠밀기, 당시 집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였던 운전학원까지. 삼 박자가 맞아떨어지며 나는 운전을 배웠다.
4년 전 작은 아이가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시간이 생긴 틈새로 운전 학원에 등록했다. 그리고 한 달여 뒤. 면허증을 땄다. 이제는 운전해도 된다는 자격을 부여받은 것은 좋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도로에 나가는 것을 생각하면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면허를 땄으니 이제 연수를 받아야 하는데. 아이들 더 크기 전에 운전을 해야 하는데. 생각하면서도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못했다. 지갑 속 운전면허증은 갱신 안된 주민등록증 대신으로 쓰일 뿐이었다.
그렇게 봄방학이 길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