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차 바꿔야 하지 않아?

by 혜일

서른둘, 서른여섯. 남편과 내가 각각 운전 면허증을 취득했던 나이다. 나만큼이나 남편 역시, 운전이나 차에 관심이 없었다. 결혼하던 해, 면허를 딴 남편은 큰 아이가 생기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운전을 시작했다. 큰 아이 출산이 임박해올 무렵, 어머니는 본인 차를 선뜻 우리에게 내주셨다. 차를 마련하는 데 태평했던 우리와 달리, 어머니는 아이가 태어나면 차가 필요함을 누구보다 잘 아셨던 것이다.



어머니 차는 2000년에 출시된 흰색의 아반떼 XD. 일찍 혼자되신 어머니가 얼마나 알뜰살뜰 살림하시며 마련하신 차였을지. 그때는 미처 깊이 생각하지 못한 채 덥석 받기부터 했다. 십여 년 전, 이 차를 받을 때만 해도 나는 '잠깐 어머니께 빌려 타다가 곧 돌려드려야지.' 또는 '이 차는 우리가 타는 대신 어머니께 경차라도 새로 마련해드려야지.'라고 가볍게 생각했다. 하지만 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받은 차를 다시 돌려드리지도, 새 차를 마련해드리지도 못했다. 감사하고 죄송한 마음의 바퀴는 점점 커지며 이리저리 내 안에서 구르고 있으면서도.


얼떨결에 어머니 차를 건네받고 남편은 곧장 운전에 돌입했다. 갓 태어난 아이를 카시트에 태우고 차를 탈 일은 생각보다 많았다. 아이를 낳고 병원에서 퇴원한 순간부터 몸조리를 위해 조리원과 친정집을 오갈 때, 아이 예방 접종과 각종 정기 검진을 위해 병원을 다니는 일만 해도 차는 큰 도움이 되었다.



집 안에 틀어박혀 신생아와 씨름하는 일이 지칠 때면, 한낮에 반포 한강 공원이나 한밤에 북악산 팔각정을 차로 다녀오기도 했다. 백일도 채 되지 않은 아이를 안고서. 그런 우리를 힐끔힐끔 쳐다보던 사람들이나 "이렇게 어린아이를 왜 델고 나왔어요?" 라며 나무라듯 물으셨던 아주머니를 그때의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게 아이 키우는 일에 어설펐던 젊은 엄마는 그저 어디라도 마음껏 돌아다닐 자유가 그리울 뿐이었다. 그리고 남편이 잡고 있는 운전대를 나도 잡아보고 싶은 마음이 문득문득 일었다.



결혼 후 보낸 십 년이라는 세월은 체감 시속 200km 정도쯤 될까. 쏘아 놓은 화살 같다. 그토록 결혼생활이 빠르게 지나간 것처럼 느껴지는 데에는 대부분의 시간을 육아에 쏟았기 때문일 것이다. 큰 아이와 두 살 터울로 태어난 작은 아이가 여덟 살이 되기까지, 어머니의 아반떼는 늘 함께였다. 맞춤옷을 입읏듯 우리는 별 불편함 없이, 주신 차를 잘 타고 다녔다. 하지만 차의 나이는 큰 아이의 두 배 이상. 아이들의 삼촌 뻘 된다. 어머니가 이미 십 년 이상을 타고 주신 아반떼는 점차 시간의 흔적이 쌓여갔다. 여기저기 녹이 슬고, 운전석 옆 창문은 겨울이면 종종 열리지 않았다. 밤 12시가 넘어 퇴근한 남편은 갑자기 시동이 켜지지 않아 차를 길에 두고 집까지 걸어온 적도 있었다.



직장 일이 바쁘기도 하고, 원체 외관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남편은 차를 고쳐가며 급한 불만 끈 채 다시 타고 다녔다. 본래 차 주인이셨던 어머니는 근래 들어 더욱 애처로워진 아반떼를 바라보시며 "야, 너네 차 안 바꾸냐? 차가 안쓰럽다, 안쓰러워." 하시며 혀를 끌끌 차셨다. 한 번씩 세차도 못한 채 친정에 가면 엄마는 기어이 "그 똥차 좀 어떻게..." 하시다가 사위가 듣기 전에 황급히 입을 다무셨다. 나 역시 차가 있는 게 어디냐는 주의였던지라, 그런 엄마에게 "우리 차가 뭐 어때서? 아직 더 타도 돼." 라며 큰소리쳤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큰 아이의 한마디 말을 듣고 마음이 흔들렸다. 작년 여름 방학 때였다. 아침에 큰 아이는 제 동생이 유치원 가는 길을 나와 함께 배웅하러 나왔다. 기다리는 동안 아이들은 아파트 주변으로 지나가는 자동차들을 자연스럽게 구경했다. 잠시 뒤, 유치원 차가 도착했고 우리 둘은 작은 아이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그리고 나서 돌아서는 데 아파트 입구 밖으로 늦은 출근을 하던 남편이 차를 타고 나오고 있었다.



안녕! 남편은 차 안에서 우리를 보며 아이처럼 해맑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런데 정작 아이의 얼굴은 해맑지 않았다. 큰 아이는 인도 위에 가만히 서서 무언가 생각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이의 눈은 아빠 차의 앞 범퍼부터 뒷 범퍼까지 빠르게 스캔하고 있었다. 그러더니 곧 내게 진지한 얼굴로 말하는 것이 아닌가.



"엄마, 아빠 차 바꿔야 하지 않아?"



아이의 말은 힘이 있었다. 그 말을 들은 뒤, 우리 부부도 진지하게 차를 바꿀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이참에 운전을 시작하자. 더 늦기 전에. 세월은 쏘아 놓은 화살이다. 앞으로 그 체감 시속은 더 빨라지면 빨라졌지 절대 느려지진 않을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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