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올해 안에는 운전 시작하고 싶어."
"올해? 얼마 안 남았는데. 그럼 연수부터 신청해봐."
"응. 신청할게. 그럼 차는?"
"이번 주에 인터넷으로 중고차 주문하면 며칠 내로 올걸?"
10월의 햇살이 차창 위로 하염없이 쏟아지던 날. 차 안에서 남편과 운전 이야기를 하다가 나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차도 클릭 몇 번이면 집으로 배송해준다는 것을. 뭐든 인터넷으로 살 수 있는 거구나. 집만 빼고. 차를 구매하기로 결정하자, 창 밖으로 달리는 자동차들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헤어 스타일을 바꾸고 싶을 땐 지나가는 사람들의 머리 모양이, 운동화를 사고 싶을 땐 그들의 신발이 눈에 띄는 것처럼. 하지만 차는 헤어 스타일이나 운동화처럼 자주 바꿀 수도, 내 취향에만 맞출 수도 없으니 결정에 신중해야 했다.
나는 운전 연수를 신청하고, 남편은 중고차 사이트에서 우리 가족에게 적합한 차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매일매일 사이트에 올라오는 차들을 그는 매의 눈으로 살펴보았다. 조건에 맞는 차가 보이면 팔리기 전에 얼른 구매 결정을 해야 했다. 며칠 사이트를 살펴보던 남편은 마음에 드는 중고차를 발견한 모양이었다. 나는 몇 년 간 방학 상태였던 운전을 다시 배울 생각에 정작 차 구매에는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그가 구매를 희망하는 차종을 말해주었는데 여태껏 처음 들어보는 차 이름이었다. '맥스 OOO'? 처음 차 이름을 들었을 때 기억에 남는 글자가 앞의 두 글자뿐이었다. 차 이름이 '맥스'로 시작하니, 왠지 덩치가 큰 차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휴대폰 너머로 보이는 차는 진짜 커 보였다. 이 차를 내가 운전할 수 있나? 싶을 만큼. 그런데 남편은 전부터 계속 눈여겨보던 차종이라고 했다. 내게 차 이름이 생소했던 이유는 맥스가 3년 전 단종된 차였기 때문이다. 그러니 중고로만 살 수 있는 차였다. 더 이상 새로 만들지 않는, 세월의 뒤안길로 사라진 차라니 마음이 짠했다. 화려한 이름 속에, 잊혀가는 존재의 쓸쓸함 같은 것이 느껴졌달까.
우리가 구매한 중고차는 진짜 사나흘만에 집 앞으로 배송이 왔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저녁이었다. 차를 운전해서 오시던 탁송 기사님은 비가 와서 도로가 막히니 조금 늦을지도 모른다고 전화를 주셨다. 차는 물건처럼 포장 배달도 어렵고, 기사님의 막중한 책임감이 느껴졌다. 무려 전라도 전주에서부터 인천까지. 차는 먼 길을 달려오고 있었다. 아이들과 주차장에 내려와 그 귀하신 몸을 기다렸다. 보통 내가 기다리던 대상은 차 속의 사람이나 물건이었는데, 차 자체를 맞이하려니 기분이 묘했다. 이사하는 날처럼 설레기도, 빗 속에 잘 도착할까 조금 걱정되기도 했다.
잠시 뒤 차가 도착했다. 위풍당당하게 내 앞으로 다가오던 차는 정말 '맥스'했다! 차는 생각보다 관리가 잘 되어 있었다. 주변이 어둑한 상태였지만 언뜻 새 차처럼 보일 정도였다. 신형 자동차는 아니지만 사실 우리 가족에겐 새 차나 다름없었다. 중고차라 부르지만 누군가 타던 차라고 해서 '헌 차'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누군가 살던 집도 '중고 집'이라 부르지 않는 것처럼.
그날 밤, 남편은 나와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근처 공원으로 향했다. 새 차를 타고 가장 좋아하던 사람은 큰 아이였다. 기존 차에는 없던 3열이 생기니 무척 신기해했다. 아이들은 맨 뒷좌석에서 앉았다, 누웠다 하며 처음 만난 차와 몸을 비볐다.
십 분 정도 달렸을까. 남편은 길가에 차를 세우곤 아이들을 내리게 했다. 그리곤 차 트렁크를 열어 뒷좌석을 앞으로 접고는 매트를 넓게 깔았다. 순식간에 차 안에 넓은 공간이 생겼다.
"얘들아, 여기 누워봐!"
남편은 가운데 눕고, 양 옆에 큰 아이와 작은 아이가 누웠다. 세 사람이 옴짝달싹할 수 없이 몸을 붙이고 쪼르르 누워있는 모습에 웃음이 났다. 하지만 어떤 모습보다 행복해 보였다. 남편이 말했다. 두 명은 텐트에서 자고, 두 명은 이렇게 차 안에서 자면 되겠다!
나는 그때 또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남편이 차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는 것을. 그는 가족들과 '차박'을 꿈꾸고 있었다. 굳이 큰 차를 산 데에는 그런 계산이 깔려있었던 것이다. 음, 여태껏 캠핑 한 번 안 해본 우리 가족인데. 조금 성가실 일들이 앞으로 펼쳐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 꿈을 말리고 싶지 않았다. 한데 섞이며 지낼수록 꿈의 색깔도 다채로워지는 게 가족이니까.
탁송 기사님이 건네주신 서류를 보니, 맥스는 그 동안 꽤 긴 거리를 주행하다 우리에게 온 것이었다. 이제부턴 우리 가족과 동고동락할 차였다. 부디 괴로움은 덜하고, 즐거움은 더하는 길로 함께 다니길. 잘 부탁해, 맥스. 우리와는 오래도록 함께하자. 주행거리 제로, 초보운전자의 눈이지만 차가 미덥게 보였다. 왠지 멀리 있는듯한 어떤 꿈도 그 거리를 금세, 바짝 쫓아줄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