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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무늬 Apr 14. 2019

단시간에 필력 키우는 특급 독서법 3가지

다독, 다작, 다상량 말고 바로 써먹을 수 있는 독서법


Q. 필력 늘리려면 어떻게 해요? 


기성 작가에게 묻는다면 아래의 대답을 듣게 될 확률이 높다. 


A.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세요.


송나라 학자 구양수의 삼다三多가 또다시 등장한다.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商量)이 중요하다는 걸 누가 모르겠는가? 

밑도 끝도 없이 책 많이 읽으라는 조언은 어쩐지 김빠진다. 

국영수 중심으로 예습, 복습 철저해야 성적이 오른다는 조언과 비슷한 느낌이다.


삼다가 틀렸다는 뜻이 아니다. 그러나 웹소설 작가에게 시간은 곧 돈이다. 

한정된 시간 안에 필력을 키우려면 몇 가지 기술이 필요하다.


요약하자면 아무거나 읽지 말고, 그냥 읽지 말고, 써먹을 수 있게 필사하라는 것이다.

그것이 ‘단시간에 필력을 키우는 독서법’의 포인트다. 




1. 내가 쓸 수 있는 책을 읽자.


취미로 무슨 책을 읽어도 상관없다. 

하루라도 빨리 필력을 키우고 싶다면 아무거나 읽어서는 안 된다. 미스터리 소설 100권 읽는다고 로맨스 장르 필력 향상에는 큰 도움을 주지 않는다. 


이유는? 장르마다 표적 독자가 다르기 때문이다. 

로맨스 독자들은 달콤 쌉싸름한 사랑 이야기를, 무협 독자들은 초절정 무인의 모험담을 원한다. 


로맨스소설을 클릭했는데 하라는 사랑은 하지 않고 연쇄 살인범만 쫓는다면? 연독률은 땅에 떨어지고 댓글 창엔 악플만 가득할지도 모른다.


단시간에 필력을 늘리려면 내가 쓰려는 분야, 그중에서도 내가 쓸 수 있는 작품을 읽어야 한다. 


로맨스 작가라면 내가 발랄한 로맨틱 코미디를 잘 쓰는지, 눈물 콧물 뽑는 피폐물을 잘 쓰는지부터 파악하자. 분명 조금 더 잘 쓸 수 있는 장르가 있을 것이다. 흥미로운 장르나 도전하고 싶은 장르로 정해도 좋다.


목표 장르가 정해졌다면 비슷한 분위기, 비슷한 소재를 다룬 명작, 스테디셀러, 대박작을 먼저 읽자.


은연중에 따라 하게 될까 봐 걱정되는가? 작정하고 표절하지 않는 이상, 인기 작품을 읽었다고 그 작품처럼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문제집 한 권 풀었다고 서울대 갈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나.


오히려 비슷한 작품을 많이 읽어야 표절 시비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성경에도 쓰여있듯,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내 머릿속에서 나온 아이디어라고 해도 누군가 먼저 썼을 확률이 높다. 

데뷔작 <세자빈의 발칙한 비밀> 런칭을 몇 주 남기고 담당자에게 연락을 받은 적이 있다. 카카오페이지에 비슷한 소재의 작품이 연재 중이라는 거였다.


배경이 조선 시대라는 점, 주인공이 사이코메트리 능력을 가졌다는 점, 남장여자가 등장한다는 점이 놀랄 만큼 똑같았다. 


사이코메트리는 내 작품의 중심 소재였다. 뺄 수도 없고 수정할 여유도 없었다. 

후발주자인 만큼 표절을 의심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별문제 없었지만, 지금까지도 아쉬움이 남는다. 


기성 작품을 찾아봤다면 더 낯설게 보일 방법을 연구했을 테니까.

그래도 비슷한 느낌을 줄까 걱정이 된다면? 배울 점을 쏙쏙 찾아내서 내 개성에 맞게 쓰는 법을 연구해보자. 

고민과 연구 없이 향상되는 기술은 없다.



2. 독자가 아니라 분석가처럼 읽자. 


작가 중엔 속독가, 책 애호가, 활자중독자가 많다. 영상보다 텍스트가 편하고, 글자를 읽을 때 마음이 편안해지는 사람들이 주로 작가가 된다. 책을 읽는 순간, 작가도 독자다.


그러나 우리는 단시간에 필력을 키워야 한다. 문장 좋네. 이 부분은 재밌네. 이 작품은 내 스타일이 아닌데? 단순한 감상평이 쌓여 필력에 배어 나오는 데까지 기다릴 시간이 없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독자가 아닌 분석가처럼 읽는 걸 추천한다.

독자는 책을 감상하지만 분석가는 책을 파헤친다. 플롯, 캐릭터, 스토리, 문장 등 웹소설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가 분석의 대상이다.


무슨 시점을 사용하는지, 첫 문장은 어떻게 시작하는지. 배경 설명은 얼마나 하는지, 주인공의 목표와 목표를 방해하는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인지, 한 장면은 몇 페이지로 구성하는지, 묘사와 대화의 비중이 어떤 지, 악역과 조연의 캐릭터는 어떤지, 장면 배분과 전환은 어떻게 하는지... 


모든 것을 분석할 필요는 없지만 내가 부족한 점, 내가 배우고 싶은 점은 빠짐없이 살펴보자. 


내 작품과 비교하며 장점은 배우고, 단점은 피할 수 있도록 노트하는 것도 추천한다. 분석적 독서는 트렌드를 파악하고 클리셰를 변주하는데 특히 도움이 된다. (트렌드 분석법을 참고하면 도움이 될 것)


독자 댓글을 읽어보는 것도 좋다. 어떤 소재에 환호하고, 어떤 표현을 불쾌해하는지 파악해보자. 내 작품, 내 독자만 봤을 때는 몰랐던 것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한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독서에 몰입하다 보면 분석은 잊어버린다. 분석에 집중하면 책의 재미를 느낄 겨를이 없다. 1시간이면 읽을 책을 3시간이 지나도록 못 읽을 수도 있다.


평범한 독서 10권과 분석적 독서 1권. 어떤 것이 필력 향상에 도움이 될까? 판단은 각자에게 맡기겠다. 



3. 필사는 경제적으로 하자. 


필력 훈련 방법 중 빠지지 않는 것이 필사다. 나도 필사를 많이 했다. 한 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필사한 적은 없다. 그럴 시간도 없고, 체력도 없으니까.


타자 속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원고지 80매짜리 단편소설을 필사하는 데도 몇 시간이 필요하다. 


연암 박지원이나 권터 그라스 소설 첫 장부터 필사하지 말자. 반나절도 채우지 못하고 포기하기 쉽다. 하루 이틀 쓰다가 말 것도 아닌데 처음부터 지치면 안 된다. 꾸준하기 위해서는 실현 가능한 목표를 잡는 게 좋다. 


무작정 필사한다고 필력이 느는 것도 아니다. 실질적인 도움이 없다면 인내심 시험용으로 전락하기 쉽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 작품에 써먹을 수 있는 부분만 경제적으로 필사하는 걸 추천한다.


내 경우 묘사, 대사, 캐릭터, 표현력 등 필사 파일을 여러 개 만든다. 책을 읽다가 좋은 표현을 발견하면 그 문장만 표현력 파일에 필사한다. 


배경 묘사가 훌륭한 문장은 배경 파일에 옮겨적는다. 캐릭터 묘사에 애를 먹는다면 본받고 싶은 캐릭터 묘사 부분만 필사해서 나만의 자료집을 만들어보자. 


주옥같은 문장으로 가득한 책이라면 따로 파일을 만드는 것도 좋다. 문장 호흡을 느껴가며 필사해보자. 그렇게 필사한 파일이 모이면 전투 식량 창고처럼 든든하다.


글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단어 몇 개만 바꿔서 얌체처럼 배끼라는 소리는 아니다. 영감을 얻으라는 거지.


필사만 하고 내 것으로 만들지 못하면 말짱 꽝이다. 필사한 문장들을 내 스타일의 문장으로 재탄생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좋은 문장을 소화해서 내 방식으로 다시 쓰는 것. 그 연습을 반복하는 것이 필력을 키우는 필사법이라 할 수 있다. 




단시간에 경제적으로 필력을 키우는 방법을 알아봤다. 


그럼 장기적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역시 다독이 중요하다.


정공법을 이기는 꼼수는 없다. 

기출문제 꿰고 있는 학생이 오랫동안 성실하게 공부한 학생을 이길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작가의 탄탄한 기본기는 넓고 풍부한 독서에서 비롯된다고 믿는다. 


좁은 독서는 좁은 사고를,
더 나아가 좁은 시야를 만든다고 하면
너무 과장일까?


아주 가끔 자기만의 세계에 빠진 작가를 만난다. 

타인을 이해할 줄도 모르고 자신만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말이다.


내가 쓰는 웹소설 장르의 전문가가 되자. 하지만 그 장르에만 매몰되진 말자. 


작가는 내 글을 읽어주는 독자와 우리가 사는 세계를 바라봐야 한다. 

드래곤과 정령, 지상 최강 기사에 관해 쓰더라도.


여느 작가들처럼 나도 도서관을 좋아한다. 철학, 미학, 과학 서가를 돌아다니며 흥미로울 법한 책을 고른다. 

문장 훈련용으로 순문학 한 권, 취미용으로 미스터리도 한 권 뽑는다. 

베스트셀러는 정치 에세이든 감성 에세이든 최대한 많이 읽어두려고 한다. 한 달에 세 번 정도 평균 20권 정도의 책을 대출한다. 도서관에 없는 책은 구입 한다. 


다 읽을 때도 있고, 통독으로 끝낼 때도 있다. 작은 포스트잇으로 필사할 문장을 표시하고 독서가 끝난 후 옮겨적는다. 


20년 동안 필사한 책이 수백 권이 넘는다. 그것이 전업 작가로 사는데 자양분이 되었다고 믿는다. 아직도 많이 부족하지만 말이다.


세상엔 글 잘 쓰는 사람이 정말 많다. 좋은 책도 셀 수 없이 많다. 

독서를 멈추는 건 새로운 피를 수혈하지 않는 것과 같다. 트렌드가 빠르게 바뀌는 웹소설 작가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독서가 필요하다. 


피곤해서, 시간이 없어서, 은연중에 표절할까 봐, 기타 등등의 이유로 독서를 미루지 않는가? 

뻔한 조언이라 미안하지만, 책을 읽자. 그래야 필력을 키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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