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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콜릿립스틱 Dec 19. 2022

난 화장실에 갇혀 울고 있었다

  내 나이 6살쯤, 엄마와 둘이 외할머니댁에 갔다. 마당 안팎에 자리한 천막 주변에 사람들이 가득했다. 왁자지껄 시끄러웠다. 깡마르고 체구가 작았던 나는 낯선 사람들이 많은 게 무서웠다. 엄마의 옷자락을 꽉 움켜쥐고 뒤에 숨어 빼꼼히 쳐다보았다. 큰 잔치였고 사람이 많았던 것으로 보아 외할머니 회갑 잔치가 아니었을까 싶다.

  엄마는 이모들과 함께 일을 하셨고, 나는 내 앞에 놓인 각종 산해진미에 신나서 낯섦도 잊고 배가 터지도록 먹고 또 먹었다. 전은 고소했고, 고기는 달았다. 결국 과식해서 배탈이 났다. 배가 싸르륵 싸르륵 아팠고, 화장실을 계속 들락날락했다. 그때만 해도 시골집 화장실은 다 재래식이었기에 냄새가 나고 불편했다. 외할머니댁 화장실은 6살인 내가 옆으로 나란히 하면 손이 닿을락 말락 하는 넓이였다. 입구에서 변기까지 몇 걸음을 걸어가야 했고, 창문이 없는 어두운 굴 같은 곳이었다. 화장실 벽 중간 작은 구멍으로 얇은 빛이 들어왔다. 그 빛에 작은 먼지들이 춤추는 것이 보였다. 구멍에 눈을 대면 옆집 마당이 보였고 거기에 개 한 마리가 묶여 있었다.

  그런데 어린 내가 화장실에서 기본적 욕구에 충실할 때 누군가 밖에서 문을 잠가버렸다. 문을 힘껏 밀었으나 꿈쩍하지 않았다. 무서웠다. 문 앞에서 ‘섰다, 앉았다.’를 하며 몇 번이나 문을 밀어 보았다. 기다란 화장실을 왔다 갔다 하기도 하고, 작은 구멍 밖 묶여 있는 개를 쳐다보기도 했다. 너무나 소심했던 나는 문 열어 달란 소리 한번 못하고 숨죽여 울었다. 아마 30분에서 1시간 정도 화장실에 갇혀 있었던 듯싶다. “어디서 우는소리 들리지 않아? 언니, 효순이 어디 갔어?” 뒤늦게 내가 없어진 것을 알아차린 이모가 흐느끼는 소리가 나는 화장실 문을 열었다. 그 안에 눈물범벅이 된 6살 꼬마, 내가 서 있었다. 나를 쳐다보는 많은 얼굴들이 반가우면서도 부끄러웠다. 

 오랜만에 어린 나를 마주한다. 참 소심한 아이, 심심한 아이. 왜 아무 말도 하지 못했을까? 무엇이 두려웠을까? 하고 싶고, 먹고 싶고, 갖고 싶은 것들이 많았을 텐데. 너무 일찍 많은 것들을 포기하며 산 게 아닐까. 난 가난한 시골집 4남매 중 셋째였다. 언니와 오빠, 여동생 사이에 끼어서 애매한 존재 같았다. 원하는 것들, 하고 싶은 것들을 다 할 수 없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을 것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려고 남자처럼 행동했다. 짧은 머리에 나무 타기, 딱지치기 같은 놀이를 했고, 남자아이들 행동과 말투를 조금씩 따라 했다. 여자친구들의 관심을 받기 위해서 고무줄과 공기놀이 또한 열심히 했다. 그렇게 나만의 방법으로 조금씩 나를 드러내며 살았다. 

  어른이 되고 두 자녀의 엄마가 된 나는 아이들에게 자주 이렇게 말해준다. “엄마가 안 된다고 말하더라도 정말 너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이 있다면,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기도해 보렴. 엄마는 너무 일찍부터 많은 것을 포기하고 살았는데, 너희는 안 그랬으면 좋겠어.”

  화장실에 갇혀 울던 내 어린 시절, 누군가도 나에게 이리 말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더 늦기 전에 애쓰고 도전하며 살 수 있다는 알아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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