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이시 언니, 그땐 몰라봤어요"

현대미술 작가 Tracey Emin 에게 보내는 편지

by ART MEETS YOU


언니, 잘 지내시죠?

요즘 건강을 회복하고 마게이트(Margate)에서 새로운 작업을 이어나간다는 소식을 듣고 정말 반가웠어요. 레지던시(TEAR) 프로그램을 통해 젊은 예술가들에게 창작의 기회를 주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고향으로 돌아가 푸근함이 느껴지는 편안한 모습이 정말 보기 좋아요.

Tracey_Emin_and_part_of_her_work_for_The_Last_Great_Adventure_Is_You_exhibit.jpg?type=w773 Tracey Emin and part of her work for The Last Great Adventure Is You exhibition, 2014.©Tracey Emin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된 이유는 언니를 몰라봤던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올라서예요.

왜, 가끔 편지 하고 싶은 그런 날이 있잖아요.


처음 언니 작업을 보고 그냥 똘끼 넘치는 YBA 작가라고 생각했어요. 여성의 몸으로 관심을 끄는 사람인가 오해한 적도 있었고요. 온통 자기 이야기뿐이어서 '어떻게 작가가 저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일기만 써댈 수 있지?' 싶었어요.


먼저 텐트 작업을 이야기 하고 싶어요.

사람들은 이 작업의 제목을 읽으며 당연히 성적인 뭔가를 생각했겠죠? 하지만 그런 편견을 따뜻하게 웃어 넘기듯 텐트안에는 언니와 잠들었던 할머니, 쌍둥이 남동생, 애착인형과 친구들의 이름들도 새겨져있었죠. 텐트로 들어오는 관객들에게 자신들의 친밀한 시간들을 돌아보게 했다는게 느껴졌어요.

%EB%82%98%EC%99%80_%EC%9E%A4%EB%8D%98.jpg?type=w773 Everyone I Have Ever Slept With 1963–1995,©Tracey Emin



한때는 친구랑 소원해지고 나서 쓸쓸한 뒷 모습이 왠지 짠했어요. 남겨진다는건 이런 느낌이죠.

The_Last_Thing_I_Said_to_You_was_Don%27t_Leave_Me_Here_II.jpg?type=w773 The Last Thing I Said to You was Don't Leave Me Here II,©Tracey Emin


<Psyco Slut>은 언니가 부모에게 보호받지 못한 어린시절을 보내는 동안 이웃과 사회가 여성에게 강제한 성적 낙인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작업이었어요. 무엇보다 퀼트작업으로 여성의 전통적인 수단을 예술적 언어로 사용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어요. 한땀 한땀 바느질하면서 조각난 천을 꿰매는 그 시간들이 고스라히 느껴지는 것 같았지요.

%EC%82%AC%EC%9D%B4%EC%BD%94%EC%B0%BD%EB%85%80.jpg?type=w773 Psyco Slut, 1999©Tracey Emin


이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언니의 작품 중 하나인데, 언니가 어린시절 댄스대회에 나갔다가 조롱당한 것에 대한 시원한 복수랄까. 눈물이 날만큼 자유로워진 언니의 모습이 담긴 영상작업을 보면서 절로 미소가 지어지더군요. 상처받은 사람들이나 수치심에 자신을 억누른 사람들이 있다면, 이 영상작업을 보거나 혹은 이렇게 만들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Why_I_Never_Became_a_Dancer,_1995.jpg?type=w773 Why I Never Became a Dancer, 1995 ©Tracey Emin



그 당시 나는 판에 박힌 입시미술을 하다가 이제 막 미대라는 곳에 들어왔는데, 영국이라는 나라에선 언니가 YBA 작가들과 어울려 작업하며 전면에 등장하고, 터너상 후보에도 오르더라고요. 그게 신기하고 조금은 충격이었어요.

%EB%82%9C_%EB%AA%A8%EB%93%A0%EA%B1%B8_%EA%B0%80%EC%A1%8C%EC%96%B4.jpg?type=w773 ‘난 모든 걸 가졌어’, 2000 ©Tracey Emin


터너상 후보에 오르고 나서, 언니는 명성도 얻고 돈도 벌고 '모든걸 가졌지만'

공허한 마음을 느꼈던 걸까요?


Sarah_Lucas_and_Tracey_Emin_outside_their_shop_on_London%27s_Brick_Lane_in_199.jpg?type=w773 Sarah Lucas and Tracey Emin outside their shop on London's Brick Lane in 1993. Photograph: Carl Free

그런 성취보다 중요한건 사라 루카스(Sarah Lucas는 영국의 현대미술 작가)와 함께했던 언니가 사랑했던 사람들과의 행복한 순간이었을 것 같아요.


저로서는 언니의 소식들을 미술잡지나 'ART NOW'같은 현대미술 소개서에서 접했지만 그때 우리 교수님은 독일에서 유학하고 산만한 걸 싫어하셨던 분이여서 지레 겁을 먹고 언니 작업에 대해 한번도 대화해보지 못했죠 너무 나이브하고 폭력적이라고 하실 게 뻔했거든요(미안요). 내 동료들과 나는 교실에서 조셉 보이스(Joseph Beuys)를 함께 공부했고, 삶과 예술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며 진지한 예술을 해야 한다는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받아드리고 있었어요. 사실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닌데, 나 스스로 너무 심각해져서 예술이 무겁고 큰 짐처럼 느껴졌어요. 지금 생각하면 나는 20대 초반의 노인이었죠. 그 말랑말랑한 시기를 근엄하게 보내려고 애썼던 걸 생각하면 아직도 가끔 이불킥하게 돼요.


다시 언니 이야기로 돌아가면, 언니는 눈부시게 성장했더라고요. 그 개인적이고 날것 같은 어린 시절의 아픔과 고통을 어떻게 그렇게 쏟아내고, 또 그걸 예술로 승화시킬 수 있었을까. 가식 없이 살아가는 언니의 문화적 배경이 부럽기도 했어요. 물론 그쪽 사람들도 꽤나 고상한 척(Snobbish)한다고 들었는데, 역시 언니의 내공이 쎈 거겠죠.

Dame_Tracey_Emin_attended_an_investiture_ceremony_at_Buckingham_Palace.jpg?type=w773


언니는 결국 영국 왕실 훈장까지 받았죠. 가장 raw(가공되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어느새 가장 sophisticated(세련되고 정제된)한 예술가 중 한 명이 되어 있었어요.


YBA 시절에는 늘 논쟁의 중심에 서 있던 사람이, 지금은 가장 sophisticated한 예술가 중 한 명이 되어 있는 걸 보면서 참 아이러니하다고 느꼈어요. 그런데 어쩌면, 그 진짜 ‘날것’이 가장 세련된 것일 수도 있다는 걸, 언니가 몸소 보여준 게 아닐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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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의 작품과 삶을 통해 많은 영감을 받았고, 그 변화의 과정에서 진정성을 느낄 수 있었어요. 앞으로도 언니의 여정을 응원합니다! 안녕!


서울에서 Vic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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