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없음의 쓸모

예술이 살아있는 이유

by ART MEETS YOU

어릴 적 나는 세계가 바쁘게 돌아가는 것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일상을 척척 처리해 내는 능숙함이 부족해서인지, 언제나 한 걸음 뒤에 서 있었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몰라 당황하거나, 잘못 해석해 난처해지기도 했다.


“가던 길이나 빨리 가자”며 재촉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늘 어딘가 어색하고 고장 나 있었다.


『모두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동화 속처럼,

왜 앞서 가야 하는지 묻지 않은 채 서로를 밀치며 달려가던 풍경. 목적지도 방향도 불분명한 채, 그저 늦지 않기 위해 달리는 모습들이 낯설지 않았다.


그때 내게 필요했던 건, 내가 서 있는 그 자리에서 나와 함께 잠시 멈춰 서줄 어른이었다.

장난을 치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며,잔뜩 긴장된 어깨를 살짝 풀어줄 수 있는 그런 존재.


SE-e6b83a86-6f7d-4c06-a4ce-962a8f92c719.jpg?type=w773 Mon Oncle (1958), directed by Jacques Tati. Still image via IMDb


자크 타티(Jacques Tati)의 영화 『나의 삼촌(Mon Oncle)』에 나오는 율로(Monsieur Hulot)는 그런 사람이었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첨단 기계에 눌리고,

어른들의 세계에서는 무능하다고 여겨지는 인물.

하지만 조카의 눈에는 누구보다 자유롭고, 다정한 진짜 어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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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촌이 사는 동네_Mon Oncle (1958), directed by Jacques Tati. Still image via IMDb


삼촌이 사는 동네는 굽이진 골목길과 고양이,

햇살이 스며든 빨랫줄이 어우러진 정겨운 공간이다. 삶의 속도가 느리고, 불필요한 것이 허락되는,

어딘가 어설프지만 따뜻한 숨결이 머무는 곳.


조카의 집_Mon Oncle (1958), directed by Jacques Tati. Still image via IMDb

반면, 삼촌의 동생 부부의 집은 물고기 분수가 있는 자동화된 현대식 집이다.

겉보기엔 세련됐지만 어딘가 우스꽝스럽고,

사람보다는 기계의 질서가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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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적 유머로 그려낸, 르 코르뷔지에식 모더니즘 주택_Mon Oncle (1958), directed by Jacques Tati. Still image via IMDb


손님이 왔을 때에만 작동하는 물고기 모양의 분수는 평소엔 멈춰 있다가,

누군가 초인종을 누르는 순간 물을 뿜는다.

그 물줄기는 멋있다기보다는 어색하고,

그 과장된 환영의 몸짓은 오히려 실소를 자아낸다.


그 집은 버튼 하나로 모든 것이 작동하는 첨단의 공간이지만, 그만큼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어긋나고,

삶은 더 복잡하고 덜 인간적으로 느껴진다.


조카는 그 매끈하게 정돈된, 그러나 누구도 편하지 않은 집보다, 엉뚱한 작은 사고들이 끊이지 않는 삼촌의 세계를 더 좋아했다. 그곳에는 아코디언 소리, 새소리, 바람 소리 같은 소박한 것들이 있었다. 삼촌 곁에서 아이는 자신이 살아있다는 감각을 느꼈던 것 같다.



그 따뜻한 감각은 레오 리오니(Leo Lionni)의 그림책 『프레드릭(Frederick)』에서도 발견된다.


Illustration from 『Frederick』(1967), by Leo Lionni. © Lionni Family.


겨울을 앞두고 모든 들쥐들이 먹이를 부지런히 모으는 동안, 프레드릭은 구석에 앉아 아무 일도 하지 않는 듯 보인다. 하지만 그는 말한다.


I gathered sun rays for the cold dark winter days. I gathered colors, and words, for the long winter.

춥고 어두운 겨울날들을 위해, 나는 햇살을 모았어. 긴 겨울을 위해, 나는 색과 말들을 모았지.


겨울이 깊어가고, 모두가 지쳐갈 즈음

프레드릭은 자신이 모아두었던 색과 햇살, 시와 이야기를 꺼내어 친구들의 마음을 데워준다.


SE-fcf7f046-9b11-479f-915e-563fcb4b7945.jpg?type=w773 Illustration from 『Frederick』(1967), by Leo Lionni. © Lionni Family.


예술이란 바로 겨울을 위해 지금 이 순간의 온기, 감각, 그리고 말들을 조용히 모아두는 일.


무용하다는 이유로 밀려나지만,

사실은 삶을 가장 깊이 감싸는 것.

예술은 그런 존재였다.


경쟁이 일상인 사회 속에서

현대인들은 늘 누군가와 자신을 비교하며 스스로를 채찍질한다.


모임이나 낯선 사람과의 만남에서

사람들은 종종 ‘직업’으로 자신을 소개한다.


그 질문이 오갈 때,

명함만 내밀어도 이해되는 직업이 아니라면 어딘가 어색해지고 잠시 공기가 멈추는 순간이 찾아온다. 사회적 설명력을 갖추지 못한 존재처럼 느껴지는 그 눈빛들. 시선이 허공을 맴도는,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어색함.


그래서 “무슨 일을 하시나요?”라는 질문은

“당신은 이 사회에서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나요?”라는 질문처럼 들린다.


효용성과 생산성이 기준이 되는 사회 속에서,

예술은 과연 어떤 자리를 가질 수 있을까?


한겨울 차가운 대기 속에서 마주하는 햇살처럼. 평소엔 몰랐지만,
몸이 시려올 때야 비로소 그 따스함을 알아차리는 존재.
조용히 곁을 지키고, 말없이 마음을 덮어주는 존재.
일상의 틈새 속에서 무용하지만 따스한 감각을 발견하고,
그로 인해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예술.


그건, <나의 삼촌>과 <프레드릭>이 나에게 해준 일과 같다.



Mon Oncle (1958), directed by Jacques Tati. via 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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