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보다 마음자리
예닐곱 살이었을까. 동네에 말을 더듬는 또래 아이가 있었다. 재미 삼아 나는 그 아이의 말투를 앵무새처럼 흉내 내곤 했다. 어렸기에 악의는 없었겠지만, 어느 순간 그 말투는 내 입에 붙어버렸다. 흉내는 습관이 되었고, 습관은 곧 나의 일부가 되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그 버릇은 좀처럼 고쳐지지 않았다. 내성적인 성향에 말더듬까지 더해지니 사람들과의 대화는 늘 긴장되었다.
“바 바 밥, 머 머 먹었어?”
어떤 말이든 첫마디를 꺼내기가 어려웠다. 말문이 막힐 때마다 자신감은 떨어졌고, 의식할수록 말은 더 꼬였다. 지독한 악순환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사회생활은 줄곧 ‘말하는 일’의 연속이었다. 성향과는 반대되는 일에 매력을 느꼈던 것이다. 십 년 넘게 여행사에서 상담과 브리핑, 인솔자 일을 했고, 이후 외국인 이주 여성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쳤으며, 공인중개사로 일하기도 했다. 내가 거쳐 온 일들은 모두 말이 기본이 되는 직업이었다.
신기하게도 일에 몰두하는 순간만큼은 단 한 번도 더듬지 않았다. 열정적으로 일했던 그 시기를 거치며 말더듬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아마도 몰입의 즐거움이 자신감을 회복시켜주었고, 그 단단해진 마음이 말투에 고스란히 반영된 결과가 아니었나 싶다.
지금 나의 말투는 그때와는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더 이상 자신감의 문제가 아니라 기분의 문제에 가까워졌다. 컨디션이 좋지 않거나 마음이 상해 있을 때, 나도 모르게 퉁명스러운 말투가 튀어나온다. 본능이 앞서는 말투랄까.
부정하려 해도 말투는 말하는 이의 감정을 투명하게 드러내기 마련이다. 상대가 나를 어떤 마음으로 대하고 있는지 말투에서 먼저 느낄 수 있다. 다행스럽게도 삶의 여러 면에서 여유가 생긴 지금, 날 선 말투의 빈도가 줄어들고 있다.
말더듬을 극복했던 그때처럼, 이제는 말보다 마음자리를 더 들여다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