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에 매달려 논문쓰기6
논문 쓰기의 기초 작업이자, 어쩌면 제일 중요한 작업인 ‘문헌 조사’를 하며 나는 여러 번 좌절했다. 유사한 주제의 학위 논문들을 찾아 읽으며 이론적 토대를 뒤쫓다 보면 영락없이 해외 석학들의 논문으로 수렴했다. 다른 건 몰라도 그나마 영문 독해는 그래도 ‘좀 한다’고 생각했는데 수년 동안 영어와 접점을 가지지 않았던 나는 한 문단도 제대로 소화하기 힘들었다.
분명히 이미 다 알고 있는 단어들이라 거침없이 쭉쭉 읽어 내려가다가도 중간쯤 가면 여지없이 미아처럼 길을 잃었다. 피상적으로 글을 읽고는 있었지만 이것이 대체 무슨 내용인지 100% 이해하지 못하니 진도가 빠르게 나가지 못했다. 생소한 단어들을 찾아 사전을 검색하고, 문맥이 이해되지 않으면 번역기를 돌리며 영어 논문들을 읽었다. 그러다 보니 영어 논문 1개를 읽고 이해하는데 최소 3~4일이 걸렸고 읽었던 논문들도 되풀이해서 읽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자 답답해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이 나라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것에 큰 불만이 없고 한글의 위대함에 적극 공감하는 입장이지만 논문 작업을 하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생각이 하나 있다. 만일 내가 영미권 국가에서 태어나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입장이었다면 학문적으로 더 큰 업적과 눈부신 성취를 이룰 수 있었겠다고 감히 주장하고 싶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 땅의 수많은 예비 석,박사들도 공감하지 않을까? 그만큼 논문 작업을 하는데 영어라는 언어 장벽은 높고 두터웠다.
일반 생활 영단어도 아니고 전문 용어가 수두룩한 해외 논문들은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핵심 내용 간파하는 것이 힘겨워 이론 조사만 하다 나가떨어질 것 같았다. 설상가상으로 내가 과거에 하던 일이라 배경 지식이 많아 만만하게 생각했던 논문 주제인 Content-driven Commerce는 국내에 학문적으로 다뤄진 연구 자료들이 전무했다. 대부분 해외 자료들을 뒤져 이론적 근거와 토대를 찾아야 했기에 내 발등을 내가 찍은 것 같아 헛웃음이 났다.
그러나 바짝바짝 다가오는 제출 마감일과 이번이 아니면 석사 학위가 날아갈 것이라는 절박함은 토종 거북이도 뛰게 만들었다. 수많은 좌절과 왜 내가 과거에 영어 공부를 더 열심히 하지 않았을까?라는 자책 끝에 문헌 조사를 마치고 겨우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었다.
만약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가 예비 석학이고 아직 논문 준비까지 시간이 좀 있다면 준비 기간 동안 영어 실력 향상을 위해 매진하라고 조언해 주고 싶다. 이론 조사를 위해 독해 능력의 필요성을 우선 강조하고 싶지만, 우리 모두 ‘국문 초록’과 세트인 ‘영문 초록’을 작성해야 함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연구하는 분야에 따라 전체 내용을 영문으로 작성해야 하는 곳도 있다고 들었는데 다행히 나의 모교는 요약정보인 초록만 1-2페이지로 영문으로 작성하면 충분했다.
걱정했던 영문 초록은 주변의 영어 능력자들의 도움을 받아 어찌저찌 처리하긴 했지만 직접 할 수 있었으면 더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았다. 만약 내가 직접 할 수 있었다면, 도움을 줄 사람을 찾아 사정을 설명하고 일을 맡기고 이후 결과물이 나오면 소정의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데 가용했던 에너지를 논문의 완성도를 조금이라도 더 끌어올리는 데 쓸 수 있었을 테니까.
밀레니얼 세대 끝자락인 나와 달리, 요즘 아이들은 영어를 훨씬 편안하게 구사하는 교육을 받고 성장해 나중에 나처럼 논문 작업을 할 때 영어 실력이 큰 걸림돌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부족한 영어 실력을 가졌다면 논문 쓰기는 본인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힘겹고 어려운 작업이 되리라는 것을 경고하며 하소연 같은 글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