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사람을 수식하는 단어로 '전업주부'라는 타이틀은 생각 조차 해본 적이 없는 조합이지만
육아 이전, 오로지 나를 위한 이기적인 삶을 살았다면
내 인생에 얼마 정도는 이타적인 삶을 살아도 되지 않을까 생각하며 주어진 삶에 충실하고 있다.
전업주부의 삶 중에는 육아와 살림이 꼭 함께 따라오는 것 같은데,
세간을 꾸리는 것은 나에게 즐거움이고 상당히 큰 관심사라서 어느 정도 적성이 잘 맞다고 생각한다.
네이버 카페에는 특정 인물의 글을 구독하는 시스템이 있는데, 내가 구독하는 사람 한 명의 이야기다.
60대로 추측되는 그녀는 오래된 식탁의 같은 자리에서 매일 같이 토스트와 커피를 마시고,
식물로 가득 찬 베란다에서 시간을 보내기를 좋아한다. (나만의 정원이라고 부르신다.)
늘 올리는 사진은 다르지 않지만 내가 그녀의 시각에서 의미를 찾은 이유는
순간에 대한 애정, 그러한 순간들이 모아진 공간에 대한 애착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30년 된 커피잔, 35년이 되었다는 가구, 40년이 되었다는 패브릭.
이 집의 오래된 물건들은 올드함이 아닌 클래식함이다.
같은 일상을 고요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익명의 그녀에게서
나는 과연 30년 후에 내 집에서 어떤 것을 여전히 소유하고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 본다.
빠르게 변화하는 삶, 발전되는 기술, 쏟아지는 신제품, 패스트푸드 같은 소비,
유행에 맞추어 나오는 제품들 사이에서 내가 고른 물건들.
비싼 물건은 언제고 살 수 있으나 개인의 역사와 손 때가 묻어있는 물건은 가치를 매길 수 없다.
유니클로가 처음 한국에 나왔을 때 샀다는 스토리를 가진 남편의 10년도 훌쩍 넘은 청남방이 좋다.
이 남방을 볼 때마다 남편은 "유니클로가 한국에 처음 왔을 때... "로 시작하는 말을 하는데
그런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이 남방이 좋다.
버리고 정리하는 것을 좋아하는 내가 유독 이 옷만은 처분하지 않은 까닭이다.
언제인지도 기억이 나지 않을 때부터 보아온 본가의 그릇들을 꺼내며
울 엄마는 나의 돌 때 썼던, 동생의 세 돌 때 샀던... 과 같은 식의 부연 설명을 하신다.
엄마에겐 자식의 성장과 함께 한 그릇이기에
내가 보기엔 무척이나 촌스러운 그릇이지만 어떠한 명품 그릇보다 더 가치가 있는 물건이다.
명품은 영어로 designer's product라고 한다.
디자이너의 손을 거쳐서 탄생한 작품으로써의 가치를 지닌다는 뜻이다.
(생로랑, 디올, 샤넬 등이 모두 디자이너의 이름이다.)
너도 나도 들고 있는 명품은 비록 디자이너의 손을 거쳐 만들어진 값비싼 물건이겠지만 그 속에 담긴 이야기는 없다. 진짜 명품이 되려면 그 속에 담긴 이야기가 필요하다.
내가 쉰이 되고 예순이 되었을 때 과연 내 주위에는 어떤 명품들이 남아있을까?
부디 할 얘기가 많은 물건들이 남아있을 수 있도록, 오늘도 애정을 담아 나의 살림살이들을 가꾸고 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