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청환 Nov 15. 2023

우리 형

우리 형

               / 박청환


  친구 하나 없는 골짝 우리 집, 학교 들기 전 종일 혼자 놀다가 학교 마치고 올 때쯤 된 것 같아 자꾸만 건너편 언덕길을 바라보게 만들던

  어쩌다 생기는 용돈 아껴 하굣길 삼양라면 한 봉지 사서 책가방에 넣고 달그락달그락 생라면 먹고 싶은 것 꾹 참고 와서 양은 냄비에 물 한가득 넣고 국수랑 섞어 끓여주던

  충주에서 자취하던 고등학교 때 아침마다 새벽밥 지어 인문계 일 학년 동생 도시락 싸주던 실업계 삼 학년, 그 도시락 밑바닥에 계란 후라이 깔아 주던

  공장 다니는 막내 누나 자취방에 얹혀살며 재수할 때, 금요일까지 내내 야근하고 토요일 오후면 삼겹살 사 들고 와 프라이팬에 구워 주고 밥 굶지 말라며 꼭꼭 용돈까지 챙겨 주던

  합격 소식 듣고는 대학생은 컴퓨터가 있어야 레포튼가 뭔가 한다더라며 어느 날 덜컥 그 비싼 컴퓨터를 사 들고 오는

  IMF 때, 일거리 없어 회사 문 여는 날이 절반도 안 되자 쉬는 날이면 새벽 인력시장 나가 끝끝내 적금 해약 안 하고 내 청약통장까지 대신 부어주던

  치매 초기 엄마 모시고 사느라 아내 눈치 보며, 내게는 걱정 마라 걱정 마라 나는 지금이 좋다 말하는, 아흔의 엄마보다 머리가 더 하얀

  그 국수라면을 먹고 그 후라이 도시락을 까먹고 그 삼겹살로 영양 보충을 하고 그 용돈으로 오락실도 가고 그 컴퓨터로 레포트를 제출하고 하이텔 천리안 채팅으로 밤도 지새고 그 청약통장으로 내 집 마련한 쉰 살의 내가 밥값 좀 내려니 극구 달려와 막아서는

작가의 이전글 어머닌 치매가 아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