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블루 하이웨이 Mar 04. 2021

미나리

미나리처럼 강한 한인의 미국 이주기


나는 미국 사람도 아니며 미국에 살아본 적도 없고 심지어는 미국에 가본 적조차 없다. 그러니 미국인의 관점에서 이 영화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또는 미국으로 이주한 한인의 입장에서 이 영화를 어떻게 해석할지 도통 알 수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세계의 많은 영화상에 노미네이션 되고 특히 여우조연상 부문의 트로피를 주어담고 있는 영화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1980년대

 

제이콥(스티븐 연)과 모니카(한예리)는 미국으로 이주한 한인이다. 캘리포니아에서 병아리 감별사로 일하던 이 부부는 새로운 꿈을 찾아 미국 남부에서도 아주 낙후된 곳이라 할 수 있는 아칸소로 이사를 간다. 매년 3만 명의 한인이 미국으로 이주를 한다는 생각에 남편인 제이콥이 그들을 위한 채소류 따위를 경작할 결심을 한 것이다.     


각오는 했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처참했다. 바퀴가 달린 이동식 주택(이라고 쓰고 컨테이너라 읽는다) 한 채가 덩그러니 있는 너른 초원에서의 삶은 미국식 자연인 되기에 다름 아니었다. 일기예보를 보며 토네이도에 주택이 날아가지 않을까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였다.



젊은 두 부부와 남매만이 있는 집에 아이들의 외할머니(윤여정)가 한국에서 건너온다. 집안 일도 거들고 특히 심장병이 있는 막내 데이빗(앨런 김)을 돌보기 위해서다.     


그녀가 한국에서 가져온 것 가운데 하나는 미나리 씨앗. 집 주변이 온통 들이며 개울이며 숲인 관계로 미나리가 자랄 곳이 널려 있었다.     


다른 하늘 아래, 다른 땅 위지만 사람 사는 것이 뭐 그리 다를까? 부부는 사소한 일에도 언성을 높이고 아이들은 개구지고 할머니는 그런 가족들을 보듬는다. 그들의 입에서 드문드문 나오는 쉬운 영어만 아니라면 그냥 이 땅의 평범한 어느 한국 가정의 이야기라고 해도 될 것이다.

   


억지로 끼워 넣는다면 못할 것도 없지만 이런 영화에 무슨 자극적인 이야기가 있겠는가. 그저 미나리 같은 한인들이 미국 땅에서 뿌리를 내리는 과정이 있을 뿐이다.     


생명력이 질겨 아무 곳에서나 잘 자란다는 미나리는 그 자체가 이주 한국인들의 상징이다. 본인이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연출자 정이삭 감독은 아칸소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아마도 영화 '미나리'에는 그의 자전적인 체험이 녹아 있을 것이다.



흔히 미국을 이민자의 나라라고 한다. 오늘날 미국 사회의 주류인 백인들이나 흑인들이나 히스패닉이나 아시안이나 모두 어디선가 건너오거나 건너온 사람들의 후손이다. 본인도 독일계 이민자의 후손인 트럼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멕 국경에 장벽을 설치하고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영화 '미나리'는 트럼프 집권 이후 할리우드의 대세이기도 한 정치적 올바름을 지향하는 소위 PC(Political Correctness) 영화 계열로 읽힌다. 미국인도 미국 이민자도 아닌 쓰는 이의 입장에서는 이 이상 영화를 달리 해석할 시각이 없다.


   

'미나리'에 출연한 윤여정이 각종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휩쓸고 있다. 일흔이 넘은 여배우는 이제 오스카 트로피를 겨냥한다. 발성부터 거슬리는 이 배우를 개인적으로 좋아하진 않는다.(배우의 자연스러운 연기를 유도하는 홍상수 감독이 왜 이 튀는 여배우를 번번이 캐스팅하는지 알 수 없다) 이 영화에서 윤여정이 연기한 순자는 그녀가 나이 들어 출연한 다른 작품들에서 보여준 캐릭터들의 모습과 별반 차이가 없다. 어쩌면 세계인은 그녀가 연기한 한국 특유의 할머니 정서에 큰 감명을 받지 않았을까.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하긴 했지만 미국 회사에서 미국 자본으로 만든 영화 '미나리'가 골든 글로브에서 작품상 등 주요 부문의  후보에 오르지 못한 것을 두고 국내외에서 말들이 참 많다. 표면적인 이유는 이 영화에서 영어 대사의 비중이 50%에 미치지 못해 작품상 추천 기준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자 국내에서는 쿠엔틴 타란티노의 <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 2009>,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바벨, 2007>  등 영어 대사의 비중이 50%에 미치지 못함에도 작품상에 노미네이션 되어 수상한 영화들의 예를 들며 (미나리가 골든 글로브 작품상에 지명되지 못한 것은) 인종차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미나리'가 작품상에 들지 못한 것이 인종차별적인 이유에서 일까? 그래서 필자는 21세기 이후 골든 글로브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하고 작품상 (노미네이션)은 불발된 영화들을 찾아 봤다.    

 

가깝게는 작년의 '기생충'부터 '와호장룡'(58회),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64회), '아무르'(70회), '로마'(76회) 등이 있다. 이 가운데 특히 미국 보수의 큰 어른인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이 연출한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64회)는 일본군의 시각으로 2차 대전을 그린 미국영화로서 일본어 대사로 진행된다. 뿐만 아니라 마야문명의 붕괴를 그린 멜 깁슨 감독의 미국 영화 '아포칼립토'(2006) 역시 대사가 마야 언어로 진행되는 관계로 64회 골든 글로브에서 외국어영화상 후보에만 올랐을 뿐이다. '미나리'가 인종차별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언론들은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나 '아포칼립토'의 경우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    

 

작년에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비롯 4개 부문의 트로피를 들어 올리자 그토록 아카데미의 인종차별을 비판하던 국내 언론들은 이제 '우리 오스카가 달라졌어요'라고 한다. 그런데 필자가 위에서 든  '와호장룡',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아무르', '로마' 등의 외국어 또는 외국 작품들이 아카데미에서는 모두 작품상 후보에 오른 것을 '기레기'들은 알고 있는지 아니면 알고서도 눈을 질끈 감고 있는지.     

참고로 '미나리'는 할리우드의 대배우 브래드 피트가 설립한 '플랜B'가 제작했다.


               

PS : 물론 필자도 이런 생각은 한다. 자본에 국경이 없는 시대에 도대체 미국 영화는 뭐고 한국 영화는 무엇인가?     


2021.3.4

keyword
작가의 이전글 로맨스 빠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