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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 하이웨이 Oct 06. 2022

윤석열차

대통령의 자유와 고등학생의 자유


윤 대통령의 취임사를 다시 읽어 보았다. 200자 원고지 기준 24장 분량의 글에 무려 35번이나 ‘자유’라는 단어가 나왔다. 취임사에서 윤 대통령은 국내외적인 위기와 난제를 해결해 나가기 위해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그것은 바로 자유라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인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자유로운 정치적 권리와 자유로운 시장이 숨 쉬던 곳은 언제나 번영과 풍요가 꽃 피었다고 했다. 또한 어떤 개인의 자유가 침해되는 것이 방치된다면 나와 우리 공동체 구성원의 자유가 위협받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고등학생이 그린 ‘윤석열차’라는 한 장의 풍자화가 국감을 집어삼키고 있다. ‘제23회 전국학생만화공모전에서 고등부 금상을 수상한 '윤석열차'는 영국 만화 ‘토마스와 친구들’을 패러디한 작품으로 윤석열 대통령의 얼굴이 달린 열차에 김건희 여사로 추정되는 여성과 칼을 세운 검사들이 기관실과 객실에 탑승해 질주하는 모습을 그렸다. 열차 앞의 시민들은 혼비백산 달아나고 있다.


국정감사 이틀째인 5일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는 윤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풍자한 고등학생의 그림을 두고 여야 간에 날선 공방이 이어졌다. 전날 문체부가 공모전을 주최한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 대해 노골적으로 정치적 주제를 담은 작품을 수상작으로 선정한 것은 행사의 취지에 맞지 않다며, 내년부터 후원 중단할 것을 강구 중이라고 한 것을 두고 민주당은 박근혜 정권의 블랙 리스트를 언급하며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다는 입장이다. 이에 반해 정부와 여당은 작품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선정 기준에 어긋나는 정치적 작품이 선정된 된 것을 문제 삼은 것(박보균 문체부 장관)이라거나 해당 작품이 지난 2019년 영국 매체 ‘더 선’에 실렸던 일러스트를 표절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 내부적으로는 어떤 기준이 있었는지 모르겠으나 일단 제23회 전국학생만화공모전 공모 요강(공고번호 2022-129)의 주의 사항에는 별도로 정치적 주제를 담은 작품은 선정에서 배제한다는 기준은 없다. 다만, 순수 창작품으로 저작권에 문제가 없어야 하며 표절작의 경우 사후에라도 수상을 취소한다는 주의 사항은 있다.


‘윤석열차’라는 작품의 선정 과정과 표절 여부는 별도로 다룰 문제라고 본다. 공모전을 후원하는 문체부 입장은 이해하지만, 정치적 작품이라 안 된다는 주장은 터무니없다.


취임사에서 자유로운 정치적 권리가 숨 쉬는 곳은 번영했고 개인의 자유가 침해되는 것이 방치된다면 나와 공동체 구성원의 자유가 위협받게 될 것이라던 대통령이 6일 출근길에서 기자들에게 ‘윤석열차’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 대통령이 언급할 사안이 아니라며 대답을 피하는 것을 보고 아쉬움이 들었다. 쿨하게 ‘이번 일로 어린 고등학생의 창작력이 위축되지 않았으면 한다’는 정도의 말 한마디 했더라면 어땠을까?


겨우 고등학생이 그린 그림 한 장에 국회와 정부가 들썩거리고 있다. 이게 나라냐? 나라가 이래도 되나?


202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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