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골동품 가게나 가야 볼 수 있을 것 같은 악기지만 쓰는 이가 다니던 1970대의 국민학교 음악 시간에는 교실에서 선생님이 연주하는 ‘풍금(風琴)’ 소리에 맞춰 합창을 했다. 풍금이란 건반악기인 오르간의 일종으로 발로 페달을 밟아 일으킨 바람으로 소리를 내는 악기다. 그런데 이 악기가 각 학급마다 비치되어 있는 건 아니라서 음악 시간이 되면 학생들이 음악 수업이 끝난 다른 반에서 풍금을 가져오고는 했다.
풍금 이야기로 시작한 것은 소개하려는 영화 제목이 ‘내 마음의 풍금’(1999, 감독 이영재)이기 때문이다. 1960년대, 사범학교를 갓 졸업한 스물한 살 청년 강수하(이병헌)는 산리라는 산골의 한 국민학교에 첫 발령을 받고 5학년 담임을 맡는다.
출생 신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는지 같은 5학년이라도 나이가 서너 살이나 많은 아이들이 있었는데 홍연(전도연)이라는 아이도 그랬다. 영화에서는 열일곱의 국민학교 5학년생이라 설정했으니 담임선생인 수하와는 사제지간이라기 보다는 오누이뻘이었다.
어느 날 수하는 복도 쪽의 창틀에 내놓은 홍연의 팔꿈치를 살짝 꼬집었다. 수하는 별 뜻 없이 한 행위였으나 다르게 받아들인 홍연은 일기장에다 수하의 의도를 묻는다. 이후 홍연의 일기는 연서가 되어 수하에게 전달되고 그런 홍연의 일기를 지도하는 수하는 곤혹스럽기만 하다.
한편 수하는 같은 학교에 부임한 연상의 여선생 양은희(이미연)에게 연정을 품고 서울에서 가져온 LP 판을 빌려주기도 한다. 이 장면은 본 홍연은 일기에 양선생에 대한 비난을 쓰고 수하와 양선생이 교실에서 함께 풍금을 치며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목격한 아이들은 강선생과 양선생이 사귄다며 화장실에 낙서를 한다.
수하가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기 직전 양선생은 약혼자를 따라 미국 유학길에 오른다. 이후 수하도 학교를 떠나는데 마지막 날 홍연이 전해준 일기장에는 이렇게 혈서가 쓰여 있었다.
선생님, 선생님, 선생님, 선생님...
‘내 마음의 풍금’은 원작이 있는 영화다. ‘수난이대’로 널리 알려진 하근찬 작가의 ‘여제자’가 원작 소설인데 이 중편소설은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쓴 것이라고 작가가 밝혔다.
교사 경력이 있는 작가가 열아홉의 나이에 국민학교에 발령받았을 때 만난 한 여학생과의 일화를 30여 년이 지나 소설로 쓴 작품이 ‘여제자’이며, 이 소설을 읽고 이영재 감독이 1999년 발표한 영화가 ‘내 마음의 풍금이다.’ 그러니까 원작의 사건이 발생한 시기는 6.25 이전인 1949년이며 소설이 발표된 시기는 1981년, 영화는 개봉 시기로부터 약 30년 이전인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한다.
원작 소설의 시간적 배경인 1949년에는 몰라도 아무리 산골이지만 1960년대 후반에 한두 살 정도도 아니고 또래보다 다섯 살이나 많은 학생이 한 반에 있었다는 영화적 설정은 조금 받아들이기 어렵다.
수하가 짝사랑하던 상대로만 나오는 소설과 달리 영화에서는 양은희에게 장학사 나오니까 아이들 바닥 청소시키라는 교장의 명을 거부하는 의식있는 여선생의 캐릭터를 부여했는데 그만 슬그머니 자취를 감춘다. 영화가 소설의 세계를 넘어서지 못한 것이다.
30년 후 홍연이 수하를 찾아오는 것으로 시작하는 원작은 수하의 회상으로 전개되는데 영화에는 30년 후의 홍연이 수하를 찾아가는 장면은 없고 뒷모습만 보이는 한 중년 여인(아마도 홍연)이 LP판을 듣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러니까 영화는 수하가 아닌 홍연의 회상이다.
원작보다 영화를 먼저 본 쓰는 이는 수하가 홍연이 전한 혈서를 읽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고 꽤 충격을 받고 스릴러물로 만들었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소설에서도 이 부분은 그대로인데 작가가 자신의 경험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소설을 쓴듯하다.
‘내 마음의 풍금’이라는 영화 제목은 썩 잘 지은 제목이다. 앞서 설명한 풍금은 그 시절로 돌아가는 매개물인 것이다.
PS : 국민학교라고 하면 초등학교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1996년 이전에는 국민학교라 불렀으므로 당시의 일화를 전할 때는 국민학교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다. 1996년 이전을 배경으로 한 작품을 설명하며 국민학교를 초등학교로 부른다면 일제강점기 시절의 소학교나 보통학교를 초등학교라 불러야 하나?
2022.1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