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을 거스르는 모험과 복수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는 ‘경험 가득한 긴 여정’이라는 뜻의 단어, ‘오디세이’를 탄생시켰다. 그만큼 고대 서사시로서 『오뒷세이아』가 갖는 의미는 지대하다. 『오뒷세이아』는 『일리아스』와 함께 서사시 문학의 최정점이자 동시에 종말을 알리는 작품이다. 보통 한 장르의 시대적 종료는 가장 뛰어난 작품이 탄생하는 시점으로 본다. 『일리아스』 편에서 얘기했던 대로, 긴 세월 많은 사람들에 의해 구전되고 다시 쓰임을 반복하며 완성된 호메로스의 두 작품이 그러하다. 또한 『오뒷세이아』가 그리스 신화의 마지막을 장식한다는 점도 훗날 이 작품명이 갖게 된 의미를 생각하면 흥미롭다.
호메로스가 1명의 개인이 아니라는 설에 신빙성을 더해줄 만큼, 『오뒷세이아』와 『일리아스』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일리아스』가 거대한 전쟁에 휘말린 사람들과 신들이 펼치는 이야기를 군집체의 형태로 보여 주었다면, 『오뒷세이아』는 오뒷세우스와 그 가족의 개인적인 이야기다. 그래서 『일리아스』를 역사에서 지우면 거대한 공백이 발생하지만 『오뒷세이아』는 그렇지 않다. 문체에서도 큰 차이를 보인다. 『일리아스』에서는 등장인물들의 감정 묘사가 지극히 제한되어 있는 반면, 『오뒷세이아』에서는 주요 내용이 복수극인 만큼 주인공의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오뒷세이아』는 크게 모험극과 복수극 두 부분으로 구분된다. 모험극은 오뒷세우스가 포세이돈의 아들 폴리페무스의 눈을 멀게 하면서 미움을 사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바다의 온갖 재난에 휩쓸려 모험하는 부분이다. 오뒷세우스는 트로이 전쟁에서 트로이 목마 전술을 만들어낸 장본인인만큼 뛰어난 지력을 가지고 있으며, 그런 특유의 지혜와 꾀를 발휘해 온갖 역경을 헤쳐 나간다. 운명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찾아 나가는 모습이 인상적인데, 이는 『일리아스』의 영웅들과 사뭇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일리아스』의 영웅들은 신들이 만들어낸 거대한 운명 앞에서 몸부림치지만 결국 굴복하고 만다. 최고의 명장인 아킬레우스와 헥토르는 물론 수많은 영웅들이 운명 앞에 스러진다. 그러나 오뒷세우스는 운명을 거스른다. 신의 분노를 피해 살아남고, 심지어는 그 눈물겨운 몸부림으로 신들의 마음마저 움직여 그를 돕게 만든다.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를 대표하는 두 영웅 아킬레우스와 오뒷세우스는 두 작품의 주제의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아킬레우스는 삶보다는 명예를 택하고 용맹하게 싸우다 운명에 따라 죽음을 맞는다. 오뒷세우스는 명예보다는 삶(가족)을 택하고 갖은 꾀를 부리며 처절하게 살아남는다. 두 영웅의 대비는 오뒷세우스가 헤르메스의 조언에 따라 저승을 방문하는 장면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저승에서 만난 아킬레우스는 꽤나 지위가 높은 판관의 역할을 하고 있는데, 저승에서의 명예가 무슨 의미가 있냐며 허무주의에 빠져 있다. 죽어서 왕이 되는 것보다 이승에서 노예로 사는 것이 낫다는 말까지 한다. 그가 생전에 명예를 위해 삶까지 포기했던 것을 생각하면 놀랍지 않을 수 없다. 『일리아스』에서 『오뒷세이아』로 넘어가면서, 거대한 역사에서 개인의 서사로, 죽음과 명예에서 삶과 가족으로 초점이 변화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오뒷세우스가 힘겨운 모험 끝에 고향에 돌아온 뒤에는 복수극이 펼쳐진다. 아들 텔레마코스와 충직한 하인인 돼지치기와 말치기를 만나 아내 페넬로페의 구혼자들을 어떻게 처치할지 계획하고 실행에 옮기는 부분이다. 뛰어난 지혜와 그 못지않은 무력을 발휘하며 제 것을 되찾는 장면이 통쾌하게 펼쳐진다. 오뒷세우스의 아내 페넬로페는 그 긴 세월 남편 못지않은 현명함으로 구혼자들을 밀어내 왔고, 결국 20년 만에 귀환한 오뒷세우스를 맞이한다. 오뒷세우스를 다시 만나서도 둘만 아는 비밀을 물어 그의 정체를 재확인하는 부분 역시 그녀의 신중함과 현명함이 드러나는 장면이다. 또한 오뒷세우스가 저승에서 아가멤논을 만났을 때 아가멤논이 오뒷세우스와 그의 아내 페넬로페를 보며 부러워하는데, 이는 아가멤논이 트로이 전쟁 후 귀환하자마자 바람을 피운 아내와 내연남에게 살해당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작품 전반에서 페넬로페의 정숙함과 인물됨이 강조된다.
오뒷세우스를 기준으로 작품을 두 부분으로 나누었지만, 작품 중간중간 텔레마코스의 이야기와 페넬로페의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독자로 하여금 구혼자들에 대한 분노를 키우고 오뒷세우스가 귀환하여 복수해 주기를 바라도록 만든다. 그러하니 오뒷세우스가 돌아와 복수하는 장면에서 카타르시스가 터져 나온다. 앞의 모든 역경들이 그 순간만을 위해 쓰인 것 같은 기분이 들며, 고대 서사시라기보다는 현대 작품에 더 가깝게 느껴질 정도로 대중적인 플롯을 띠고 있다. 이러한 극적인 전개와 피날레 덕분인지 『오뒷세이아』는 고대 서사시의 정점이자 마침표가 되어 2천 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사랑받으며 많은 작품에 영향을 주고 있다.
보통 그리스 신화의 끝을 『오뒷세이아』로 본다. 그 거대하고 화려한 세상이 한 인간의 모험담과 함께 지극히 개인적인 분노와 복수, 행복을 이루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인상적이다. 결국 신이든 신화이든 모두 인간에 의해, 인간을 위해 쓰였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