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발미키 『라마야나』

인도 문화의 근간이 된 대서사시

by 이내

『라마야나』는 『마하바라타』와 더불어 인도 문화권을 대표하는 서사시로 꼽힌다. 구전되어 오다가 발미키라는 사람에 의해 편집된 것으로 여겨진다. 원전은 『마하바라타』와 견줄 정도로 방대한 데다, 완역본도 이제 막 나오기 시작한지라 인도 작가 R.K. 나라얀이 편집한 축약본을 찾아 읽었다.


<일리아스>와 <마하바라타>, 그리고 <오뒷세이아>와 <라마야나>


고대 인도를 대표하는 서사시인 『마하바라타』와 『라마야나』는 공교롭게도 각각 고대 그리스를 대표하는 서사시 『일리아스』 및 『오뒷세이아』와 닮았다. 모두 각 문화권을 대표하는 신화와 엮여 있음은 네 작품을 관통하는 공통점이다. 인도에서는 『마하바라타』가, 그리스에서는 『일리아스』가 먼저 쓰이고 다른 두 작품이 나중에 쓰였는데, 쓰인 순서에 따라 갖고 있는 공통점도 있다. 먼저 쓰인 『마하바라타』와 『일리아스』는 작은 갈등으로부터 시작되어 역사를 뒤바꾸어 놓은 거대한 전쟁 서사시이며, 나중에 쓰인 『라마야나』와 『오뒷세이아』는 한 영웅이 자신의 자리를 찾기까지 온갖 모험과 역경을 이겨내고 빼앗긴(빼앗기기 직전인) 아내를 되찾는 이야기다. 앞의 두 작품은 거시적인 역사를, 이후 쓰인 뒤 두 작품은 개인적인 서사를 다루었다. 이러한 문학적 변화가 각기 다른 문화권에서 비슷한 양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 흥미롭다.


물론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큰 차이가 있다. 『오뒷세이아』의 주인공 오딧세우스는 평범한 인간이지만 신의 총애를 받고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여 역경을 헤쳐 나간다. 『라마야나』의 주인공 라마 역시 능력 있고 훌륭한 인간으로 묘사되는 건 맞지만 일단 이쪽은 태생이 비슈누의 화신이며, 세상에서 혼돈을 제거하겠다는 신의 의지를 품고 태어난 인간이다. 『마하바라타』와 『일리아스』를 비교해도 알 수 있지만 인도 문화권이 그리스에 비해 신의 권능에 더 의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아무래도 서구권은 수렵과 채집을 주된 생존 전략으로 삼았기에 개인의 능력이 더 중요시되었다면, 동양 문화권에서는 천재지변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농경 생활 위주로 생존했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그리고 인도 쪽의 선악 구분이 더 확실하다. 『오뒷세이아』에서는 어찌 되었든 인간들 간의 갈등이 주이며, 각자의 상황에서 자신의 이득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현실적이다. 반면 『라마야나』는 인간(신의 화신)과 악마의 대결이다. 다만 악마라고 해서 무작정 일차원적인 성격만 있지는 않다. 악마들 역시 고뇌하고 반성하거나 때로는 인간의 입장에서 이해되는 행동과 생각을 하기도 한다. 이러하니 인도 문화권에서는 소수지만 라마의 정적인 라바나를 추종하는 세력도 있다고 한다.


인도의 정신 그 자체가 된 『라마야나』의 명과 암


『라마야나』는 인도 사람이라면 모를 수 없을 정도로 대중화되어 있으며, 대부분의 국민이 『라마야나』 드라마를 보고, 드라마를 연장하라며 파업까지 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단군신화쯤 될 법 하지만, 단군신화보다는 훨씬 구체적이고 방대한 서사이다. 그렇다 보니 단순히 신화로만 남아있는 단군신화와 달리, 『라마야나』 쪽은 종교와 정치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며, 당연하게도 국민들의 삶에도 영향을 준다. 이는 민족주의 측면에서는 장점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민족의 분열을 초래하기도 한다. 이야기상 라마가 신격화되기 때문에 그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트집거리가 되고 논쟁거리가 된다. 나아가 그의 형제, 아내, 자식에 대해서도 엄격한 잣대가 세워지고 급기야는 그를 비난하며 그의 적인 악마들을 숭배하는 세력도 나타난다.


이러한 면에서 『오뒷세이아』와는 비슷하면서도 큰 차이를 보인다. 오디세우스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인간이다. 지능과 체력 면에서 조금 더 우수할 뿐이다. 그가 잘못된 선택을 하거나 비난받을 행동을 했다고 해도 인간의 무수한 결점 중 하나로, 혹은 창작물에 현실감을 더해주는 결점으로 여길 수 있다. 하지만 라마는 비슈누의 화신이다. 물론 작품 내에서도 '비슈누의 화신이지만 인간으로서의 한계가 있고 기억을 모두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결점이 있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종교나 정치의 영역으로 넘어가면 이는 비단 창작물 속 주인공이 아니라 사람들의 이념을 장악할 수 있는 신 그 자체가 되어버린다. 대중은 이런 개념에 매몰되기 쉽고, 사회적 분란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렇게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치는 민족의 역사 서사시가 존재함은 그들의 큰 자랑이다. 인도인들은 『마하바라타』와 『라마야나』의 화려하고 지혜롭고 정의로운 영웅들과 신들을 보며 큰 위안과 자부심을 갖는다. 마치 우리가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을 볼 때처럼.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이 한국 사회에 미치는 의미와 존재감, 영향력을 생각해 보면 인도에서 라마의 존재가 얼마나 거대할지 알 수 있다.

Legends_of_Ramayana_with_Amish.jpg 『라마야나』는 인도에서 드라마로 제작돼 선풍적 인기를 끌 정도로 전 국민의 사랑을 받는 이야기다.


『라마야나』에서 라마 만큼이나 인상 깊은 등장인물은 원숭이 부족의 '하누만'이다. 원숭이 왕 발리가 그의 동생 수그리파를 내쫓았는데, 수그리파의 부하가 하누만이다. 이들의 모습은 라마가 왕좌를 이을 자리에서 쫓겨나 동생 락슈마나와 함께 고난을 겪는 모습과 닮았다. 라마는 그런 그들을 도와 발리를 처단하고 수그리파에게 왕좌를 찾아 주며, 그 과정에서 하누만은 라마에게 감화되어 그의 영원한 충복이 된다. 하누만은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라마의 가장 충직한 부관으로 남으며, 라마가 상을 내린다고 해도 모두 거부하며 라마 곁에 있는 것만으로 만족한다는 극강의 충성심을 보인다. 이에 라마는 하누만에게 영생을 선물했으며, 하누만은 훗날 신격화되어 인도 문화권의 중요한 존재로 자리잡는다.


하누만을 보면 『서유기』의 손오공이 떠오르는데, 실제로 하누만을 손오공의 원형으로 보는 해석이 있다. 다만 하누만은 처음부터 정의롭고 충직한 원숭이었고, 손오공은 천방지축에 제멋대로 독불장군이었다가 삼장법사에 의해 감화되는 것으로 나온다. 아마 손오공이 하누만으로부터 왔다면, 하누만과 발리를 합쳐 놓은 것으로 보인다. 처음에는 발리와 같던 손오공이 라마(삼장법사)를 만나 하누만으로 갱생하는 셈이다. 『서유기』에도 『라마야나』처럼 다양한 요괴와 악마들이 등장하고, 하필 이들이 불경을 가지러 가는 목적지는 다름 아닌 인도이다.


1653_CE_Ramayana_manuscript,_Mewar_manuscript,_Kiskindha_kanda,_Rama_and_Lakshmana_arrive_at_Lake_Pampa_(now_Hampi,_Vijayanagara),_Hanuman_finds_them.jpg 라마와 동생 락슈마나가 원숭이 왕국 바나라를 방문하는 장면. 여기서 라마의 충복이 되는 하누만을 만난다.


남편을 따라 죽는 악습 '사티'의 유래


『라마야나』가 인도 문화에 긍정적인 영향만 준 것은 아니다. 결말부에 라마는 아내 시타가 납치되어 있는 동안 정조를 지키지 못했을 것이라 의심하여 내친다. 시타는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불로 뛰어들고, 이에 감화된 신들에 의해 어떤 해도 입지 않는 것으로 결백을 증명받는다. 라마는 이를 두고 '자신은 시타를 믿지만 세간에 떠도는 소문들과 이로 인한 불신을 털어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벌인 일'이라고 설명한다. 라마의 생각과 행동이 이해가 되면서도, 그가 세상에 미치는 영향력을 생각하면 이는 단순히 '그럴 수 있다' 하고 넘어갈 문제는 아니다. 신의 화신인 라마조차도 세간의 시선을 의식하여 자신의 아내를 시험에 들게 했다는 이야기는 여성 스스로 결백을 증명해야 하는 굴레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남편이 죽으면 화장하는 불 속으로 아내가 스스로 뛰어들어 죽음을 맞는 풍습인 ‘사티’가 이 시타로부터 유래됐다는 설이 있다. 이는 현대에 와서도 일부 부족에서 행해지고 있는 악습으로, 실제 이를 거부한 여인의 다큐가 제작되어 회제를 모으기도 했다. 스스로 뛰어든다고 하지만 그걸 거부한 여자는 온갖 멸시와 돌팔매까지 받아 정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없다. 이것이 타인에 의한 강제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the-sati-of-ramabai-bba17b-1024.jpg 남편이 죽어 화장할 때, 아내가 뛰어들어 함께 죽는 '사티'는 라마의 부인 '시타'에서 유래한 것으로 본다.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를 비교할 때도 그랬지만 『라마야나』가 개인의 일대기를 그린 이야기임에도, 국가 간 대전쟁을 그린 『마하바라타』보다 더 많은 생각을 들게 한다. 절대적인 신의 권능이나 국가의 정체성보다 개인의 생각과 행동, 신념이 드러나는 이야기가 결국 현세를 사는 인간들에게 더 깊게 와닿는 것이고, 그러니 문학작품도 서서히 그 방향으로 발전해 나갔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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