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자 미상 『길가메시 서사시』

삶과 죽음의 의미를 고찰한 인류 최초의 문학

by 이내

『길가메시 서사시』는 인류 최초의 글자인 쐐기문자로 기록된 가장 오래된 문학 작품이다. 기원전 약 3,500년부터 점토판 기록이 있고, 수천 년에 이어 필사됐다. 소실 및 파손된 부분들이 많아 텍스트의 양 자체는 적지만 지금으로부터 5천5백 년 전의 인간들이 어떤 모습으로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떤 갈등 속에서 살았는지 생생하게 접할 수 있다. 이야기 자체도 흥미롭다. 기본적으로는 영웅담이지만 그 안에 들어 있는 주제는 ‘삶과 죽음’이다.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을 것이며 어떻게 죽음을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질문과 고민은 최소 5천 년의 유구한 역사를 가진 셈이다.


『길가메시 서사시』의 주된 내용은 길가메시와 그의 단짝 엔키두의 모험이다. 당시 인간 세상은 기존 문명을 파괴시킨 대홍수 이후 도덕도 체계도 없는 혼란스러운 상태였고, 신들은 길가메시가 이를 바로잡기를 바랐다. 그러나 길가메시는 안하무인 군주였다. 국가를 돌보는 일은 뒷전이고, 무엇이든 본인이 원하는 것만 하고 지냈으며 초야권을 행사하는 등 백성들을 괴롭혔다. 이에 천신 아누는 길가메시를 벌하고자 길가메시의 적수가 될만한 자를 탄생시켜 파견하는데, 그가 바로 엔키두다. 그런데 신들의 의도와 달리 둘은 판가름이 나지 않는 결투 끝에 서로에게 매료되어 친구가 되어 버린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으로 엔키두라는 강력한 충복을 얻은 길가메시는 악행을 멈추고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기 위한 모험에 나선다. 다른 국가를 정복하고, 삼나무 숲의 괴물 후와와를 처치하고, 세상의 끝으로 향해 영생을 얻고자 한다. 한데 그 과정에서 길가메시가 신의 화를 사는 일을 저지르고, 신의 피가 섞인 길가메시를 죽일 수는 없어 대신 엔키두가 죽는다. 엔키두의 갑작스럽고 무력한 죽음을 목도한 길가메시는 삶에 대한 회의와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그는 영생을 얻고자 대홍수에서 살아남아 영생을 얻은 인간을 찾아 나서지만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인간의 한계만 확인한다. 그 과정에서 길가메시는 유한한 삶이 주는 의미와 가치를 깨닫고, 국가와 백성에 힘 쏟는 성군으로 거듭난다. 신의 의도를 다소 벗어나기는 했으나, 어쨌든 엔키두에 의해 길가메시가 정신을 차리면서 인간 세상은 신들이 바라던 대로 다시 문명의 모습을 갖추어 간다.


『길가메시 서사시』는 최초의 문학인 만큼 사료로서의 가치가 높다. 특히 작품 속 주요 사건으로 언급되는 대홍수는 노아의 방주로 유명한 그리스도교 성경 속 대홍수를 비롯해 각종 문화권에 기록된 대홍수의 원조인 셈이다. 다만 이후의 대홍수 이야기들을 모방이라고 볼 수만은 없다. 고대 문명들은 대부분 강을 따라 발전했고, 특히 바다와 인접하여 평야가 발달한 하구 쪽에 문명이 집중되어 있었다. 오늘날에도 폭우나 태풍, 허리케인 등으로 인한 홍수 피해는 국가 재난급 피해를 일으키는 바, 5천 년 전 홍수는 그야말로 문명의 근간을 뒤흔드는 대재앙이었을 거라 짐작할 수 있다. 대부분의 고대 문명은 적어도 한 번씩은 이런 재해를 겪었을 터이고, 저마다 그 사건을 신의 형벌로 기록하였을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대홍수와 관련된 신들의 모습이다. 본 작품에서 묘사되는 신들은 전지전능한 듯 하지만 인간이 바치는 공물을 먹고살았기에 인간과 상호 의존적인 관계다. 그런 신들이 인간을 벌하겠다고 홍수를 일으켰다가 의도치 않게 몰살 수준이 되어버렸고, 공물을 바칠 인간이 사라지자 신들은 굶주리기 시작했다. 이에 신들은 편법으로 살아남은 한 인간에게 영생을 주고 그를 신격화해 문명을 재건토록 할 수밖에 없었다. 세상을 창조하고 권능을 행사하는 신들이 인간처럼 경솔하게 행동하는 것을 넘어 인간에 의존하는 모습이 의아하다. 다만 이러한 설정은 당시 지도층이 국가를 통치하고 지속적인 생산을 이끌어내어 부를 축적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 거라 짐작해 볼 수 있다. 어쩌면 그런 목적으로 신화를 기록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당시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가 얼마나 매력적이었는지, 이후 아카드어와 수메르어가 사장되는 수준에 이르러서도 이 설형문자를 사용한 필사본만은 계속 이어졌다. 현대인들이 종교적 이유로 라틴어를 배우고 유지해 나가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길가메시 서사시』를 기록한 점토판은 지금도 계속 발굴되고 있으며, 그때마다 새로운 내용이 추가되고 작품에 대한 해석이 달라지기도 한다. 5천 년이 지났음에도 어떤 의미에서는 여전히 살아있는 문학 작품인 셈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