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히 설명되지 않는 감정
잘난 친구들 사이에서 혼자만 안 풀려 시기와 질투로 괴로워 미쳐버린 인간의 평화 찾기를 따라가는 드라마
4화 지하철 씬에서 감정워치에 뜬 ‘알 수 없음’은 ‘무가치함’을 뜻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황동만과 변은아는 자신의 환경을 바꿀 수 없다고 느끼는 순간마다 이 반응과 마주하기 때문이다. 변은아는 그런 상황에서 코피를 흘리는데, 엄마가 자신을 떠난 2학년 때부터 시작되었다. 아이러니한 점은 변은아가 황동만에게 동질감을 느끼고, 감정을 투영하게 된 순간에도 코피를 흘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황동만은 형이 죽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과 그것을 막기 위한 선택의 순간이 찾아올 때 나타난다. 6화에서 이러한 감정을 변은아는 '자폭하는'이라고 정의하고 황동만은 '도와줘'라고 정의했다. 즉, 자신 혼자 해결할 수 없다는 생각이 폭발하고 넘쳐 결국 누군가의 손길을 구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감정, 그것이 ‘무가치함’ 일지도 모른다.
5화 초반에 황동만이 토하고 눈을 보는 장면에서 그는 이 상황을 기쁘게 받아들이지만, 감정워치는 '씁쓸'이라는 빨간색 불빛을 띄운다. 이를 '사랑은 관념적이라서 감정워치에 뜨지 않는다'라는 대사로 바라볼 때 감정단어조차 관념적 영역에 발을 걸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황동만이 마재영에게 '너도 똑같다'라는 말을 듣고 씁쓸하게 앉아있는 모습에서 무가치한 존재가 될까 두려워하는 공포처럼 보였다. 그래서 황동만이라는 인물의 바닥에는 늘 불안이 깔려 있다. 그러한 황동만에게 변은아의 문자는 자신의 무가치함이 잘못되지 않음을 알려주는 은은한 위로와 같아서 감정워치에 초록색 불빛이 나온 거라고 생각한다.
박경세가 박영수에게 전화로 고해성사를 하는 장면과 박영수가 8인회 멤버들에게 호통치는 장면은 황동만의 빛나는 부분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인물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같은 장소에 있는 변은아는 황동만의 빛나는 부분을 알려주려고 하는 인물이라는 것을 강력하게 대조적으로 보여준다. 왜 빛나는 인물을 그림자 속으로 밀어 넣는 것일까? 열등감이다. 그들은 열등감이 드러나는 순간, 자신의 성공이 물거품처럼 사라질까 봐 더 숨기려는 것이다. 오히려 자기방어로 인해 과장된 행동을 하지만, 앞과 뒤가 같은 황동만이 성공한 이들보다 더 나아 보인다.
황동만의 빛나는 부분을 알아본 또 다른 인물은 장미란이다. 장미란과 변은아는 다른 방식으로 보는데, 장미란은 기존 감독과 다른 행동과 말투를 가진 황동만을 흥미로워하고 변은아는 황동만이 바라보는 세상을 이해한다. 그런 변은아를 황동만은 알아보고 같이 나아가려고 한다. 즉, 황동만과 변은아는 빛나는 부분을 세상으로 끄집어낼 수 있게 하는 이로운 공존관계라는 것이다. 그 예시로, 황동만의 빛나는 부분은 스토리텔링이지만, 말에서 글로 옮길 때의 힘이 약하다. 그러한 단점을 변은아가 보완해 줄 것이다. 변은아는 남들이 하자라고 치부하는 글 안에 있는 잠재력을 발견하지만, 남들에게 그런 부분을 설득시킬 힘이 약하다. 그러한 단점은 황동만이 보완해 줄 것이다.
사랑조차 성장의 발판으로 삼아온 작가의 전작들처럼 이 드라마 역시 그런 흐름으로 전개될 것 같다. 이 드라마의 끝에서 황동만과 변은아는 어떤 성장을 했을지 궁금해진다. 6화는 황동만과 변은아의 이야기를 확장해서 주변인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황동만의 형인 황진만의 무가치함은 자신도 모르게 입양을 보내게 된 딸에 대한 죄책감이고, 변은아의 친엄마인 오정희의 무가치함은 딸을 버리고 선택한 화려함 속에서도 채울 수 없는 공허함이다. 이제부터는 제목처럼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를 보여주기 위해서 주변인의 무가치함을 비출 것이다.
6화는 수미상관 방식을 보여준다. 초반의 황동만은 행복한 상상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망쳐진다고 하지만, 후반의 황동만은 행복한 상상을 완성한다. 이 드라마도 그렇지 않을까? 올라갔다 싶으면 곤두박질치는 하루를 반복하다가 어느 순간 그 하루에도 무너지지 않고 자기의 호흡대로 가는 인물들을 마주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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