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의 생경함

by 블루잉오렌지



1. 세상의 사정에 어둡고 완고하다.

2.익지 않아 세련되지 못하고 딱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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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경함이라는 단어는 경계 사이에 서서 발 한 걸음을 디딜까 말까 디디고 싶지만 여전히도 고민스러워하는 내 모습을 상징하는 단어인 것 같다.


농익어가고 싶지만 천성이 둔하고 무딘 나는 세련되게, 다른 사람들의 당연함에 당연스럽게도 맞추는 일을 하지 못하고 어색하고 경직되어있다.


그런 주제에 또한 천성이 완고하고 어두운 나는 세상이 돌아가는 모습에 아무런 관심이 없고 나만의 기준, 나만의 시야를 절대적인 진리라 스스로 합리화하며 살아가고 있다.


또한 나는 세련되어지고 싶다. 그리고 유연해지고 싶다. 어쩌면 사람은 태생부터 자신이 가질 수 없는 것을 동경하고 탐하게끔 되어있나 보다.


나는 내 무딤을 적극적으로 이용해서 내 눈을 가리고 '지옥'으로 발을 디디고, 이를 성장이라고 적극적으로 포장하면서 나의 변화를 탐닉한다.


사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성장이란 말이 틀렸다는 건 아니지만 나의 어떤 이기적인 시야로 보자면 이건 단순히 쾌락적인 자해행위와도 같다.


예전부터 피상적인 의미로든 추상적인 의미로든 물어뜯는 것을 좋아했다. 그런데 남을 물어뜯을 수는 없으니 가장 만만한 나 자신을 물어뜯는 것이다.


그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중심적으로 살아왔더니 나는 성공적으로 세상에 물들어갔지만 농익지는 않았다.


나는 항상 투명한 유리벽을 통해 세상을 느낀다. 반사되는 것 없도록 유리벽을 닦고 닦고 닦고 그럼에도 여전히 인간인 이상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는 없겠지만 최대한 노력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한가운데가 뚫린 가지각색의 모양의 틀을 눈알에 끼우고 세상을 바라본다고 한다면 나는 그 반대다. 내 눈알 모양 그대로 아주 얇은 유리막을 정성스럽게 전부 덮는다.


사람들은 가지각색의 모양대로 세상을 왜곡하는 대신 막힌 곳 없이 순수하게 느끼지만, 나는 세상이 둥글면 둥근대로 네모나면 네모난대로 적응하는 대신 모든 느낌이 막혀있다.


나는 내 눈앞의 것은 보지 못하고 먼 곳은 그대로 지각한다. 아이러니하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항상 생경하다. 나는 나의 삶이 생경하다. 모든 순간순간이 생경하다. 세상이 생경한 게 아니라 나 자신이 생경함과 하나다.


아마 생경함이라는 단어 자체에 익숙해지는 순간 나는 모든 순간순간이 세련되어질 터이다.


내 눈알에 덮인 이 유리막이 내 피부와 합쳐져 느끼지 못하게 되면. 내 허리를 지탱하는 녹슬지 않지만 내게 녹아든 철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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