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떠나보냈다.
눈물은 나오지 않았지만, 마음속 어딘가 깊은 곳에서 무언가 무너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 무너짐을 슬픔이라고 부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그 단어의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없었다. 슬픔은 그저 흘러가는 시간 속에 묻히는 감정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오늘, 이를 눈앞에서 마주하게 되었다.
장례식장은 언제나 같은 온도를 가진다. 건조한 공기가 팽팽히 흘렀다. 이곳에서 감정은 말라버리기 쉽다.
상복을 입은 사람들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서로의 어깨를 토닥이지만, 그 위로는 누군가의 생이 끝났다는 엄연한 현실이 무겁게 자리 잡는다. 나는 그날도 손가락 끝을 타고 올라오는 한기를 느끼며 정적에 휩싸인 복도를 걸었다.
오늘의 장례식은 평범했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바라던 것처럼. 큰 충격이나 다툼 없이 조용히, 그러나 냉정하게 끝을 맺는 의식. 예의와 절차가 중요한 자리에서 누구도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가끔 한적함을 깨는 울음소리가 들리기도 하지만, 대개는 침묵이다. 그 침묵이야말로 우리가 가진 가장 오래된 문화일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도 그곳에서 보았던 불꽃의 색깔을 잊을 수 없다. 건조한 공간에 건조한 불꽃이 타오른다. 흔히 우리는 불꽃을 붉고 뜨겁다고 생각하지만, 그날 본 불은 마치 온기 없는 잿빛이었다. 그 무미건조한 점이 무엇보다도 인상깊었다.
그리고 그 불꽃의 끝에서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감정의 표면을 마주한다.
사람들은 '마지막'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살아 있는 동안 우리는 수많은 사람을 만난다. 그 만남이 언제나 특별하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마지막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그 마지막을 어떻게 맞이할지 고민하고, 어떻게 기억될지를 걱정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남은 자들이 그 끝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일 것이다.
그녀가 떠났을 때, 나는 그 마지막 순간을 지켜보지 못했다. 모든 것이 너무 갑작스러웠다.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때는 입관실의 차가운 침대 위에 누워 있는 그녀가 있었다. 지그시 눈이 감겨 있다. 이를 따라서 내 눈도 조금씩 감긴다. 아릿한 저미는 감정이 조금 싹텄다. 신기하기도 하지.
그때부터 나는 죽음이란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마지막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그 장례식장의 건조한 공기다. 그리고 그 공기 속에서 차분히 머리 숙이며 손을 모으고 있던 사람들. 그날의 풍경은 흐릿하지만, 모호한 기억은 여전히 또렷하다.
애써 눈물을 참으며 서로를 위로하는 사람들, 조용히 예를 갖추며 향을 올리는 손길, 그리고 그 손끝에서 전해지는 미묘한 떨림. 가지각색의 것들이 그녀와의 마지막 순간을 정의하고 있었다.
죽음을 떠나보내고 남는 것은 다만 기억과 그 기억 속에 파묻힌 감정, 정의뿐이다. 하지만 그 정의는 각각 전부 다르다.
그날, 불꽃이 타오를 때, 나는 모든 감정이 잦아드는 것을 느꼈다. 시체를 태운 빛깔 또한 잿빛이다. 생이 끝나는 순간, 이전에 어떠한 화사한 빛깔을 가졌던 이라고 한들 전부 잿빛으로 변한다.
죽음은, 누군가에겐 분명 큰 상실이다. 그러나 그 상실을 감당하는 방식은 각기 다르다. 어떤 이들은 슬픔을 적나라하게 울부짖고, 어떤 이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죽음을 통해 무미건조한 성숙으로 나아간다.
돌아오는 길,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회색이었고, 이따금씩 빗방울이 떨어졌다. 사람들은 그 빗속을 걸으며 각자의 생각에 잠겨 있었지만, 나는 그저 새파란 우산을 피고 나에게로 떨어지는 과거의 빗방울을 막았다. 우산이라는 작은 막의 경계 하나로 하늘의 빛깔은 달라진다. 그것이 아이러니하다.
나는 나의 빛깔을 푸르게 바꾸었다. 잿빛의 비로 물든 하늘을 굳이 올려다볼 필요가 있을까. 그렇게 나는 무덤덤하게 우산을 꽉 쥔 채 푸른 우산이 비추는 푸르스름한 거리를 걷는다. 시간은 앞으로만 흐르니까.
사람을 태우고 남은 재는 전혀 특별한 빛깔을 띠고 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