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곧 징징거리는 것이다. 우리 집에서는.
나와 어머니의 관계는 할말 못할 말 다 쏘아붙이는 부모자식보다는, 사이 좋은 대주주와 기업의 모습에 가깝다.
사이좋은 대주주와 기업. 나는 투자를 받았고, 그 투자에 걸맞는 모습으로 성장해 미래에 이를 보답한다. 서로의 위치에서 딱딱 최선을 다하는, 어떻게 보면 이상적인 관계. 성숙한 관계.
혹은 그냥 이상한 관계. 좀 문제 있는 관계.
하지만 이건 우리가 선택한 가족의 양식이다.
깊고 감정적인 얘기는 하지 않고, 서로가 알아서 문제 생길 일을 만들지 않는다. 자기 감정은 자기가 알아서 해결하고, 고민도 알아서 해결한다. 가족 네명이 전부 다 따로 살아도 그 누구도 외로워하지 않는다. 스트레스, 누군가의 떠남, 누군가의 죽음, 그 이유가 무엇이든 감정은 다른 누군가에게 폐를 끼치기 전에 하루빨리 정리해야만 한다. 감정이 생기기 전에 감정이 생기는 원인적인 문제 자체를 해결한다. 빠르게. 어머니는 교육 등 돈이 필요하다면 당신께 요청하라고 했고, 이는 부모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당연한 건 없다.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이란 각각 가정마다 다른 법이다.
하지만 역시 내가 생각해도 우리 가족은 흔한 가족 같지는 않다.
나는 이런 가족의 형태가 나와 어머니, 아버지의 모습에 딱 적절한 가족 양식이라고 생각하고, 또 그런 사람들이니까 이런 요상한 가족의 모습이 탄생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독립적이고 현실주의인 성격으로 감정의 중요성도 본인의 감정적인 면도 무시하는 어머니,
방랑벽이 있어 나이가 나이인데도 아직도 외지 밑바닥에서 혼자 뭔가 도전하려는 아버지,
가족에 그리 정을 붙이지 않은 나. 딱히 좋지도 싫지도 않은 미적지근한 나. 말을 못하는 게 싫어서 말을 안하기 시작한 나.
아, 오빠는 이런 우리 가족의 모습에 매우 불만인 것 같다. 우리 오빠는 예전부터 밖에 나가서 살아서 우리 가족의 영향을 별로 받지 않아 비교적 '정상'으로 자랐다.
딱히 벗어나고 싶진 않은데, 벗어나면 해방감을 느낄 것 같은 이상하게 답답한 가정. 하지만 내가 누려온 게 많아서 뛰쳐나갈 마음이 들지 않게 하는 가정.
기만자로 자랄 수 밖에 없는 가정.
받은 만큼 갚는다. 내가 가족에게 느끼는 유일한 감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