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UX와 차가운 심리학_01:

by 블루잉오렌지

UX 공부를 하다 보면 심심찮게 보이는 단어들이 있다. 인간공학, 인지공학, 심리학, 커뮤니케이션, 공감, 사용자 친화...


모든 단어가 UX를 '인간적인' 개념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UX는 철저하게 인간을 위한, 인간에 의한, 인간다운 학문이다. 그리고 여기서 '인간적인'이라는 뜻은 상당히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내가 심리학/뇌신경과학 전공자이기 때문에 UX를 바라보는 관점이 그쪽에 치우쳐 있다는 점을 미리 말해둔다.)



UX와 심리학은 마치 공학과 과학의 차이 같다. UX는 심리학 등의 학문적 지식을 입맛에 맞게 버무려, 사람들에게 필요한 가치를 제공하고 실리를 취하는 기술이다.


입맛에 맞게 버무린다는 건 UX라는 건 철저하게 목적지향적인 기술이라는 뜻이다. 심리학은 과학이지만, UX는 기술이다.





과학은 공익에 가깝다(본래 의도대로라면 말이지..). 과학은 객관적으로 진실을 밝히는 것에 의의가 있다.

기술은 궁극적으로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래서 진실을 버무릴 필요가 있다. 맛에 맞게.



UX는 자신들의 목적대로 사용자들이 움직이게끔 유도하는 아름다운 기술이다. UX는 따스한 태도로 사용자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그 대가로 그들의 돈을 받는다. 사용자 친화적인 인터페이스로 가장 유명한 토스처럼, '수수료는 토스가 냈어요' 같이.. 사용자에게 가장 따스하고 친근하게 다가가는 자들이 진짜로 고단수다.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하는 인내심 있는 자들이다.



다정하고 따스한 태도도, 물질적 이득을 취하고자 하는 태도도 전부 인간적이다. UX는 완벽하게 '기술'이다. 완벽하게 주관적이며, 완벽하게 실용적이다. 그 점에 나는 매료되었다. UX만큼 인간적인, 인간의 욕구에 직접적으로 다가가서 인간을 다루는 분야가 무엇이 있을지.



심리학은 인간을 객관적으로 연구하고자 노력한다. 추상적이고, 시시각각 급변하며, 충돌하는 개념이 공존하는 심리라는 영역을 객관적으로 수치화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심리라는 소재 특성상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정확함'과는 평생 거리가 멀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확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환경을 통제하고, 행동을 통제하고, 감정을 통제하고 할 수 있는 모든 변수를 통제해도 인간은 변덕스럽다. AI는 인간과 비슷하게 보일 수는 있어도 인간과 비슷해질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점이 물론 매력 있었지만, 내가 알고 싶은 것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품고 있는 '데이터'는 아니었다. 그 데이터가 표면에 드러난 외부의 모습을 보고 싶었던 거지.



맞다. 내가 알고 싶었던 건 인간의 외부의 모습, 가면, 즉 행동에 가깝다. 나는 딱히 인간의 진실을 싹 다 밝혀버리고 싶은 게 아니었다. 그래서 내가 심리학 연구에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나는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이 세상에서 쓰는 가면과, 색안경과, 그로 인해 변화하는 행동을 적나라하게 관찰하고 싶었다.



UX는 사람을 통제하지 않고, 설득한다. 설득은 강제적이지 않다. 은근하게 유도할 뿐이다.


그리고 UX를 통해 유도한 사용자의 행동이 불러온 결과를 적나라하게 관측할 수 있다. 얕은 학문의 영역에서 우리는 사용자라는 '존재'를 단정할 수 있다. 왜냐하면 객관적일 필요가 없으니까. 그 행동원리에 대한 정확한 인과관계는 밝힐 수 없어도, 실제로 내가 인간을 다룬다는 그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UX라는 이런 '애매한' 분야야말로 나와 최적의 궁합이다. 애매하고 은근하기 때문에 내가 마음껏 시도하고 결론을 내릴 수 있으니까.


UX는 사람들을 가치 있게 대해주는 대신 자신 또한 가치를 얻는다. 윈윈이다. 윈윈인 비즈니스다. 비즈니스의 형태로 가장 이상적인 형태가 아닐 수 없다. 사용자를 행복하게 해주고, 본인들도 그것에 정당한 대우를 받는다면.




다만, 윈윈인 비즈니스라는 말에는 함정이 있다.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선을 넘어버리면서도 자신이 그 선을 넘는지 모를 수 있다. 왜냐하면 애매하니까. 은근하니까. 명확한 인과관계가 없으니까.


그래서 UX를 다루는 사람들은 '실수'를 한다. 그것이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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