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UX와 차가운 심리학_02:

by 블루잉오렌지


UX 디자이너들은 실수를 한다. 아니, 실수라기엔 너무 의도적이고, 의도라기엔 또 지나치게 자연스럽다. 그런 실수라면 차라리 '사고'라 부르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그 실수는 종종 인간적이다. 따뜻하고 부드럽게 다가오지만, 그 안에는 어딘가 불편한 흔적이 남아 있다. 목적이 있는 친근함에는 필연적으로 의구심이 든다. 나는 그렇다.


그것들이 불편한 이유는 우리가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부드럽고 자연스럽다. 이 작은 모바일 세계에서, 내가 원하는 선택을 누르기까지 내가 걷는 길엔 망설임이 없다. 길은 너무나도 보드랍게 잘 닦여있고, 앞길은 뻥 뚫려 있어 거침없이 달리고 싶어질 정도다.



하지만 그 길은 내가 아닌 누군가가 미리 깔아놓은 것이다.


그 누군가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UX는 사람의 행동을 유도한다. 즉 최종적으로는 결제로 유도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유도의 다른 말로는, 상당한 악의를 곁들여서 다른 단어로 치환해보자면 조종이 있다. UX는 언제라도 사람을 조종할 수 있다. 그게 극단화된 방식이 다크패턴이다.



다크 패턴은 그런 UX의 목적이 가장 솔직하게 드러나는 케이스다. 목적을 숨기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 자체를 디자인으로 승화시킨다. '승화'라는 표현은 많이 의견이 갈리는 표현이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다크패턴에 대한 옳고 그른 판단 자체를 넘어서.


다크패턴은 사람 심리의 허점을 철저하게 이용하여 이익을 취한다. 똑똑한 놈들이다. 원래 사기꾼이야말로 가장 많은 공부를 해야 한다고 하지 않나? 보이스피싱범 새끼들처럼. 다크패턴도 마찬가지다.


친절하고 다정한 목소리로 유저를 현혹하고 마비시키며, 선택지를 애초부터 지워버려 선택지가 없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게끔 만들고, 법적으로 반드시 제공해야 하는 사실은 아주 작은 글씨로 말그대로 제공만 한다.


그리고 들키면 '몰랐어요' '실수예요'로 일관한다. 이러한 것들에는 잘못을 저질렀단 객관적인 증거가 사실 존재하지 않다는 것을 그들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인간 심리에 관해서, 인과관계 따위는 없다. 있다고 해도 증명할 수 없으니까.



다크패턴에 관한 한 가지 예시를 들어서, 게임을 하고 있는데 결제를 유도하는 광고창이 화면에 떡하니 떴다. 나는 게임에 방해되는 광고창을 없애려고 했는데, 광고창에 닫기 버튼이 없다. 게임을 다시 진행하기 위해선 난 반드시 그 광고창을 눌러 결제 유도 페이지를 봐야 한다. 나는 머리끝까지 화가 나서 회사에 따진다. "닫기 버튼이 없는데 그럼 게임하려면 무조건 결제를 하라는 뜻이냐? 장난하냐? 그럴 거면 처음부터 유료 게임으로 만들어라"


회사는 시원스레 대답한다. "오, 실수예요."



있다가 없어지면 티가 많이 나지만, 처음부터 없는 것은 '실수'라고 포장하기 쉽다. 이게 의도적으로 '유저가 결제하게끔 행동을 강제했다' 라고 증명하는 것이 어렵다. 게다가 애초에 회사가 "아니 그럼 회사가 당연히 돈을 벌려고 제품 만들지, 결제 유도하는 게 회사 잘못이에요? 솔직한 게 잘못이에요?" 이런 스탠스로 나오면 또 할 말도 없다.


유저들은 이런 회사의 만행을 비판하고, '악'이라고 매도한다. 그야 당연히, 다른 사람의 행동을 강제하면서까지 금전적 이익을 취하려는 행위는 틀림없이 지탄받을 만한 짓거리다.



그러나 다크패턴은 어느날 돌연히 생겨난 절대악이 아닌, UX의 본디 목적지향적인 면이 극단화된 케이스일 뿐이다.



다크 패턴 또한 인간적이다. 왜냐하면 다크 패턴은 인간을 너무 잘 이해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다크패턴은 UX 세계에서 그리 낯설고 특이한 개념이 아니다. 다크패턴은 UX가 극단화된 방식에 불과하다. UX의 본질인 '행동 유도'를 극대화시켰을 뿐이다. 어떻게 보면 본질이다. 동시에 적나라한 그림자이다. 결국 모든 기업의 목적은 이윤 창출이니까.


다크 패턴을 인간적이라 부르는 이유는 단순하다. 이득을 취하려는 행위는 인간의 본질이다. 그리고 다크패턴은 그런 인간의 욕망과 두려움을 기반으로 작동한다. 다크 패턴은 UX가 가진 인간적인 속성을 가장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우리는 늘 무언가를 얻고 싶어 하고, 또 무언가를 잃는 것을 두려워한다. UX는 그 욕망과 두려움을 설계한다. 다크 패턴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 설계가 얼마나 정교하고 효과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럼 무엇이 정상적인 UX이고 무엇이 다크 패턴인가? 조종하는 것이 죄라면, UX는 어느 수준까지 유도해야 하는가? 유도 자체를 하면 안되는 것인가? 과학처럼 철저하게 객관적으로 선택지를 제공해야만 하는가? 어디까지가 용납되는 것이고, 어디까지가 용납되지 않는 것인가?


'누가 봐도 용납되지 않는 것'이란 말에는 함정이 있다. '누가 봐도'라는 단어는 알고 보면 철저하게 본인만의 기준이다. 유저는 용납하지 못하지만, 회사는 용납할 수 있다면 그건 '누가 봐도 아닌 것'이 아니지 않나.



UX는 태생상 필연적으로 선을 넘나드는 분야다. 애매하고 은근하며 절대 규칙 또한 없다. 그런만큼 진입장벽이 낮아 누구나 쉽게 도전할 수 있지만, 그 모호함의 경계선을 능숙하게 견디고 다루는 전문가들은 많지 않다. 사람은 중립이 아닌 극단적으로 가려는 경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놈의 MBTI처럼 말이지. 그리고 나는 아웃라이어다.




그래서 이 '선'을 우리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선을 넘을까? 넘지 말고 원칙을 지킬까? 조금만 넘을까? 유저가 행복하다면 그걸로 된 거 아닐까?



어떻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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