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UX와 차가운 심리학_03:

by 블루잉오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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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은 사실 차갑다. 기계적이다. 모든 과학이 그렇듯이 적나라하다. 우리의 존재 그 자체를 연구하는 분야다 보니 더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다.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발가벗겨지는 기분이다. 더 조심스럽게 비유해보자면 '모든 이들이 발가벗겨져 있는데 그 사실을 모르지만 나만 그 사실을 깨닫는' 기분이다.


아.. 잘난척할 생각은 없다. 나는 알몸으로 돌아다니는 것이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내가 다른 사람보다 수치심이라는 감정을 조금 더 예민하게 느낄 뿐이다. 나는 '뻔뻔함'이야말로 가장 인간이 가져야 할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언제나 세상 눈치를 보는 사람은 행동하지 못하니까.



아무튼 다시 심리학과 UX 얘기로 돌아가보자. 심리학을 배우는 것은 성공하는 UXer가 되는 것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다만 간접적으로 도움이 되어주기는 한다. 사람과 행동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찰을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직접적으로 더 빨리 도움이 되는 학문을 원한다면 심리학 말고 지난 화에 어떤 분이 말씀했듯이 마케팅이나 차라리 AI 같은 것을 더 배워보길 바란다. 그리고 AI를 활용하는 데도 심리학이 간접적으로 도움이 되니 그냥 심리학을 배우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내가 대표적으로 심리학을 배우고 깨달은 점은 대표적으로 다음과 같다.


1. 인간은 평생 착각 속에서 산다.

2. 인간은 전혀 일관적이지 않다.

3. 인간은 말과 행동, 생각 3개가 전부 다 따로따로 간다. 그리고 웬만하면 생각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인간은 합리적인 척하는 비합리적인 존재다. 자기 철학 및 의견에 맞춰 딱딱 행동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건 기계다. 심지어 AI조차 항상 말을 개같이 바꿔댄다. 사람은 자신이 그때그때 상황과 감정에 의존해서 행동한다는 것을 감추기 위해 그럴 듯한 합리화를 반복한다. 그 합리화가 바로 말과 생각이다.


A가 좋다고 말하면서 B를 선택하는 게 인간이다. 행동은 습관, 말과 생각은 의견이다. 의견은 주관적이며 그때그때 다르며 이상적이다. 행동은 객관적이며 관습적이다. 둘은 다르다. '메타인지'란 능력이 괜히 중요하다고 하는 게 아니다.



"아, 난 고작 이딴 걸 배우려고 심리학과에 왔구나! 난 냉소주의자가 되기 위해 심리학을 배우는구나!"


라고 주장하는 게 아니다. 사실 이러한 것들을 UX에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다. 인간이 착각에 빠져 사는 동물이라면 그 착각을 활용하면 된다. 감정에 의존하는 동물이라면 그 감정을 유도하면 된다. 행동과 의견이 따로 논다면 의견을 전부 무시하면 된다.



아니면 아예 다른 관점에서 말해볼 수 있다.


"나는 심리학 원칙을 공부하고 이런 인간의 취약하고 비논리적인 부분을 깊게 이해하고 공감함으로써, 유저들이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해하고 이룰 수 있게 도울 수 있다."



가끔, UX 글을 읽거나 아니면 UXer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말을 듣다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 우리는 유저들이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지 이해하고 공감해야 하며, 그들의 불편한 점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 유저 중심 리서치를 통해 유저들에게 진심으로 다가가고 소통하며, 유저들이 프로덕트에서 빠르고 편하게 목표를 이룰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 세상 곳곳에 존재하는 사소하지만 특별한 문제들에 귀를 기울여 그 문제를 해결해 세상에 기여하는 프로덕트를 만들고 싶다.



틀린 말은 아닌데 묘하게 불편하게 느껴지는 이 기분.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UX의 본질은 '유저를 편하게 해주는 것'인가? '유저와 소통하여 도와주는 것'인가?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인가?


난 그렇게 생각 안한다.







제이콥의 법칙. 힉의 법칙. 뭐의 법칙. 존 스미스의 법칙.


'OOO의 법칙'이라고 이름이 붙여져 있으면 일단 멋있다. 숭고하다. 명언 같다. 외우고 싶고, 왠지 진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바로 그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법칙은 본질이 아니라 결과물이다. 어떤 현상을 정의하려는 인간들의 필사적 노력의 산물이다. 법칙은 경향성에 불과하다.


우리처럼 실무라는 얕은 영역에서 성과를 이루고자 하는 UXer들에게 있어서, 숭고한 인간 원리를 이해하는 것은 그리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시험 볼 거야? 우리 교수님들도 그런 걸 시험에 내지는 않았다. 경향성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것에 대체 무슨 의의가 있을까? 오히려 실질적인 이득을 안겨다주는 것들은 원칙에서 벗어난 것들이다. 아웃라이어. 테무 같은 놈들이 그래서 돈을 벌었던 것이다.



그 대신, 우리가 끊임없이 되새겨야 할 것은 UX라는 개념의 본질이다. UX는 그 규모가 작든 크든 결국 '조종'이다. 그리고 그 조종은 유저가 원하는 조종일 수도 있고, 원하지 않는 조종일 수도 있다. 세상에 바람직한 조종일 수도 있고, 바람직하지 못한 조종일 수도 있다. UX를 바람직하게 만드는 이 '선'이 무엇일지를 고민해야 한다.



유저가 원하는 것이라면 괜찮을까?


강제로 원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이렇게 유도함으로써 미래에는 어떻게 될까?



심리학과 UX를 적재적소에 잘 활용하기 위해선, 상당한 '뻔뻔함'이 필요하다. 불편한 고찰을 견뎌내고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견뎌낼 수 있어야 훌륭한 UXer가 될 수 있다. 고찰하지 않는다면 다크패턴이며, 뻔뻔하지 못하다면 그건 자원봉사자다. 둘 다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악이다.


심리학은 객관적으로 인간을 적나라하게 밝히고, UX는 그 객관성을 가공하고 왜곡해서 소비한다. 인간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원칙'은 철저하게 인간을 주관적으로 만드는 UX란 분야에서 소비된다. 이 말이 건조하게 느껴진다면 그게 정상이다.


그 건조함이 싫어서, 그게 불편해서 '나는 유저를 이해하고 유저들이 겪는 문제를 도와주기 위해서 UX 전문가가 되겠다'라는 마인드를 가진다면, 그거야말로 도피다. 눈가리고 아웅이다. 다정함은 그림자를 숨긴다. 다정함 또한 도파민이다.



대책없이 다크패턴을 펼치는 것도, 유저에게 봉사하는 자원봉사자가 되는 것도 내 취향은 아니다. 나는 누군가를 물들이는 것은 싫으며, 나 자신이 물드는 것도 싫다.


나는 UX를 하는 사람으로써, 그 누구의 편도 아니다. 회사의 편도 유저의 편도 아니다. 내가 하고 싶은 건 단순히 거래다. 건강하고 바람직한 거래 말이다. 그 바람직함의 기준이 무엇일지는 앞으로도 끊임없이 고민해가야 할 문제이지만, 최소한 내가 어떤 위치에 서 있을지는 정했다.


난 경계에 서는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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