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마음과 게으름은 참 간사하다
설 연휴가 끝난 다음날 아침 9시. 출근 후 자리에 착석.
착석하자마자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추석연휴 확인하기.
올해의 설 연휴는 여태까지의 설 연휴와 다르게... 뭔가 비교적 더 '감개무량'하다. 연휴가 엄청 길었어서 그런지. 가족 사이가 그리 '돈독하다'라고는 말할 수 없는 우리 가족에서는 참 드문 일이다(우리나라 가정 평균에 대비해서 말이다. 나는 우리 가족의 돈독한 정도에 아주 만족한다).
오랜만에 한국으로 돌아온 아버지는 IT 마스터가 되어있었다. 현직 IT 업계에서 근무하고 있는 나보다도 신문물에 능숙하시다. 아버지는 나를 만나자마자 AI와 주식, 트럼프 얘기를 꺼내며 본인의 주장을 강력하게 설파하셨고, 어머니는 아버지가 흥분해서 그렇게 입을 열 때마다 가족 사이에 그런 얘기하지 말라며 재깍재깍 선을 그으셨다. 가족 사이에 해야 할 얘기, 하면 안 되는 얘기를 딱딱 나눈다.
참고로 나는 아버지의 그 '가족끼리 하면 안되는 얘기' 듣는 걸 좋아한다. 내가 아버지 말을 더 듣고 싶어하는 티를 내도 어머니는 신경 쓰지 않는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그렇게 곧바로 말을 딱 잘라말할 때면, 어머니에게 반발하지 않고 바로 입을 다물고 어머니가 원하시는 대로 다음 화제로 넘어간다. 나는 예전부터 어머니보다 아버지와 훨씬 더 비슷한 입장이었고 어머니를 대하는 태도도 부녀 아니랄까봐 참 똑같았다.
우리 아버지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냐면... 아버지 핸드폰에 영어로 된 AI 앱이 7개가 깔려 있었고, 나에게 '이 앱이 가장 최근에 나온 건데 우리나라 산골짜기 정보도 검색하면 나오고 좋다.'라며 앱 추천까지 적극적으로 하셨다(참고로 Felo라는 앱이다. 직접 써보니 정말 딱 정보 탐색용이다). IT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구글은 둘째치고 네이버조차 쓰지 않고 다음을 고집했던 우리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추천받은 Perplexity로 우리나라 맛집 정보를 검색하고 계셨고, 아버지는 가장 최근에 나온 Felo라는 앱으로 본인 이름을 검색하고 계셨다. 뭐만 하면 거짓말하고 내 지시는 자꾸 잊어먹고 지멋대로 하는 멍청한 챗gpt밖에 모르는 나보다 훨씬 나으시다.
그리고... 새로운 가족이 생겨났다. 나는 내가 이런 말을 하게 될줄은 꿈에도 몰랐다. 내가 남자친구가 없는 건 둘째치고, 이성과 접촉할 기회 자체가 주어지지 않던 박복한 우리 오빠가 여자친구가 생길 줄 정말 몰랐으니까. 등신 같은 남매 덕분에 부모님께 손주를 못 보여드리고 보내드릴 뻔했는데 다행이다.
심지어 한국인도 아니었다. 갑작스럽게 스페인계 여자친구를 집에 데려와, 호주나 미국으로 이민 준비를 한다고 하더라. 갑자기 언니가 생겼다. 심지어 오빠보다 키가 큰 엄청난 미인이셨고, 오빠와 살아온 삶 또한 비슷하다고 하다. 첫 여자친구가 이런 인물이라니. 진짜 운명이란 게 있는 걸까...
나와 다르게 밝고 애정어린 스킨십(우리나라에서 잘 하지 않는 볼키스라던가)을 즐겨하는 언니에게 어색함을 느끼게 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4일 간 우리 집에 머물렀던 언니에게 작별인사를 할 때, '잘지내'란 말 하나 표현을 몰라서 어버버 거리면서 10초 동안 버퍼링이 생겼을 때도 있었지만, 예전처럼 그런 사소한 말실수에 쉽게 수치심을 느끼고 얼굴이 붉어졌던 나는 이제 없다. 많이 선방했다, 나 자신.
여태까지 난 명절에 대해 그리 좋은 감정을 느끼지 않았다. 명절이 좋게 느껴졌을 때는, 명절 연휴동안 쭈우우욱 집에 있을 수 있을 때 한정.
우리 집은 친척들과 그리 사이가 좋지 않다. 우리 가족끼리 사이가 남들이 보기에 정없어 보여도 실제로는 나름 특이한 방식으로 돈독한 것에 비해, 친척과의 관계는... 확실하게 나쁘다.
친척집에 갈 때마다 어른들끼리 가면조차 오래 유지하지 못하고 좋지 않은 말이 오고갔고, 나는 큰아버지에게 꿔다놓은 보릿자루를 넘어 짐짝 취급을 받는 채로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애썼다. 그 사람들은 객관적으로 그리 좋은 사람들이 아니었다. 자식으로서 해야 할 책임조차 내팽겨치고, 상주라는 사람이 버스에서 코를 골며 자느라 우리 아버지가 그 책임을 떠맡아야 했다. 사촌오빠가 우리 편을 들자 자기 자식을 패대기치기도 했다.
난 그 사람들을 가족/친척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냥 남이었다. 나는 10년도 전부터 친척에 대한 모든 관심을 버렸다. 10년 전부터 내가 친척집에 따라가지 않아도 부모님은 아무 말 없이 날 내버려두셨다. 내가 부모님들보다 좀 더 빨리 표현했을 뿐 사실 속마음은 똑같았으니까. 은유적인 건 변함없지만.
작년에 장례식을 두번 맞이했고, 이제 친가와 양가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전부 돌아가셨기 때문에 명절에 딱히 들릴 곳이 없다. 지옥 같은 유산 논쟁도 작년에 끝났고, 이제는 정말로 볼 일이 없다. 지금부터는 우리 가족만의 시간이다.
이걸 '해방'이라고 말하면 안되려나? 후련하다고 말하면 천벌받을까?
나는 한동안 친척집이 있는 강원도에만 들리면 헛구역질이 나왔다. 냉면이고 소고기고 뭐고 들어가지 않고 입맛이 없는 걸 넘어서 숨이 막혔다. 그건 내가 머리가 커질 만큼 커져도 변함이 없었다. 멘탈이 많이 단단히 성장했다고 스스로 자부하고 있었는데, 오직 나의 유약한 어린시절만이 존재했던 그곳으로 돌아가니 성장은 전부 없던 일이 되었다..
그런데, 올해의 설 연휴는 구역질날 일이 없었다. 새로 합류한 가족은 나조차도 환대할 정도로 사랑스러운 사람이었고, 기존의 가족과는 비슷한 관심사를 공유하며 좋은 대화 시간을 보낸다(다른 가족에게 방해받기는 했지만).
이번 설 연휴가 어땠냐, 조금은 무딘 나에게 있어 '행복했다'고 단언하지는 못하겠지만 '특별했다'라고는 말할 수 있겠다. 그거면 되지 않을까. 행복하진 않아도, 낯선 행동을 하는데 기분 나쁘거나 불편한 기분보다는 특별하다는 감상이 먼저 떠오른다면.
설 연휴라는 가벼운 주제로 글을 시작했으니, 마지막은 마지막답게 가벼운 주제인 추석 연휴로 글을 끝내보자.
올해, 2025년 추석 연휴는 10월 3일(금)부터 10월 9일(목)까지. 최소 일주일. 10월 10일에 연차 한번 빵 때려주면, 10일.
상상만 해도 행복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