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스테이 청소 이야기 (7)
커피 캡슐을 버리려고 머신을 확인한다. 텅 비었다. 커피 보관함을 열어 확인한다. 캡슐은 모두 채워진 그대로 있다. 어제 왔던 사람은 캡슐커피가 놓여 있어 실망했던 걸까? 이 브랜드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을까? 아니면 커피 자체를 싫어하는 사람이었을까? 유명한 카페들이 각축전을 벌이는 서촌에 왔으니 시그니처 음료를 마시기에도 바빴을까? 카페인을 마시면 안 되는 체질이거나, 카페인을 피해야 하는 질병이라도 있었을까?
아니, 그만. 고개를 털고 커피 머신 정비에 집중한다. 캡슐이 확실히 새것 그대로인지 얼른 확인하고 커피 보관함을 정리한다. 생각은 그만, 다음 위치로.
사람들이 떠난 자리에는 수십, 수백 개의 흔적이 남고 나는 매일 그 흔적을 하나하나 찾아 따라가면서 지웠다. 뭔가를 쓴 것도 흔적이고, 쓰지 않은 것도 흔적이다. 아주 작은 흔적도 상상의 실마리가 되었다. 크고 작은 쓰레기, 쓰고 남긴 세안용품, 옮겨진 베개의 위치, 뭉쳐두거나 걷어둔 이불의 모양, 수건이 젖은 정도, 사용한 수저와 그릇의 개수, 커피나 차를 마셨거나 마시지 않은 흔적.
상상하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자꾸만 등장인물과 스토리가 떠올랐다. 뭔가 눈에 들어오면 상상이 시작되는 건 순간이다. 이야기는 자동 반사처럼 떠올라 이어진다. 하지만 몇 초 후에 얼른 눈을 질끈 감고 생각을 털어내야 했다. 몇 초도 길다. 나는 청소하러 왔고, 청소는 빨리 끝날수록 좋다.
그 사람은 왜 그랬을까, 저 말은 어떤 생각에서 출발했을까, 왜 여기서 이 행동을 하거나 하지 않았을까, 누구나 다 이런 생각을 숨 쉬듯이 하는 줄 알았다. 일종의 퀴즈 놀이처럼, 결과와 현상을 보고 원인이나 의도, 그리고 주인공을 맞추는 것.
작은 흔적, 파편처럼 흩어진 행동의 결과물을 보고 ‘누가, 무엇을, 어떻게, 왜’ 했는지 추측하는 것은 내가 갈고닦아온 기술이었다. 내가 추측하던 것은 인지의 단계이거나, 시선의 흐름이거나, 동선이거나, 선택의 이유, 행동의 이유 같은 것들이었다. 비슷하게 생긴 이런저런 케이크가 있는데 우리 것을 찾아 구매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사람들이 우리 상품의 이름을 자꾸만 다르게 부를 때, 기억하는 사람은 누구이고 계속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이런저런 기능을 만들어 웹사이트에 넣어두었는데 찾지 못하고 고객센터로 전화하는 수백의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왜 그러는가. 그런 것들을 잘 추측해서 논리적으로 잘 재구성하는 것으로 밥벌이해 왔다. 사람들은 그런 것을 ‘현황 분석’, ‘대응 전략’, ‘기획’ 같은 이름으로 불렀다. 그런데 이번 밥벌이에서는 10년 넘게 갈고 닦은 그 기술이 아무 쓸모가 없었다. 그냥 쓸모없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방해되었다.
여느 날처럼 출근 체크, 잽싸게 집 안을 돌면서 사진을 찍고 없어지거나 파손된 물건은 없는지 확인하고, 수건을 모은다. 오늘따라 수건은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다. 거실 한구석, 욕조실, 샤워실 바닥, 그리고 침대 이불 안, 아… 오늘은 보고할 거리가 있다. 사진을 추가로 찍어 보고용 게시판에 올린다. 수건 두 장이 피에 젖었다. 비닐봉지에 따로 담아 봉해서 빨래 가방에 넣어두고, 나머지 공간을 마저 확인한다.
다친 걸까? 아픈 걸까? 싸운 걸까? 혹시 그릇이라도 깨트렸을까? 구석구석을 확인하는 손길이 더 바빠진다. 또 피가 묻은 곳은 없을까? 피를 흘린 건 한 명일까, 두 명일까. 얼마나 요란하게, 아니 그나저나, 이렇게 피를 많이 흘렸는데 괜찮은 걸까?
추리소설도 제법 좋아했는데, 바로 지금 여기 내가 흥미진진한 현장 안에 있는데, 어떤 것도 추리하면 안 된다. 추리 예능이라면 빼놓지 않고 정주행했고, 두뇌 게임 서바이벌에 열광했건만, 눈앞에 생생한 퀴즈를 두고도 절대 맞추면 안 된다. 왜냐하면 여기는 사건 현장이 아니라 평범하고 평온한 한옥스테이고, 눈앞에 있는 것은 증거가 아니라 지워야 할 흔적이며, 내가 할 일은 떠난 투숙객을 추리해 내는 것이 아니라 새로 올 투숙객을 위해 청소를 하는 것이니까.
궁금해 죽겠지만, 몇 가지만 흔적을 더 모으면 퍼즐이 맞춰질 것 같아 손이 근질거리지만 얼른 노동요 플레이리스트의 볼륨이나 더 높이고 동작을 서두른다. 스테이는 투숙객들에게 ‘프라이버시’를 약속했다. 이곳은 심지어 비대면 스테이였다. 당신이 누구인지, 어떻게 와서 무엇을 하다가 어떻게 떠나가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라는 약속. 그 약속을 믿고 사람들은 기꺼이 높은 숙박비를 결제했다. 스테이의 약속에는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겠지만) 청소부들도 끼어있었고, 그러니 나는 아무것도 보지 않겠다는 약속, 아무것도 궁금해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모르는 새 이미 한 셈이었다.
그래서 여기서 가치를 인정받는 방법은 이전과는 사뭇 달랐다. 행동의 파편들은 애써 못 본 척하고, 의도나 원인이나 퀴즈 같은 걸 떠올리며 머리 굴리지 않고, 아무것도 찾거나 재구성하지 않고, 정해진 일을 빨리 끝내고 봤던 모든 것을 깨끗이 잊어버리는 것.
청소부에게는 상상하지 않는 것이 능력이고 기술이고 미덕이었다. 방문을 열었을 때 생전 처음 보는 희한하게 생긴 속옷들이 버려져 있어도, 나는 이제 와우! 한번 외치고 생각을 멈춘다. 현상의 원인과 행동의 과정과 주인공을 분석하는 습관을 애써 지운다. 이제까지 갈고닦은 기술을 없애는 것이 기술이라니. 떠난 사람의 흔적을 지우고 그 청소의 흔적을 지우면서 내 몸에 밴 버릇까지 지워간다. 텅 빈 집처럼, 나를 텅 비우는 시간이 하루하루 쌓여간다.
새로운 하루. 여느 날처럼 집 안 곳곳에 놓인 쓰레기통을 툇마루로 꺼내놓으며 청소를 시작한다. 오늘은 유독 쓰레기통이 가뿐하다. 담긴 쓰레기가 없어도 너무 없다. 좋은 징조일 수도, 반대일 수도 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도구 가방에서 종량제 쓰레기봉투를 꺼내 입구에 열어 두고 방 안으로 들어간다. 오늘은 부디, 상상할 거리가 없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