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스테이 청소 이야기 (1)
비대면 한옥 스테이에서 일하는 것은 손님을 만날 일이 없어 편하기도 하지만 손님을 마주칠 수 없어 아쉽기도, 조마조마하기도 하다. 청소부는 투숙객을 마주칠 수 없으니 청소의 만족도를 물어볼 수도 없다. 구석구석 신경쓰며 정해진 완성 상태에 맞춰 정비하고 마지막에는 장소마다 사진을 찍어 체크하고 회사에 보고도 하지만,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니 투숙객 눈에 어땠을지 염려가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종종 네이버나 숙박 플랫폼에서 청소한 숙소 이름을 검색해 후기를 읽었다. 투숙객이 찍은 사진도 유심히 봤다. 내가 청소하고 정비한 공간이 마음에 찼을까. 다행히 내가 청소하던 기간 동안 내가 맡았던 집에서 부정적인 리뷰는 없었다. 사진들도 문제 없었다. 정갈하고 조용한 공간에 들어서자 마음이 편안해졌다는 글을 보면 흐뭇했다. 그릇과 세면용품, 정갈하게 접어 넣은 티슈와 탁자 위 작은 안내문까지 하나하나 섬세하게 매만진 주인장의 차분한 성격이 엿보여 좋았다는 리뷰를 보았을 때는 나도 모르게 혓바닥을 내밀었다.
차분함과 거리가 먼 비정규 용역계약자인 내가, 러닝용 쿨맥스 티를 입고 머리카락은 반다나로 질끈 올려 싸매고 등이 다 젖도록 땀을 흘리면서, 원리퍼블릭이나 이매진 드래곤스의 노래를 한껏 크게 틀어놓고 대들보를 꽝꽝 울리는 리듬에 맞춰 침대보를 바꿔 씌우고 욕조를 솔질하고 그릇을 닦았다는 것을 투숙객이 몰라서 참 다행이다. 한옥 스테이가 투숙객에게 전해야 할 것은 약간은 판타지 같은 느리고 고요한 휴식일 테니까.
조용히 닫힌 한옥의 대문을 열고 들어가 온 방문과 창문을 열어 젖히고 유류품은 없는지, 없어지거나 파손된 기물은 없는지 잽싸게 체크하며 구석구석 사진을 찍어 회사에 보낸 다음 가장 먼저 재생하는 노래는 대개 원리퍼블릭의 ‘Love Runs Out’ 이었다. 심장을 쿵쿵 두드리는 비트에 맞춰 전사의 마음으로 머리를 동여매고 이불을 힘껏 걷어 젖혀 이불보를 벗기는 것이 청소의 시작이었다.
처음에는 청소하는 동안 한옥의 조용한 분위기를 느껴보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두세 시간 동안 혼자서 한 채의 집을 온전히 청소하는 것은 그리 여유로운 일이 아님을 첫째날 바로 깨달았다. 그저 청소기를 한 번 돌리고 쓰레기를 버리면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침실, 주방, 거실, 욕조, 샤워부스, 화장실에 있는 갖가지 가구와 집기를 이리저리 옮기고 교체하고 세척하고 먼지와 물기를 제거한 다음, ‘당연히 있는’ 수많은 물건들을 바꾸고 채우고 예쁘게 놓아두고, 잘 치워졌거나 영 그렇지 못한 쓰레기들을 일일이 분류해 다시 담아 내어 놓고, 사람의 흔적을 모두 지운 다음 오지 않았던 것처럼 나가는 것이, “청소” 두 글자에 들어있는 “기본적인” 할 일이었다. 이 외에도 할 일은 항상 꽤 더 있었고 체크아웃 시간이 지났지만 나가지 않는 투숙객도 종종 있었다.
일주일쯤 지나 허락된 청소 시간과 길고 긴 투두리스트가 익숙해지자, 나는 진실로 노동요가 필요함을 알았다. ‘전투적인’ 노동요가 필요했다. 처음에는 케이팝으로 가득한 플레이리스트를 틀었다. 친구가 수영할 때 듣자며 만들어 공유해 준 리스트였다. 4비트 킥을 차며 무아지경 수십 바퀴씩 돌 때 들으려던 것이었으니 괜찮겠다 싶었다.
같은 일을 하면서 매번 같은 노래를 듣다보면, 나중에는 그 노래만 들어도 일할 때의 감각이 몸에 떠오른다. 지금도 에스파의 ‘Spicy’를 들으면 살짝 눅눅하게 구겨진 이불과 베개 커버의 감촉이 손바닥에 떠오른다. 묵직한 솜이불과 매트리스를 들썩이며 커버를 후닥 벗겨내고 둘둘 뭉쳐 주변 바닥의 머리카락과 먼지를 잽싸게 훔칠 때 살짝 느껴지던 팔뚝의 뻐근함이 되살아난다. 빨래를 가방에 꾹꾹 눌러 담은 다음 새하얗고 빳빳한 새 침구 커버 세트를 창고에서 꺼내올 때 어깨에 얹어지던 묵직함이 느껴진다.
아이브의 ‘I AM’을 들으면 새 매트리스 커버를 씌울 때 한껏 힘이 들어가던 등 근육이 괜히 긴장한다. 고급 스테이라 매트리스는 푹신하면서 단단하고 두툼하고 묵직했다. 매트리스 커버는 움직이지 않고 판판하게 고정될 수 있도록 아주 타이트한 크기였다. 한쪽 꼭지점을 씌우고 대각선 반대편으로 가 꼭지점의 양 모서리를 열 손가락으로 단단히 말아쥔 다음(엄지와 검지로만 잡고 당기면 손가락 다친다) 체중을 전부 실어 단번에 아래까지 씌우지 않으면 장력을 이기지 못해 커버가 벗겨지거나 주름이 생기거나 바느질된 부분이 찢어졌다. 한옥방 한 칸에 꽉 들어찬 매트리스의 네 모서리를 돌며 커버를 씌우고 허리를 펴면 ‘후’ 심호흡이 절로 났다.
이불솜은 공기 함유량이 높아 포근했지만 퀸사이즈라 꽤나 무거웠다. 시간이 부족하니 딱 세 번의 손길로(로잉 머신만큼 효과적인 전신 운동이다) 이불보를 씌우는 게 요령이었다. 침대에 판판히 펴 둔 이불 위에 엎어질 듯한 자세로 서서 솜과 커버의 한쪽 꼭지를 붙잡고 몸을 일으키며 절반을 뒤집어 끼우고, 옆쪽에 다시 엎어졌다 일어나며 꼭지를 붙잡고 나머지 절반을 뒤집은 다음, 마지막으로 침대에 바짝 붙어서서 양 손을 한껏 벌려 이불의 양 꼭지를 잡고 전체에 공기가 들어가도록 허리의 반동으로 펄럭펄럭 두 번 털어 이불보 교체를 끝내야 했다. 이렇게 이불보를 씌우고, 한 손으로 퀸사이즈 매트리스를 들어올린 채 다른 손으로 이불 모서리를 밀어넣어가며 마시멜로우처럼 폭신해 보이도록 타이트하고 주름 없이 침대를 정리하고 나면 겨울에도 등을 타고 땀줄기가 흘러내렸다. 몬스타엑스의 ‘무단침입’에서는 그 땀냄새가 난다.
어느 날, 윤하의 ‘사건의 지평선’이 흘러나오는데 그날따라 유독 가사가 귀에 들어왔다. 일회용 물걸레 청소포로 마룻바닥을 닦는데 갑자기 울컥했다. 어깨로 눈물을 훔치며 두 손으로는 바닥을 닦았다. 한옥 청소를 시작할 무렵, 나는 직장을 떠나 정해진 일이 없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우울감과 무기력에 짓눌려 있었다. 종일 침대에 누워 잠들었다 깨면서 24시간을 다 보내는 날이 잦았다. 통장의 잔고는 다 떨어져 당장 뭐라도 해야했는데 기운도 자신감도 남아있지 않았다. 가족과 주변 사람들은 기대를 내려 놓다가 점점 걱정에 지쳐 실망하고 있었다. 누구라도 나를 끝까지 붙들어 주기를 바랐지만 누구에게도 그것을 요구할 수 없다는 것도 잘 알았다. 나는 스무 살이 아니라 마흔 살에 훨씬 가까웠으니까.
누구도 나에게 기대하지 않을 일, 누구와도 부대끼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한옥 스테이 청소를 발견한 것이 그 때였다. 지금이라면 해도 좋을 것 같았고,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허둥지둥했던 초반 몇 주가 지나자, 청소는 운동명상이 되었다. 꽤나 격렬하지만, 아무 말없이 혼자 정해진 일을 리드미컬하게 반복하다 보니 오히려 생각에 빠져들었다. 그 때 문득 노동요의 가사들이 눈물샘을 쿡 찌른 것이다.
솔직히 두렵기도 하지만 노력은 우리에게 정답이 아니라서
마지막 선물은 산뜻한 안녕
저기 사라진 별의 자리 아스라이 하얀 빛 한동안은 꺼내 볼 수 있을 거야
아낌없이 반짝인 시간은 조금씩 옅어져 가더라도 너와 내 맘에 살아 숨 쉴 테니
- 윤하 ‘사건의 지평선’
나를 사랑했던 사람들을 내가 실망시키고 지치게 만들었다는 생각은 참 쓰고 매웠다. 가장 가까웠던 사람들이 나의 ‘아무 것도 하지 않음’ 때문에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매트리스나 이불솜보다 훨씬 무거웠다. 이제 사랑받을 가치가 없나 보다, 하는 생각에 닿으니 다 놓아줘야 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보지 못한 사람들의 흔적을 하나하나 따라가며 내 손으로 지우고, 다시 올 타인을 위해 그 방에서 움직였던 나의 흔적을 다시 지워가면서 이 노래를 몇 번이고 듣던 날이 있었다.
하루는 갑자기 ‘바람의 노래’가 떠올라 틀어놓고 소파에 붙은 머리카락과 먼지를 테이프 롤러로 떼다, 또 울었다.
나의 작은 지혜로는 알 수가 없네 내가 아는 건 살아가는 방법뿐이야
보다 많은 실패와 고뇌의 시간이 비켜갈 수 없다는 걸 우린 깨달아야 해
이제 그 해답이 사랑이라면 나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겠네
- 조용필 ‘바람의 노래’
청소를 시작하기 전, 방송대 통계데이터과학과에 편입했었다. 빅데이터니, AI니 하는 것들을 배우면서 데이터과학이 얼마나 빠르게 산업과 일자리를 바꾸는 중인지 귀동냥하며 그 속도감에 꽤나 압도당하던 차였다. 10년 후, 5년 후는 커녕 당장 내년, 올해도 어떻게 바뀔 지 모르는 세상에서 내가 해야할 건 도대체 뭘까.
모호하고 무책임하다고 생각했던 노래였는데, AI가 결코 넘보지 않을 한옥 청소를 하며 이 노래를 듣자니 ‘정말, 남은 건 사랑뿐이구나’ 싶었다. 미래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불확실한 현재를 살아가면서 좇을 수 있는 거라고는 커다란 목표도 대단한 이상도 아니고, 지금 내 손에 닿는 것들과 곁에 있는 사람들을 매만지는 것. 나와 스칠 사람들에게 오늘 하루를 좋게 다듬어 건네는 것. 그것말고는 아무것도 알 수도 할 수도 없구나. 그 후 며칠 동안 <바람의 노래>를 틀어두고 조용히 목놓아 부르면서 청소를 했다.
하지만 노래에 울고 웃던 날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가사에 집중하며 생각에 잠기다 보니 손이 느려지고, 다음 투숙객이 입실할 때가 되어 허둥지둥 마무리를 하는 날이 생겨버렸다. 사실 여전히 시간은 넉넉하지 않아 1분 1초가 아쉬운데 노래에 취해 혼자 눈물이나 훔치는 게 무슨 청승인가. 열 마지기 밭을 매는 것도 아니고, 찬 바다에서 한없이 그물을 걷어올리는 것도 아니고, 그저 집 한 채 청소하면서 뭐 대단한 일 한다고. 텐션 올리고 신나게 일하고 빨리 쉬자 싶어 유튜브에서 플레이리스트를 다시 골랐다.
낙점된 것은 “분위기를 압도하는 감각적 사운드” 라는 제목의 리스트와, “출근하세요? 아뇨 회사 때려부수러 가는데요..?” 라는 제목의 리스트. 평소에 좋아하던 스타일의 음악들로 채워진 것이라 둠칫둠칫 몸을 움직이기 적당했다.
이후로 몇 달동안 내가 맡은 한옥에서는 OneRepublic의 ‘Love Runs Out’으로 시작해 K.Flay 의 ‘Giver’, Adam Lambert의 ‘Evil In The Night’, DoJa Cat의 ‘Boss Bitch’, Muse의 ‘Hysteria’로 이어지다 BLOW의 ‘Green Unicorn’, Sofi Tukker의 ‘Original Sin’, Bishop Briggs의 ‘JEKYLL & HIDE’, morgxn의 ‘home’으로 흘러가는 플레이리스트가 대들보와 서까래를 꿍꿍 울렸다.
집 안과 골목이 소리를 공유하는 것이 한옥의 특징인데, 내가 신나게 욕조와 샤워 부스를 닦던 그 시간에 어쩌면 누군가는 골목을 지나며 흘러 나간 음악을 들었을 지도 모르겠다. 간만에 점심을 먹으러 맛집에 왔다가 광화문으로 서둘러 돌아가는 회사원이 지나쳤을 수도, 햇빛 가득한 서촌 한옥 골목의 정취를 찾아 산책하던 관광객이 고개를 갸우뚱했을 수도 있었겠다.
담장 너머로 흘러나갔을 록, 일렉트로팝 사운드가 한옥 골목의 정취에 방해가 되었을지, 재미를 더했을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그 해 나에게 한옥의 BGM은 그 음악들이었고, 그 비트에는 리듬을 타고 땀흘리며 누군지 모를 이를 위해 가장 고요한 휴식처를 만들던 시간이 얹혀졌다.
<출근하세요? 아뇨 회사 때려부수러 가는데요..?>
Love Runs Out - OneRepublic
Enemy - Imagine Dragons
Mistress Violet - Alie X & Violet Chachki
Bloodshot - Sam Tinnesz
Giver - K.Flay
Victorious - Panic! At The Disco
This Is Me - Kesha
Evil In The Night - Adam Lambert
Last Resort - Papa Roach
Animals - Nickelback
I'll Fight - Daughtry
Legend - The Score
Stronger - Kelly Clarkson
Rise(Feat. The Glitch Mon, Mako & The Word Alive) - League of Lagends
Novocaine - Fall Out Boy
Boss Bitch - DoJa Cat
Hysteria - Muse
Face In The Dark(Feat. Panther)
<분위기를 압도하는 감각적 사운드>
Green Unicorn - BLOW
Break the Barrier - Miss Li
Original Sin - Sofi Tukker
Cliché - Torine
Good Man - Soul Push
Demon Mode - Stileto, AViVA
The Knife - Maggie Rogers
Know - Syd
Fault Line - Meeka Kates
Cherry - Jungle
JEKYLL & HIDE - Bishop Briggs
Simple Romance - COIN
Dead and Gone - DRAMA
Move - Castlecomer
home - morgx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