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날, 모처럼 행복한 날, 그 다음 날

한옥스테이 청소 이야기 (2)

by 블루잉크

한옥스테이는 아무래도 특별한 공간이다보니, 특별한 하루를 기념하기 위해 묵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그저 공간에 오기만 해도 일상을 벗어난 느낌이 가득하고, 어디를 찍어도 사진 예쁘고, 밤에는 툇마루에 앉아서 바람 쐬며 하늘 보며 도란도란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곳. 게다가 서촌이니 오기도 좋은 도심 한가운데에, 대문만 나서면 맛있는 집, 힙한 집, 노포에 미슐랭까지 줄지어 서 있는데 특별한 날을 특별하게 보내는 데에 이보다 좋은 곳도 찾기 어렵다. 누구나 어지간하면 밋밋하게 반복되는 삶을 산다. 그 밋밋함에 질식할 것 같을 때 한번쯤 공간을 바꿔보는 건 꽤 효과가 좋다. 내가 흔한 집과는 다른 한옥의 특별함이 좋아 청소를 시작했듯이, 기억에 남기고 싶은 날 한옥을 찾아오면 꽤 멋진 경험을 할 수 있다.


청소하러 들어가 방문을 열어 젖히는 순간 '아 어제는 누군가가 모처럼 행복한 하루를 보냈구나' 알게 되는 날들이 있었다. 대개는 그 사람들이 얼마만큼의 행복을 얻어 갔을지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행복의 크기가 컸다면, 그 그림자도 크게 마련이니까. 보통 한옥에 술병은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다. 끽해야 빈 맥주 캔 서넛 정도고, 소주 병은 거의 안 나온다. 도심 속의 한옥은 독채라고 해도 집 안의 소리가 골목과 동네로 퍼질 수 밖에 없는 공간이다 보니 두서너 명이 오붓하게 시간을 보내면서 조용히 추억을 만들고 대화를 나누기 좋은 공간이지, 요란한 술 파티를 하기에 썩 좋은 곳은 아니다. 하지만 가끔 유명한 샴페인이나 와인 병 혹은 요새 인기가 많다는 위스키 병과 수많은 헛개수 페트 같은 것들이 지난 밤의 즐거움을 품고 조용히 줄지어 앉아있을 때가 있다. 그럼 어제는 분명 누군가에게 특별하고 모처럼 행복한 날이었던 것이다.


그런 날은 집에 들어가 여기저기를 살피며 그 안에 가득했을 따뜻한 눈빛과 웃음, 오랜만에 활기가 채워진 목소리, 교차하는 대화와 여기저기서 소환되는 유쾌한 기억, 아마도 몇 장의 사진 안에 압축되었을 하루 동안의 행복을 상상해 보게 된다. 그 하루의 행복은 어쩌면 몇 년의 기다림이 농축되어 완성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앞으로 몇 달, 혹은 몇 년 동안 그 하루가 이따금 그들의 마음에 반짝이며 떠오를 수도 있을 것이다.


행복한 순간 클라이맥스에 반짝이며 터지는 콘페티처럼, 한옥을 채웠던 즐거움의 흔적도 집안 곳곳에 흩뿌려졌다. 그러면 다음날 나는 콘페티를 주워 담는 것보다는 조금 더 분주하게 그 흔적을 지웠다. 둘만의 특별한 기념일이었는지, 간만에 가족과 일상에서 해방되어 친구들과 뭉친 꿀 같은 휴가였는지 당연히 알 수는 없지만 즐거움의 흔적들을 확인하면서 생각하곤 했다. 오늘은 또 다른 사람이 특별한 행복을 위해 한옥을 찾아 오려나, 아니면 지치고 무뎌진 마음과 몸을 달래고 싶은 사람이 한옥을 찾아 오려나.



청소를 위해 들어가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유류품이나 파손품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출근하면 일단 발견한 상태 그대로 집 구석구석 사진을 찍어서 보고하고, 여기저기 뒤적이며 제자리를 떠난 물건은 제자리로, 버려야 할 물건은 마당으로, 투숙객과 함께 집을 떠났어야 할 물건은 거실 테이블로 옮겼다. 유류품이나 파손품은 따로 사진을 찍어서 본사에 보고했다. 보고를 받은 본사 담당자가 투숙객에게 연락을 취해 찾으러 올 건지, 폐기를 원하는지 확인한 뒤 결정된 사항을 청소부에게 알려 주었다. 청소부는 보고한 유류품을 연락받을 때까지 보관해 두었다가 폐기하거나, 청소하는 동안 돌아온 투숙객에게 건네주거나, 대문 밖 약속된 장소에 넣어두고 퇴근했다. 퇴실한 투숙객은 보통 귀국이나 다음 일정으로 바쁘게 이동하는 중이라 소통은 느렸다. 꼭 찾아 가셨으면 좋겠다 싶은 물건을 보고하고 하염없이 기다리거나, 아무리 봐도 버린 것 같은 물건을 유류품으로 보고하고 하염없이 기다리다 결국 투숙객의 회신이 오지 않아 폐기하는 일도 많았다.


유류품 중에는 옷이나 머리끈, 화장품 같이 흔히 상상할 수 있는 것도 있었지만 포장을 뜯지 않은 음식이나 손대지 않은 과일 같은 것이 남아있으면 버린 것인지 챙기다 빠뜨린 것인지 애매했다. 가끔은 이런 걸 두고 가나 싶은, 상상의 범위를 벗어나는 유류품이 나오기도 했고, 또 가끔은 이걸 진짜 버려달라고? 싶은 폐기도 있었다. 나는 자의로 판단을 했다가 실수하거나 오해를 살까 두려워서 먹다 만 콜라든, 쓰다 만 여행용 로션이든, 아무튼 숙소에서 기본으로 세팅하는 물품이 아닌 것이 남아 있으면 뭐든지 보고를 했다. 대부분은 역시 폐기 요청을 받았지만, 의외로 절대 마음대로 버리면 안 되는 유류품이 있었다. 바로 케이크다.


처음에 청소를 가르쳐 준 부장님이 신신당부를 하셨는데, 케이크는 먹다 남은 것이라도 무조건 보고를 해야 한다고 했다. 당연히 음식물 쓰레기로 생각해서 치웠는데 손님이 뒤늦게 전화해 특별한 날에 주문해서 만든 소중한 케이크인데 그걸 마음대로 버렸냐며 심하게 클레임을 했던 케이스가 몇 번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케이크가 남아있으면 꼭 사진을 찍어 보고하고, 최종 폐기 결정이 날 때까지 냉장고에 잘 보관해 달라고 했다.

모처럼 행복한 날 다음 날에는 반드시 유류품 후보가 많았다. 마당으로 옮겨지는 와인 병이나 위스키 병이 한 병 두 병 늘어가면 좀 더 신경써서 구석구석 살펴보았다. 보통은 떡볶이나 치킨, 피자, 과자 같은 것들의 흔적이 함께 남아있지만 그런 날은 치즈 플래터, 샤퀴테리, 모듬회 같은 것들의 흔적이 남아 어제가 얼마나 특별한 날이었는지 알려주곤 했다.


어느 날은 고급 생선이 포함된 비싼 모듬회에 모엣 샹동으로 시작해 이름난 샴페인들을 풍성히 즐기며 매운탕까지 확실하게 끓여 드시고 간 일행이 있었다. 숙박비만도 기십만원인데 저녁 메뉴도 한옥에서 몇 박은 묵을 수 있을 정도로 화려했으니, 아마도 치열하게 십수 년 사회 생활하던 친구들이 오랜만에 모여 회포를 푸셨나보다 싶은 날이었다. 그 분들은 하룻밤의 휴가와 대화로 얼마만큼의 활기를 되찾았을까, 다시 치열한 일상으로 돌아갈 힘을 얻었을까, 다음 모임을 기약하며 아쉬운 마음으로 체크아웃하셨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니트릴 장갑 낀 손을 바삐 놀렸다. 남은 회는 음식물 쓰레기 봉투에, 와사비와 초장이 묻은 회와 초생강은 따로 집어 종량제 쓰레기 봉투에, 매운탕의 잔해는 원칙대로라면 일일이 생선 뼈를 발라 내야 하지만 그럴 시간이 없으니 싱크대에 와라락 쏟아 붓고 싱크대 거름망을 쭉 짜서 묶은 뒤 종량제 쓰레기 봉투에 집어 넣었다. 생선이 기름지고 풍미가 고소할 수록 그 흔적은 무겁기 마련이다. 그 날은 모든 그릇과 싱크대, 하수구까지 뒤덮은 생선 기름과 비린내, 마늘 냄새를 씻어 내기 위해 온 주방 살림을 두 번씩 설거지했다.


케이크가 남아 있는 날은 기분이 묘했다. 보통은 기성품이 아니라 특별히 주문했을 것 같은 레터링 케이크나 커스텀 케이크가 남아 있었는데, 대개는 절반, 많으면 사분의 삼 정도 였다. 신신당부 받은 것도 있고 해서, 항상 얼른 보고하고 냉장고에 고이 넣어 혹시나 찾아 가실까 기다렸는데 어찌된 일인지 나는 매번 폐기 확인을 받았다. 폐기하세요, 연락이 오면 고이 넣어 두었던 케이크를 꺼내 손으로 집어 음식물 쓰레기 봉투에 넣고 주먹으로 으깨었다. 우리가 사용하는 2L 짜리 음식물 쓰레기 봉지는 작고, 케이크가 있는 날은 보통 다른 음식물 쓰레기도 많았으니까. 사람의 이름이나 다정한 메시지의 흔적이 남은 케이크를 손으로 으깰 때는 그것을 유심히 보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사진과 기억 속에 예쁜 모습과 행복한 감정이 온전히 옮겨졌기를 바라면서.


서촌에는 이런 저런 새가 참 많이 산다. 참새, 까마귀, 물까치, 딱따구리, 이름을 정확히 모르는 맹금류까지. 하지만 그 중에 제일 기세등등하고 무서운 것은 단연 까치다. 똑똑하고, 겁이 없고, 대개는 몇몇이 무리로 다니면서 다른 새들에게 시비를 건다. 맹금류와도 싸우고, 고양이에게도 쫄지 않는다. (요새 핫한 까치 호랑이 그림은 그냥 상징적 도상이 아닐 수도 있다. 까치는 호랑이를 만나도 덤빌 것 같다.)


내가 청소하러 가는 한옥 주변에도 터를 잡은 까치 무리가 있었다. 에어컨 배관을 감싼 테이프를 하도 찢어 놓아서 신경쓰이던 녀석들인데, 그 녀석들은 언제쯤 어디에 음식물 봉투가 나오는지 아는 것 같았다. 길목에서 기다리다 시비 거는 패거리처럼, 지붕 위에 몰려와서 딱 기다리다가 음식물 봉투를 들고 나오면 슬금슬금 다가오곤 했다. 늘 쫓아 보았지만 잠깐 날아갔다가도 기어이 돌아오는 것을 어찌할 수도 없고 영 거슬리는 놈들이었다.


어느 날은 밤하늘인지 밤바다인지 우주인지 아무튼 근사한 유화처럼 디자인된 네이비 컬러의 케이크가 한 판, 그리고 이런저런 행복의 잔해가 남아 있었다. 길었던 청소가 끝나도록 찾아가겠다는 연락은 오지 않았고, 유독 아름다웠던 것이라 괜시리 아까웠지만 서둘러 음식물 봉투에 꾹꾹 눌러 담아 들고 나갔다. 역시나 어김없이 까치 무리가 주변을 얼쩡거렸다. 그날따라 그 놈들은 더 겁이 없어 보였다.


다음날 출근해 보니 걱정했던 일이, 아니 그 이상이 벌어져 있었다. 호시탐탐 노리다 신나게 파 먹고 배탈이 난 까치 놈들이 골목부터 대문까지 온통 네이비색 새똥을 콘페티처럼 흩뿌려 둔 것이다. 자기들도 어지간히 놀라긴 했겠지. 작디 작은 까치 뱃속에서 불꽃놀이라도 일어났겠구나 싶은 그 네이비색 얼룩의 골목과 다시 내가 손으로 주워 담아야 하는 음식물 봉투의 잔해를 보며 출근하는 길.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2시간 반 동안 루틴의 청소를 서둘러 마치고, 누가 볼 세라 골목에 물을 뿌려가며 빗자루질을 하면서 또 한참을 웃었다. 사람의 파티가 끝나고 이어진 까치들의 대환장파티, 그 다음날 분주한 이 흠뻑쇼 다음에는 꼭, 하루쯤은 이 집이 휴식이 간절한 사람의 안식처가 되기를 바라면서.


작가의 이전글바람의 노래, 아니 Love runs ou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