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을 하나씩 열어 볼 때마다

한옥스테이 청소 이야기 (3)

by 블루잉크

굳이 한옥을 청소하기 시작한 것은, 내 나름대로의 한옥살이 연습 방법이었다. 언젠가부터 한옥에 살고 싶었으니까. 우리의 전통 건축이라 특별히 애착이나 자부심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서울에 내 집을 갖고 싶었다. 그런데 살아볼 수록 그게 주제도 분수도 모르는 꿈이라는 것만 깨달았다. 그러다 우연히 ‘한옥 지원금’ 이라는 게 있다는 걸, 한옥보존지구에는 생각보다 훨씬 작은 한옥들이 있다는 걸, 그 지역은 재개발이 거의 불가능해 생각보다 집값이 (그 때는) 크게 오르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었고 어쩌면 현실적으로 가능한 ‘서울 안 내 집’은 한옥 뿐일지도 모른다고 (그 때는) 생각했다.


하지만 아파트나 오피스텔, 빌라에서 사는 것과는 분명 다를 것 같아 두렵기도 했다. 주변에 '한옥으로 내집 마련이 꿈' 이라고 말하고 다녔더니 하나같이 전세든, 월세든, 하다 못해 한달살이라도 한번 겪어 보고 생각해 보라 했다. 그 때 내가 그랬듯이 주변 사람들도 한옥에서 사는 삶을 구체적으로 상상하기 어려웠던 것 같다. 분명 뭔가가 다를 것 같은데, 어쩌면 생각보다 별로일 지도 모르니 무작정 저지를 생각 말고 좀 안전하게 체험을 해 보라는 조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옥보존지구라고 해도 사실 아파트촌이나 빌라촌과 비교하면 주택 밀도는 희박한 수준이라, 전세든 월세든 한옥은 매물 자체가 구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숙소에서 묵는 것은 몇 주 혹은 몇 달이라고 해도 사실 일상을 사는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막연한 꿈과 상상만 있고 뾰족한 방법은 없는 채로 시간은 흘러갔다. 그러다 전세 폭탄을 간발의 차로 피해 집을 구하러 나서게 되었고 삼 개월만에 덜컥 서촌에 도착했다. 언젠가 한옥에서 살려면 한옥 많은 동네로 일단 가 보자는 생각이었다.


20년 된 빌라로 들어와 하루하루 집과 동네에 적응하던 무렵, 당근알바 페이지에서 우연히 한옥 청소 구인글을 보았다. 매일매일 손님이 묵고 나간 한옥을 쓸고 닦고 치우고 구석구석 매만지는 일. 문득 이거라면 완전하진 않아도 ‘절반의 살림’ 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잘 세팅된 한옥에서 먹고 놀고 잠자 보는 것 말고, 살림 비슷한 것을 해 보면서 심지어 돈을 쓰는 게 아니라 벌 수 있는 방법. 사라지기 전에 냉큼 잡아야 할 기회였다.



럭키대문 오프닝


청소를 처음 시작했을 무렵에는 매일 다른 한옥을 배정받았다. 전날 저녁에 전달받은 주소를 지도 앱에 찍고 골목을 더듬더듬 찾아가는 길. 이런 길도 있었나, 이쪽으로도 길이 이어졌던가, 이 안쪽에도 집이 있었구나, 하루하루 동네가 새롭게 보였다. 그야말로 모세혈관처럼 퍼진 골목은 막힌 듯 이어지고, 열릴 듯하다가 문득 끝이 났는데 그 곳에는 오늘 열어 볼 새로운 대문이 있었다.


한번 눈을 뜨니 청소를 하러 갈 때도, 올 때도, 쉬는 날에도 골목만 걸으면 오래된 건물과 다세대주택과 힙해진 상점 사이사이에 가만히 앉아있는 한옥들이 보였다. 딱 봐도 예쁜 집, 볼 수록 단아한 집, 한옥인지 양옥인지 아리송한 집, 지붕은 분명 한옥인데 수십 년 동안 땜질하듯 고치고 필요한 대로 덧붙여진 집, 낡아 구부정한 집, 새로 올려 아직 기둥도 덜 마른 집. 계속 보다 보니 한옥이란 것이 참 각양각색이었다. 사실 아파트는 바깥에서 샤시 크기와 배치만 봐도 대강 몇 평일 지 상상이 되고, 평수만 들으면 구조가 얼추 그려진다. 그런데 도시의 한옥은 대문 밖에서는 아무 것도 알 수가 없었다. 막다른 골목 끝에 대문만 겨우 빼꼼 있어도 막상 문을 열면 제법 널찍한 마당이 나타나기도 했고, 길가에 시원하게 드러나 있어도 들어가보면 빠듯이 세 칸인 집도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집을 배정받을 때마다 무엇이 들어있는지 모르는 럭키박스를 받은 것 마냥 두근거렸다. 골목을 더듬어 찾아가 대문을 천천히 열면서 이 안에는 어떤 공간이 숨어 있을지, 스테이가 되기 전 그 집은 어떤 구조였을지, 안에는 어떤 살림들이 어떻게 배치되어 있었을지, 그 공간에서 만약 살았다면 어떤 모습이었을지 상상해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어느 한 집도 같거나 비슷한 구조는 없었다. 첫인상에 와 예쁘다 했던 집도, 왜 이렇게 지었지 싶던 집도 있었는데 결국 청소를 하면서 햇빛과 바람이 드는 길을 느끼다 보면 이 땅에는 이렇게 집을 앉힐 수 밖에 없었구나(혼자만의 짐작 혹은 오해가 대부분일 지도 모르지만), 알아차리게 되었다.


한옥을 하나씩 열어 볼 수록, 그 전까지 ‘칸’이나 ‘상자’ 처럼 느껴지던 집이 점점 ‘땅’위에 ‘자리’를 잡고 자기만의 모습으로 다른 자연 요소와 상호작용하는 ‘존재’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내 몫의 조각 하늘


서촌의 한옥들은 전형적인 도시한옥이다. 서로 벽과 담을 기대며 다닥다닥 모여 붙은 집들. 기역자나 디귿자 모양 건물 하나와 그 가운데의 작은 마당(간혹 마당을 사이에 두고 본채 건너편에 작은 별채나 창고가 있는 집도 있다), 그리고 마당과 도로를 구분하며 처마 바로 밑까지 올라오는 높은 담장이 합쳐져서 미음자에 가까운 모양으로 땅을 차지하고 있다.


하루는 여기에 한옥이 정말 있나 싶은 곳으로 가게 되었다. 맛집이 즐비해 관광객이 항상 줄을 서고 유튜브도 심심찮게 촬영하는 길에서 살짝 곁가지로 뻗은 좁은 골목. 대문을 열고 어둑한 문간에 신발을 벗어두고 올라서서 오른쪽으로 돌자, 왼쪽에는 아늑한 거실과 침실이, 정면에는 아담한 주방이, 오른쪽에는 폴딩 도어 너머 마당을 가득 채운 커다란 노천탕이 나타났다. 침실과 거실에는 음식 포장용기와 침구, 과자 봉지와 캔 등이 흩어져 있었다. 아이쿠, 오늘도 바쁘겠구나. 서둘러 침구 커버를 벗겨내고, 쓰레기들을 모아 문간으로 내어 두었다. 샤워실과 침대 여기저기서 수건을 걷어 빨래 가방에 넣어 두고, 청소기를 돌렸다.


실내를 얼추 정리하고 마당의 커다란 욕조를 청소하러 기역자로 둘러진 폴딩도어를 쭉 밀어 접고 나니, 살짝 따가운 가을 햇살이 뺨을 스쳤다. 오늘의 장사를 준비하는 가게 사장님들과 일찌감치 골목을 찾은 관광객들로 분주한 골목에서 몇 걸음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노천탕은 거짓말처럼 조용했다. 욕조 위에는 햇빛을 가려줄 세모나고 하얀 천 두어 장이 돛인 듯 매달려 있었고, 그 위 하늘은 유독 파랬다. 처마와 담장으로 둘러 싸인 비뚤게 네모난 조각 하늘. 그 때 문득 어떤 만족감이 밀려왔다. 이 하늘이 지금은 내 몫이구나. 물론 잠시 후엔 오늘의 투숙객이 노천탕을 즐기고 테이블에서 차를 마시며 저 하늘을 바라 보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내 것이구나.


집 밖이 어떻든, 한옥 안에 있는 동안은 한 칸의 하늘을 독점할 수 있다는 것. 생경한 감각이었다. 아파트나 빌라의 창문이 수직으로 오려 주는 풍경에도 하늘이 있지만 그 안에는 항상 누가 끼어들지 않았던가. 앞집 사람, 지나가는 차, 오토바이... 하지만 한옥의 처마와 담장이 수평으로 오려 주는 풍경에는 날아가는 새나 구름 말고는 아무도 끼어들 수 없었다. 내 몫의 조그만 땅과 함께 지붕과 담장으로 오려낸 네모난 하늘도 한 조각 건네 주는 것이 도시의 한옥이었다.



4월, 7월, 12월의 어느 날


한옥은 조금 과장하면 벽 대신 문과 창이 있는 집이다. 물론 스테이들은 다 리모델링을 거쳐 침대나 소파 같은 입식 가구를 놓을 수 있도록 적절히 벽이 세워져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기둥과 기둥 사이에 문 아니면 커다란 창이 있다. 집에 도착해 그 문과 창을 하나하나 열었다. 밤새 난방으로 공기가 텁텁했지만, 조금 누그러진 한기에 골목의 꽃 향기가 섞인 바람이 이내 집으로 밀려 들어온다. 까치며 까마귀가 우는 소리, 지나가는 강아지가 짖는 소리, 돌돌돌 캐리어 바퀴 굴러가는 소리. 대청마루 자리는 아무리 리모델링을 했어도 마당으로 완전히 열리는 문이 있게 마련이고 계절의 냄새와 동네의 소리를 은은하게 실은 바람은 그곳으로 한가득 들어와 집안을 훌쩍 돌고 빠져나갔다.


우산 하나로 꽉 찰 듯한 골목을 조심조심 걸어 한옥에 도착했다. 여느 때처럼 방문과 창문을 활짝 열고, 정신없이 배경음악 리듬에 맞춰 침구 갈고 욕조 닦고 청소기 다 돌리고서 전원을 껐다. 부산스럽던 집 안은 한순간 조용해 지고 힘차던 노동요마저 빗소리에 섞여 조금 멍멍해 졌다. 음악이 나오던 아이패드를 끄고 고개를 돌려 보면 기와에 후둑후둑 떨어지는 빗줄기 소리, 댓돌에 토독토독 튀기는 빗방울 소리, 처마 끝 물받이를 따라 조로로록 흘러가는 빗물 소리가 화음을 내고 있었다. 그 소리가 요란하면 요란할수록, 집은 더 조용하게 느껴졌다. 바쁜 손을 멈추고 빗물의 소란함과 집 안의 고요함을 가만히 듣는 일이 분 남짓의 시간. 멈추지 않는 빗줄기 안에 지금 여기 내가 살아 있다는 감각이 귀로부터 온몸으로 퍼졌다.


밤새 눈이 내렸다. 오전 11시, 주민들은 일터로, 전날의 투숙객은 다음 목적지로 떠나갔고 오늘의 투숙객은 도착하지 않은 시간이다. 누군가 아침부터 애쓴 빗자루질 자국을 조심스레 밟으며 걸어가 묵묵히 닫혀있는 대문을 열었다. 눈이 내린 동네는 고요하지만, 그런 날 청소부는는 오히려 분주하다. 체크인 시간은 똑같은데 그 안에 청소도 하고 마당과 집으로 들어오는 길의 눈도 치워야 하기 때문이다. 청소를 서둘러 마치고 쉴 새 없이 빗자루를 들고 밖으로 나올 때는 외투를 걸치지 않는다. 눈을 치우다 보면 춥기는 커녕 땀이 났다. 정신없이 골목과 마당까지 말끔히 쓸어낸 다음 집으로 들어가 구석구석 점검을 하고, 보일러를 25도로 올려두고, 불을 끄고, 방향제를 뿌리고 문을 닫고 나와 마당에 서서 마지막으로 쓱 둘러보면, 한옥은 까만 기와 지붕에 하얀 눈을 가만히 이고 고양이처럼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제서야 고요했다. ‘편안한 시간 보내세요,’ 잠시 후 들어 올 투숙객에게 미리 인사를 전하고 돌아나와 대문을 닫았다. 한옥도 골목도 눈 사이에 앉아 조용했다.





한옥에서 ‘절반의 살림’을 하는 것은 솔직히 만만치 않았다. 아파트나 원룸, 빌라에 살면서 한번도 신경써 본 적 없는 문제가 종종 나타났고 상상도 못한 것들까지 관리해야 했다. 평범한 집에 살 때보다 훨씬 많은 시간과 노동, 고민을 투자해야 집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한옥을 하나씩 열어볼 때마다, 그 안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던 사이사이, 문득 끼어드는 순간들이 자꾸만 소매를 붙잡으며 속삭이는 것 같았다. 그래도, 한옥살이 한번 해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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