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스테이 청소 이야기 (4)
한옥에 사는 건 낭만일까, 미련함일까. 한옥을 청소하면서 시간이 멈춘 듯 반짝이는 순간을 몇 번이고 마주쳤다. 현대식 집합주택에서는 분명 경험할 수 없었던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 반짝임만으로 넘길 수 없는 입안의 먼지 같은, 신발 속의 흙 같은 순간들도 늘 있었다.
“욕조에서 냄새가 좀 나는 거 같다는 피드백이 있었어요.”
그럴 리가 없다. 맹세코, 단 하루도 소홀함 없이 허리가 부러져라 닦았다. 나부터 욕조 목욕을 사랑하기에 투숙객에게 항상 깨끗한 욕조를 선물하고 싶었다. 온 욕조가 거품으로 뒤덮이도록 세정제를 뿌리고, 바닥, 벽, 모서리, 수전, 어디 하나 빠뜨리지 않고 솔과 수세미로 벅벅 문질렀다. 샤워실도 언제나 바닥부터 벽까지, 타일에서 푸른 기운마저 느껴지도록 풀 파워로 청소했다. 하수구도 트랩까지 새것처럼 세척했다. 불시에 점검하러 온 선배가 매일 그렇게 닦느냐며, 그렇게까지는 안 해도 된다고 만류할 정도로 닦았다.
하지만, 이 집에서도 저 집에서도 잊을만 하면 ‘냄새’ 피드백이 들어왔다. 어떤 날은 화장실 냄새 같은 것이라고 했고, 어떤 날은 체취 같은 것이라고 했다. 억울하고 기가 막혀 청소를 마치고 바닥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아봤다. 당장이라도 맨몸으로 누울 수 있을 만큼 깨끗하게 청소했으니 거리낄 것도 없었다.
났다. 은은하지만, 분명히 기분 나쁜 냄새가. 욕조의 오버플로 배수구였다. 수세미로, 또 칫솔로 벅벅 문질러 닦았다. 소용이 없었다. 어이없지만 별수 없이 관리자에게 보고했다. 다음 날, 확인하러 온 관리자가 냄새를 맡아보더니 이마를 긁적였다.
“맞네. 땅속에서 올라오는 거네요. 하, 이게 한옥이라.”
수십 년 전에 묻어둔 하수관에는 세월만큼 많은 것이 쌓여있다고 했다. 설상가상으로 얕게 묻힌 곳이 많아 그 냄새가 쉽게 올라온다고. 힘이 빠졌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닦고 더 닦았는데 어쩔 수가 없다니.
오래된 배수관은 손가락 수준으로 가늘어 가끔은 욕조 목욕도 버거워했다. 이른 아침에 욕조 가득 물을 받아 목욕을 즐겼다가 체크아웃 시간까지도 물이 다 빠지지 않아 당황한 채 연락을 남긴 투숙객도 있었다. 어느 집은 관이 유독 얕게 묻혀 있었는데 그나마도 중간에 틈인지 금인지가 생겨, 목욕만 하고 나면 마당 한구석의 땅이 젖기도 했다.
집을 다 헐고 땅을 다 파내어 관을 교체하지 않는 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었다. 그저 끌어안고 갈 수밖에. 오버플로 배수구는 결국 실리콘으로 봉인되었다. 욕조마다 절반 깊이쯤에 ‘넘침 방지선’이 생겼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하던 대로 청소하고, 한 달에도 몇 번씩 ‘예방 차원’에서 배수구 세정제를 들이붓는 것뿐이었다.
항상 모서리, 구석, 어디 아랫부분을 잘 살펴봐야 했다. 벌레나, 벌레의 흔적은 없는지. 매월 해충 방제 업체에서 나와 집 안팎 구석구석 - 모서리, 기둥 아래, 배수구, 천장 구석, 화장실, 툇마루, 마당, 처마 안쪽까지 - 벌레가 나올 법한 곳은 모두 꼼꼼히 약을 쳤지만 그래도 한옥에는 일 년 내내 뭔가 살고 있었다.
나무 기둥에는 크고 작은 구멍이 있게 마련이고, 그 안에는 언제라도 지나던 곤충이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어느 날은 서까래의 구멍에서 벌이 줄줄이 나오는 것을 보고 기함했다. (구멍은 당장 실리콘으로 봉인되었다.) 모기나 파리는 없으면 이상한 것이고, 거미줄을 걷어내는 것은 특별한 일도 아니었다. 뭐든지 나타나면 잡고, 클로즈업 사진이나 영상을 촬영해 보고해야 했다. 회사에서는 그것을 계약한 방제 업체에 보내 정기 소독으로 해결할 수 있는 벌레인지, 그냥 지나가던 벌레인지, 번지기 전에 지금 당장 출동해서 박멸해야 하는 벌레인지 확인받았다.
느슨해질 만하면 어김없이 불청객이 나타났다. 그럼, 혼자 괴성을 지르고 벌벌 떨면서 잡았다. 바퀴벌레는 아무리 마주쳐도 적응이 안 됐다. 몸서리나던 첫 만남의 순간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출근길 대문 앞, 길에 웬 매미가 가만히 앉아 있나 하고 다가가다 펄쩍 뛰었다. 붉은 갈색의 배를 뒤집어 까고 누운 것은 바퀴벌레였다. 그렇다. 한옥 밀집 지역에는 성인 엄지손가락만 한 바퀴벌레가 산다. 어느 집에 사는지 따지는 건 의미가 없다. 여름밤에는 바퀴벌레도 골목을 산책하니까. 친척인 흰개미도 있다. 조사에 따르면, 서촌 거주용 한옥의 70%에 흰개미가 산다. 그래서 흰개미 탐지견이 활동했던 적도 있고, 지금도 한옥주에게 흰개미 방제 약품을 배포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투숙객이 흰개미를 볼 일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출근 전에 예보를 받은 날도 있었다. 하필 하룻밤에 두 마리가 출현했는데, 투숙객이 잡긴 잡았지만 못 치우고 체크아웃했다고. 아아, 어떤 분들이었을까. 얼마나 큰 녀석을 보고 만 걸까, 왜 그냥 두고 간 걸까. 그들은 지금 어디에 죽어있을까, 살충제나 슬리퍼를 맞고 깊은 구석으로 들어가 버렸을까, 혹시 모든 가구를 들거나 옮겨야 하는 것은 아닐까, 꼬리를 무는 생각에 애꿎은 입술만 잘근잘근 씹으며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거실에 한 마리, 욕조 안에 한 마리 매미, 아니 바퀴가 배를 까고 누워있었다. 어휴, 크기도 해라. 사진을 찍는데 미간이 절로 구겨졌다. 간밤에 그 투숙객들은 얼마나 기겁했을까. 나였다면, 상상만 해도 소름이 끼친다. 이를 악물고 슬리퍼를 손에 쥐었다가도 뒤처리를 감당할 자신이 없어 슬그머니 내려놓았을 것이다. 투숙객들은 객실에 비치된 모기용 살충제를 선택했고 격렬한 전투 끝에 간신히 승리했다. 새것이었던 살충제는 하루 만에 반 통쯤 사라졌고, 바퀴들은 하얀 거품이 인 약제 웅덩이에 빠져있었다. 결코 손대고 싶지 않은 현장이었지만, 체크인 시간은 다가오고 그곳은 일터, 사람은 나뿐이었다. 거실 마루와 욕조 타일에 고인 기름진 살충제를 문지르고 문질러 닦아내느라, 그날의 청소는 꽤 오래 걸렸다.
비나 눈이 오는 날에는 출근하자마자 서둘러 챙길 것이 많았는데, 그중에는 마당에 팽개쳐진 슬리퍼도 있었다. 한옥은 필로티 구조다. 방은 지면에서 떠 있고 신발을 벗고 마루에 올라야 들어갈 수 있다. 머무는 동안에는 방에서 마당을 지나 별채나 문간을 오갈 때마다 신을 신었다 벗었다 해야 하는데, 이게 번거로우니 사시사철 슬리퍼가 필요하다. 마당에서 슬리퍼가 눈비를 맞고 있으면 얼른 모아 깨끗이 씻고 청소하는 동안 잘 말려 두어야 다음 투숙객이 또 보송하게 신을 수 있었다.
한옥에 묵으며 슬리퍼를 신고 돌아다니는 동안, 신고 온 신발은 마당에 벗어두게 된다. 한옥스테이에는 신발장이 보통 없었다. 생각해 보면 한옥이었던 시골 할머니 댁도 마찬가지였다. 도착하면 툇마루에 걸터앉아 신발을 벗고 열 켤레쯤 널린 슬리퍼 중에 가까운 것을 발에 꿰었다. 벗은 신발은 마루 아래로 툭 던져 넣어두고 내내 슬리퍼만 신었다. 신발장이랄 것은 없었고, 마루 아래에는 온통 그렇게 던져둔 운동화며 구두, 장화나 고무신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그런데 그 툇마루 아래는 개도, 고양이도, 쥐도, 지네도 지나다니는 퍼블릭 스페이스였다. 그들이 사람의 신발을 피해 다닐 이유는 없었다. 가끔은 깔고 앉거나 안에 들어가 쉴 수도 있고, 깜빡 잠들었다가 신발 주인을 놀래 주기도 했다. 그렇다고 바깥으로 신발을 빼 두면 햇빛에 달궈지거나 추위에 얼거나, 눈비를 맞거나 흙먼지를 뒤집어썼다.
왜 신발장에 신발을 넣어 보호하지 않았을까. 지금 보니 이유는 한옥의 구조에 있었다. 현대의 집은 현관 한 곳에서 신발을 벗고 신으니, 그곳에 신발장을 두면 신기도, 정리하기도 편하다. 하지만 한옥은 방을 드나들 때마다 신발을 벗고 신어야 하는 구조라 방 앞에 그대로 신발을 벗어두는 게 낫고, 신발장을 두어 신발을 모으면 오히려 번거롭다. 머무는 동안 계속 신발을 벗었다 신었다 해야 하니 어디 넣어두는 것보다 땅에 놓아두는 편이 효율적이다.
그러다 보니 밤새 비나 눈이 온 다음 날에는 꼼짝없이 푹 젖은 신발을 신고 체크아웃을 한 이들이 아마 꽤 되었을 것이다. 사실 투숙객의 신발 사정까지 걱정할 것도 없었다. 유독 덥거나 추웠던 날, 청소를 마치고 벗어두었던 신발을 다시 신을 때마다 아흐, 소리가 나왔다. 비나 눈이 오는 날은 툇마루 아래 거의 없는 공간에 어떻게든 신발을 밀어 넣어 두려고 애를 쓰곤 했다.
슬리퍼를 신는대도, 청소는 집 여기저기를 분주히 왔다 갔다 해야 하는 일이다. 그때마다 마루를 오르내리며 신을 신었다 벗었다 하는 것은 솔직히 번거로웠다. 서둘러 다녀야 할 때는 위험하기도 했다. 이것저것 들고 창고와 본채, 별채를 종종거리며 돌아다니다 슬리퍼 신은 발로 댓돌을 빗겨 밟아 발목을 삐끗한 게 몇 번인지 모른다. 크게 삐거나 부러지지 않아 다행이었을 뿐이다. 급히 마루를 오르며 슬리퍼를 팽개치다 댓돌에 발가락을 부딪쳐 피를 본 날도 몇 번이나 있었다. 그러다 마루에 넘어져 무릎을 다치지 않은 게 다행이라 해야 할까.
청소하며 사소하다면 사소하지만, 한옥이라 결코 해결할 수 없는 불편들에 자꾸만 부딪혔다. 신발 안에 들어간 모래알처럼, 아픈 건 아니지만 계속 거슬리고 조금 짜증이 나는. 다른 형태의 집을 두고 한옥을 선택해 산다면, 그 모래알들을 결코 털어버릴 수 없다는 사실이 때로 꽤 피곤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피곤함에 생각보다 빨리 한옥살이에 지쳐 버릴지도 모르겠다는 염려와 함께.
아파트와 빌라에서 살아본 내가 한옥에 살면 퍼석했던 삶이 자연과 낭만으로 채워질까, 아니면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것에 비용과 에너지를 쓰는 낭비가 될까. 한옥이 아파트보다 ‘좋은 집’이라면, 가격표에서 티가 날 테다. 부동산 시장은 투명한 욕망의 시장이니까. 서촌 골목을 걸으며 공인중개사 사무소 유리 벽에 줄줄이 붙은 매물 안내를 본다. 그 벽이 보여주는 현실은, 그런데 조금 묘하다.
한옥은 임대든 매매든 매물이 없어서 난리라고 들었는데 웬걸, 부동산 벽에는 한옥 매매, 한옥 임대가 심심찮게 붙었다. 집이 있는 데 없다는 것이다. 사정을 들어보니, 있는 집은 스테이나 카페고, 없는 집은 살림집이란다. 불과 몇 년 전까지도 서촌에서 10평 대의 아담한 한옥은 4~5억으로 구할 수 있는,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거래도 드문 집이었다. 하지만 최근 ‘한옥체험업’, 그러니까 한옥스테이가 활성화되면서 숙소로 리모델링된 한옥 가격에 날개가 달렸다. 한옥카페도 바람을 더했다. 살림집 한옥은 매물이 말랐지만, 상업용 한옥은 10억은 우습고 20억을 호가하는 곳도 나타났다. 한옥에 살던 사람은 하나둘씩 살림집을 옮기고, 그 집은 수많은 사람이 끊임없이 오가는 공간으로 이름표를 바꿔 간다.
한옥은 지금 시장에서 잘 팔린다. 사람들은 점점 더 한옥의 공간을 경험하길 원한다. 하지만 그건 ‘집’이라서가 아니다. 그렇다고 상업용 한옥이 마냥 이상하게 개조된 것도 아니다. 개중에는 한옥의 건축적 전통과 미학을 잘 살렸다며 ‘서울우수한옥’으로 지정된 곳도 많다. 그럼 이제 한옥의 가치는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주거 기능, 문화와 전통, 상업적 가능성. 이 중 무엇이 더 중요하다고, 무엇이 더 우선이라고 딱 잘라 말할 수 있을까?
한옥스테이를 청소하는 날이 쌓여갈수록, 한옥에서 반짝이는 순간과 버석거리는 순간을 하나하나 마주할수록, 한옥살이에 대한 고민은 점점 더 복잡하게, 깊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