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스테이 청소 이야기 (5)
요 몇 년 새 동네에서는 하루가 멀다하고 한옥이 변신하고 있다. 사실 한옥의 입장에서는 변신 당하는 셈이다. 서촌의 한옥들은 일제시대에 지어진 것도 흔하고, 50년 된 집이면 양호, 준공연도 ‘미상’인 것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집들이 하나씩 스테이를 운영하고 싶은 사람 혹은 업체의 손으로 넘어가고 있다. 매매인지 임대인지 거래의 사정은 알 바 없지만, 한동안 까만 그물망으로 뒤덮였다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한옥들을 보면 열에 일고여덟은 스테이요, 한둘은 카페, 살림집은 하나 될까말까다.
살림집 한옥은 복닥복닥하다. 1960년대, 어쩌면 1930년대의 삶에 맞추어 짠 공간에 2020년대의 삶에 필요한 물건을 넣으려면 여간 복잡한 것이 아니다. 드럼세탁기, 양문형 냉장고, 퀸사이즈 침대, 에어컨, 50인치 TV, 식기세척기, 건조기, 로봇청소기. 별반 요란하거나 사치스러운 기물도 아니고 보통의 살림들이다. 하지만 지금 서울에서 굳이 한옥에 사는 사람은 아마도 집에서 고즈넉하고 여유로운 느낌을 찾는 것일테니, 한옥에 넣자면 덩치가 꽤 큰 저 가전가구를 배치할 때 머리를 꽤나 많이 써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스테이나 카페로 다시 태어난 한옥들을 보면 시원하고, 고급스럽고, 우아한 느낌이 든다. 리모델링 과정에서 그 복잡했던 고민이 다 치워져 버렸기 때문이다. 가전과 가구를 걷어내고 남은 공간은 멋진 여백으로 남겨지고, 거기에는 호젓하게 그림 한 점, 도자기 한 점, 화분 한 점 같은 것이 자리 잡는다. 심지어는 욕조가 벽이나 문 없이 집 한 가운데에 주인공처럼 놓이기도 한다. What a beautiful space!
한옥스테이에는 실내에 벽이나 문이 없는 경우도 많았다. (4인 이상의 숙박을 위한 다인실은 예외다.) 좁은 대지 안에 두 칸 세 칸 쪼개어 방을 만든 집이었는데, 벽을 트고 시야를 가리던 문도 떼고 그 사이에 보자기를 한 장 하늘하늘 매달아 둔다. 소박한 나무 선반이나 보일 듯 안 보일 듯한 유리 타일 파티션 같은 것으로 은근히 구분해 둔 공간 안에 서 있으면 오히려 현대적인 느낌도 들고, 세련되어 보인다.
가족이나 연인이 며칠 밤 묵고 가기에는 충분히 멋지고 시원한 공간이다. 하지만 원룸에 살아본 사람은 안다. 사실 살아보지 않아도 안다. 혼자서 살아도 원룸보다는 투룸, 투룸보다는 쓰리룸이 좋다는 것을. 하물며 식구가 있으면 당연히 방, 그러니까 벽이 있고 문이 있어야 좋은 집인데, 스테이는 벽도 문도 없어도 ‘단칸방’이 아니라 ‘스튜디오 스타일’ 이라는 멋진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재미있다.
혼자 살아도, 집에서는 벽과 문을 원하는 이유는 뭘까. 미처 정리하지 못한 삶의 어떤 조각을 일단 밀어 넣고 문을 닫아 유예해야 하는 순간도 있기 때문이 아닐까. 내 삶을 지탱하는 수많은 물건과, 그 물건이 연상시키는 움직임들로부터 나를 한번씩은 떼어내야 하기 때문이 아닐까. 가족과 함께 혹은 혼자 있더라도 때때로 단절이나 고립이 필요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 유예와 외면, 단절이 없는 원룸에서 살던 때 가끔 밀려오던 생활의 피로감은 분명 묵직하고 끈끈했다.
하지만 스테이는 그 모든 것을 다 떼어두고 온 곳이니까, 벽도 문도 없어도 피로하지 않은 공간인 것 같다. 그저 내가 지금 있는 공간을 최대한으로 만끽하면 그만이니까, 시야를 가리는 게 없을수록 좋은 것 아니겠는가.
청소했던 모든 한옥은 집 안에 욕조가 있었다. 한옥의 정취를 감상하며 여유와 휴식을 충만하게 즐기는 것이 공간의 중요한 콘셉트였기 때문에 커다란 욕조, 물기를 닦고 스킨케어를 하며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기에 부족함 없는 세면 공간, 따로 마련된 샤워 공간, 완전히 분리된 변기실까지 셀프케어, 힐링을 만끽할 수 있는 공간이 완벽하게 갖춰져 있었다. 필지가 크지 않은 한옥 안에 이 모든 공간을 넣자니, 집 전체 면적의 삼분의 일에서 절반까지 욕실에 할애된 셈이었다.
대부분의 집에서 욕실이 차지하는 비율을 생각해보면 이런 공간 구성이 얼마나 호화로운가. 그 한옥스테이들은 결코 집에서 느낄 수 없는 호화로운 기분을 선사하는 곳이었고(물론 그 호화로움은 숙박비에 반영되어 있었다), 그것이 그 곳의 큰 매력이었다. 하지만 그 때문에 그 공간들은 다시 살림집이 되기에는 너무 멀리 가 버린 공간이라는 생각을 했다.
욕실에 어마어마한 공간을 내어 주고 나니 가구도, 살림살이도 넣을 곳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청소할 한옥을 배정받으면,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은 내 노동을 위한 물건들이 어디에 숨겨져 있는지였다. 투숙객이 최대한 넓은 공간을 누릴 수 있게 해야 하니 공간 유지 관리에 필요한 각종 물품들은 가능한 한 작은 공간에 욱여넣어 두었다. 그 창고는 투숙객이 괜히 들여다 보거나 손대지 않도록 가능한 한 외진 곳에 배치하거나, 눈에 띄지 않게 하거나, 손대기 힘들게 되어 있었다.
별채로 광이 있었거나, 작은 문간방이나 뒷주방이 있었던 한옥은 그런 공간이 창고가 되었고 그 한 군데에 모든 물품이 정리되어 있어 편리했다. 하지만 어떤 한옥은 구조상 창고를 별도로 둘 수 없었고 그러면 물품은 집 이곳저곳에 만든 구석장에 숨겨져 있었다. 그런 곳은 청소 동선도 불편하고, 물품을 넣고 꺼내는 것부터 일인데다 물품 정리도 한번에 할 수 있는 것을 두 번 세 번에 나눠서 해야 했다.
비좁은 창고에 온갖 청소도구를 모아 넣어두고, 그 좁은 공간에 각종 소모품과 교체할 새 침구도 쌓아두고, 그 안에서 또 작은 한켠을 마련해 덜 채워진 종량제 봉투나 빨아 둔 걸레도 널어두고는 문을 닫아 둔다. 청소를 시작할 때 창고를 열어 모든 도구와 비품을 부랴부랴 꺼내어 온 집안에 펼쳐 두고, 청소가 끝나면 모든 물건을 ‘제자리’, 시야 바깥으로 말끔하게 숨겼다. 그렇게 투숙객을 맞을 준비가 끝난 스테이가 얼마나 호젓하고 고요해 보이던지.
그러고 보니 새삼 참 많은 물건이 집을 쾌적하게 유지하는 데에 사용되고 있었다. 기분 좋고 아름다운 공간을 만들기 위한 노동도 노동이지만, 그에 필요한 물건도 참 많았다. 가만 보면 그것들이 내 집에도 다 있는데, 집안 여기저기에 흩어져 제각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집에서는 어디서나 눈에 띄는 노동의 도구와 흔적들을 눈에 보이지 않게 치워두니 스테이가 우아하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거였다. 그랬다. 한옥스테이가 아름다운 이유는 가사노동의 흔적이 없기 때문이고, 한옥스테이가 여유로운 이유는 가사노동에 쓰는 모든 물건이 사라져 그 물건들이 차지하던 공간이 여백으로 보이기 때문이었다.
집에는 당연히 있지만 스테이에는 없는 것들이 또 있다. 일단 옷장. 나는 옷이 많은 편도 아니지만(1년에 새로 사는 옷이 열 벌이 채 되지 않고, 그나마도 대개 하나를 사면 하나를 버린다), 집에 옷방이 있다. 청소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옷을 갈아입을 때면, 집에서 옷이 깔고 앉아 있는 자리가 얼마나 커 보이던지. 스테이에는 신발장도 없다. 발은 두 개뿐, 집에 사는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발을 다 합쳐봐야 열 개도 안 될텐데 집에서 신발이 차지하는 자리는 또 얼마나 큰지.
그러고 보면 살림살이라는 것들은 나보다도 집을 더 많이 쓰고 있다. 그것이 있어야 집이고, 없으면 스테이가 되는 것이었다. 살림살이를 위한 공간을 모두 나를 위한 공간으로 바꾸어 공간의 주인 자리를 물건에서 사람에게 옮겨 주니, 그 안에 있는 것만으로도 대접받는 느낌이 드나 보다. 그것이 어쩌면 스테이가 주는 호화롭고 우아한 환대의 분위기를 만드는 비결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 주인 자리는 시한부다. 사람만을 위해 온전히 내 준 공간에서는 살 수가 없고, 물건들이 주인 마냥 자리 다 잡고 남은 공간에 가야지만 살 수가 있다니, 그것도 참 얄궂다.
주방을 정리할 때마다 생각했다. 스테이나 우리집이나 둘다 내가 닦고 치우는데 여기는 어쩜 이리 정갈하고, 집은 어쩜 그리 번잡하고 복잡한지. 스테이에도 밥그릇, 국그릇, 접시, 냄비, 프라이팬, 숟가락, 젓가락, 도마, 칼, 국자 다 있는데.
어느날 집에 돌아와 부엌을 보고 알았다. 조리대 위의 쌀통이며 올리브유, 간장. 서랍을 꽉 채운 밀폐용기와 계량컵. 상부장에 채워둔 라면과 통조림, 하부장에 크기 별로 쌓아둔 소쿠리들과 스텐볼, 언젠가 필요할까 싶어 씻어 말려 넣어둔 유리병과 포장용기들. 스테이에는 없지만 집에는 있는 ‘이 다음 언젠가’를 위한 수많은 물건들. 이 순간만이 아니라 내일, 다음 주를 대비하는 물건들. 집 부엌에는 그런 것들이 가득 눌러 앉아 있었다.
스테이의 부엌이 정갈한 이유는 현재만을 위해 채워지고 나머지는 비워 두었기 때문이고, 집의 부엌이 복잡스런 이유는 미래를 위해 채워진 물건들 사이사이에 어제의 흔적까지 끼어들어 있기 때문이었다. 스테이의 부엌은 잘 세팅해서 찍은 스틸 사진이었지만, 집의 부엌은 편집도 멈춤도 없이 이어지는 라이브 영상이었다.
비슷한 것처럼 보였지만, 한옥스테이와 한옥 살림집은 속을 들여다 볼 수록 많이 달랐다. 한옥살이를 맛보기에는 한달살기보다 한옥 청소가 더 리얼할 것이라 생각하고 시작했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한옥에서의 가사노동과 유지보수 노동을 직접 해 보거나 옆에서 지켜보는 것은 한옥살이 환경의 실전 예고편이 맞았다. 하지만 애초에 스테이와 살림집은 본질적으로 다르고, 스테이에서는 ‘살기’를 흉내내는 여행이 아니면 보수를 받는 노동만 가능하다는 것을 일을 해 보고서야 알았다. 호텔이 아니라 독채니까, 스테이를 운영하려고 새로 지은 건물이 아니라 50년, 60년 집으로 쓰던 건물이니까, 집에 가까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참 단순하고 순진한 생각이었다.
스테이와 달리 살림집은 지겨운 일, 피곤한 일, 하기 싫은 일, 번거로운 일에도 공간을 내어주어야 하는 곳이었다. 편안하게 자고, 느긋하게 씻고, 즐겁게 쉬고, 원하는 일에 집중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행복을 만끽하는 공간만 채워도 부족하지만, 그 모든 것을 위한 공간을 조금씩 희생해서 그 모든 것을 할 시간을 빼앗아가는 일을 위한 공간을 두어야만 한다. 매일 반복되는 청소, 빨래, 설거지. 쓸 수록 닳고 해지는 집의 수리, 정비, 보수. 역시 아름답지도 여유롭지도 않은 일들이지만 이들도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
잠시 머무르는 곳과 사는 곳은 생각보다 더 달랐다. 머무르는 곳은 아름다움으로 가득 채워도 좋다. 그러면 더 좋다. 현재에 충실하면 충분하니까. 하지만 살아가는 곳은 아름다움으로만 가득 채우면 얼마 가지 못해 멈추고 말 것이다. 삶은 과거에서 미래로 흘러가는 것이고, 그 흐름을 이어가는 것은 아름답지 않고 지겹고 번거롭고 피곤한 것, 그리고 그것을 위한 시간과 공간이다.
그래서 였나보다. 집을 아무리 열심히 치우고 꾸며도 한번씩 스테이의 아름답고 멋진 공간에 가고 싶던 것이. 그리고 스테이에 가서 호화로움과 여유로움을 즐기다가도 결국은 집 생각이 나던 것이. 그저 사치스런 불만이나 변덕이 아니라 시계추의 반동 같은 것이었다. 머무름과 살아감, 의외로 좁아지지 않는 그 사이에 매달려서 삶의 흐름에 충실하다 지치면 현재와 나에 집중하고 싶어지고, 현재의 나를 채우고 나면 다시 흘러가던 자리로 돌아가고 싶어하며 흔들거리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