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히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생기면, 나는 내 안에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문제를 찾기 위해 속마음을 집요하게 뜯어내고,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말로 서슴없이 푹푹 난도질한다. 이직 준비를 할 때도 그랬고, 새로운 일에 적응할 때도 그랬다. 무엇이든 간에 익숙해지고 괜찮아질 시간이 필요한데, 나는 항상 그 시간을 못 견뎌하며 자꾸 "충분히 앞서나가지 못하는 나"의 잘잘못을 따지기 바빴다. 그래야만 내가 모르는 이유를 찾을 것만 같았다. 분명 내가 알지 못하는 이유가 있을 거라고, 내가 이렇게까지 집착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다가 문득 하루는 제 풀에 지쳐 낙서한 종이를 꾸겨 버리듯 내버려 둔 적이 있다. '뭐 어쩌겠어, 이런다고 일어난 일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없어지는 것도 아니잖아, ' 하면서.
그리고 잊어버렸다.
새까맣게.
특별한 것을 한 것도 아니었다. 계속 축 쳐져있는 이 기분이 싫어 집안 이곳저곳을 살피며 내가 돌보지 않은 공간을 찾아 헤맸다. 트레드밀을 뛰며 마음속 불안에게서 도망치기도 했다. 혹여나 곰팡이처럼 다시 나 자신을 싫어하는 감정이 피어날까 열심히 닦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싶은 칙칙함에서 멀리멀리 뛰었다. 내가 나를 통제하지 못한다는 그 지긋지긋한 피로에서 씩씩거리며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내 감정이 아닌 자아로서의 나를 챙기자, 무엇에 그렇게 화를 내고 짜증을 냈는지도 모르게, 나를 괴롭히던 그 잡동사니는 온데간데 사라진 것처럼 치워져 텅 빈 마음만 남았다.
처음 느껴보는 기분이었다.
마치 새로 이사오기를 기다리는 아파트처럼, 내 머릿속과 마음속은 허전했다.
창밖으로 들어오는 햇살, 사람이 머무르지 않아 떠다니는 먼지, 깨끗한 듯 누군가 살았던 흔적이 남아있는 바닥. 살면서 이토록 조용할 수 있다는 걸 깨달은 그날은 잠잠하고 묵직했다. 조용히 돌아가는 에어컨 소리가, 밖에서 어렴풋이 새어 들어오는 사람 소음이, 내게 일러주었다. '이제야 너를 봐주는구나, ' 하고.
나를 살피고 돌보는 건 처음엔 당연히 어색했다. 나는 예민하고 민감한 사람이라 내가 누군가를 굳이 신경 쓰지 않으려 해도, 나는 이미 주고 싶지 않은 관심을 쓰며 상대방을 있는 힘껏 배려하고 있다. 조금씩 나 자신을 돌보기 시작하면서, 나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게 어떤 것인지 알게 된 순간부터, 이제는 이 어색함을 점차 루틴으로 자리 잡아 특별하지 않은, 사소한 습관으로 만들어가려 한다. 겉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아도 내 마음속에서는 격렬하고, 역동적으로 하루가 다르게 바뀌어가는 중이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말자는 말이 있지 않던가. 나는 익숙함에 속아 넘어가려 한다. 익숙함에 속아 내가 소중하다는 걸 깨닫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