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 수밖에

by 정제이

사람은 누군가의 언행(言行)을 보고 저 사람이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를 가린다. 단순히 좋은 말을 한다고 해서 말하는 태도가 좋지 않을 때도 있고, 누군가를 나서서 도우는 사람이 어디선가 구설을 퍼트리고 다니는 사람일 때도 있다. 문득 들려오는 불편한 어휘와 은근하게 내리까는 듯한 말투로 교묘하게 속내를 드러내는가 하면, 가슴 한편에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은 문장과 은은하게 퍼져나가는 온화함으로 건조하기만 했던 하루에 꽃봉오리를 피어내는 말도 있다.


참 이상하게도, 항상 좋은 일을 겪은 사람만이 좋은 말과 좋은 행동을 실천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아동기에 사랑받지 못한 채 방치된 모든 사람들이 범죄자가 되는가? 아니다. 모든 게 순탄하게 흘러간다고 해서 부정적인 감정을 쓰지 않는 날이 있을까? 그것도 아니다. 가정환경이 좋지 않았다고 해서 빌런이 되는 게 아니고, 항상 좋은 일만 있다고 해서 대천사가 되는 게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겪어온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 선(善)을 베푸는 사람들도 있다. 내가 그렇다.


나는 어린 나이부터 여러 인간관계 속에서 상처를 받으며 자랐다.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도 당해보고, 나의 신뢰를 시험당하기도 하고, 원하는 모습의 애정이 아니면 가차 없이 내 잘못이라며 비난당했다. 그런 과거를 거쳐왔음에도, 나는 '사랑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마음 하나로 살고 있다. 덕분에 내가 제일 많이 듣는 말은 내 말과 태도를 좋아해 주는, 사랑받는 말들이다.

"너는 참 다정하고 예뻐. 말도, 행동도, 참 다정한 사람이야."

"너는 작은 것도 세심하게 기억해 주는 고마운 사람이야."


나는 사랑을 빙자한 비뚤어진 화살표를 사랑이라 배웠고, 아프기 때문에 진정한 사랑이라 배웠다. 위험한 것들을 좇아 애정을 채웠고, 누군가가 더 행복해질 수만 있다면 내가 병들고 아픈 건 괜찮다고 단정 지었다. 스물이 넘어서야 여태껏 내가 알고 있던 형태의 사랑을 사랑이라고 부르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아직도 사랑과 애정을 새로 배워나가고 있다. 20대 중반이 된 지금에서야 건강한 인간관계가 무엇인지 알아가고 있다.


그래서 다정함을 놓을 수 없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모질게 밀어낼 이유가 없다. 아니, 밀어낼 수 없다. 내 시간이 멎기 전까지 아낌없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랑받지 못했을 때의 아픔과 어떻게든 사랑받기 위해 발버둥 치던 날들이 내게 가르쳐 준 가장 큰 교훈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만큼은 이 아픔의 존재조차 몰랐으면 좋겠다. 이기적이지만 아직까지도 이 마음을 잘 유지하기 위해 나 자신을 돌아보곤 한다. 내가 알고 있던 사랑의 정의를 고쳐 쓰게 해 준 사람들의 다정함을 생각해서라도, 내가 받은 사랑을 다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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