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게 있다는 건

by 정제이

나는 무언가에 깊게 집중하거나 빨리 끝내야 하는 일이 있으면 현악기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낭만주의 시대의 클래식 음악을 듣고, 영감을 받고 싶거나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고 싶을 때 그때그때 꽂히는 분위기의 팝을 듣는다. 음악 못지않게 술을 좋아해서 술을 마실 때 내 취향의 진가가 드러난다. 칵테일을 마실 땐 버번위스키를 베이스로 쓰는 칵테일을 선호하며, 가능하면 불릿(Bulleit) 또는 켄터키 산 버번위스키를 써 달라고 한다. 맥주는 홉이 적당이 은은하게 느껴지는 페일 에일을 좋아하고, 상큼하게 마시고 싶을 땐 사워비어도 종종 찾는다. 와인은 아르헨티나의 말벡, 호주의 시라즈, 뉴질랜드의 소비뇽 블랑이 있는지 찾아보고, 사케는 깔끔하고 부드럽지만 천천히 향이 쌓이는 준마이 다이긴조를 선호한다. 음악과 술뿐만 아니라 생활의 모든 부분에서 애초에 잘 쓰지 않을 것 같은 건 사지 않는다. 이렇게 나는 호불호가 확실한, 취향이 아니면 관심도 가지지 않는 '고상한' 인간이다.


예전에 누군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취향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건 뭘 좋아하는지 정확하게 아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싫어하는 게 무엇인지 아는 것이라고. 그만한 시간과 생각을 들였기에 비로소 그것이 취향이 되는 것이라고. 맞는 말이다. 클래식 음악이라 하면 자동으로 나오는 모차르트와 베토벤은 유명해서 싫다기 보단 교향곡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이 가능한 게 그렇게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버번위스키의 형제 같은 라이 위스키는 가벼운 바디감 때문에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같은 이유로 이탈리아와 프랑스 와인을 좋아하지 않는다. 술의 끝맛과 향이 혀와 코에서 맴돌지 않으면 술로서의 매력을 잘 못 느낀다. 사케는 막걸리와 비슷한 결인 니고리도 종종 마시지만 깔끔하게 끝나는 걸 좋아해서 준마이 다이긴조를 먼저 찾는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하다 보면 알게 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응당 취향이라는 게 내 관심이 끌리는 것이지 않은가. 무언가를 경험하다 보면 당연히 관심이 끌리는 게 갈리지 않나? 하지만 생각보다 '나 이런 것도 좋아하네, '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며 내가 호불호가 확실할 만큼 경험을 많이 했는지 새롭게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다. 여전히 이 부분은 이해가 잘 안 된다. 그렇게까지 공부를 했다거나 깊게 탐구한 것도 아니고 그냥 많이 해보고 깔짝 검색해서 알게 된 것뿐인데. 어쩌면 이것도 능력일지 모르겠다. 그나마 짐작을 해보자면 어릴 때부터 다른 사람들에 비해 감각이 예민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작은 소리에도 쉽게 놀라고,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향을 찾아 고개를 돌릴 때도 있고, 손에 무언가가 묻으면 질색한다. 감각에서 좋고 싫음이 확실하니 자연스럽게 취향이 확고해진 게 아닐까나,라는 어중간한 결론에 멈춰서 있다.


오늘은 바람 한 톨 없이, 하늘에 구름이 흐느적거리며 나지막이 흘러간 날이었다. 나른한 분위기의 팝을 들으며 맨해튼을 마시고 싶은, 그런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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