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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샤이욱 Aug 23. 2020

영업팀에서 쫓겨났습니다.

6개월 만에 두 번의 인사발령.

영업팀 → 신규 사업부 영업팀 → 신규 사업부 영업지원팀


흔치 않은 경험 아닐까요?

일을 못했냐고요?

.......... 네... 맞습니다.. 못했습니다..!


경력 입사 일주일 만에 경력은 저보다 많은 동기 2명과 신규 사업부 영업팀으로 인사발령을 받았습니다.

신규 사업부 영업팀은 총 10명으로 초기 편성되었고, 그중 신입사원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네, 제가 막내라는 얘기 맞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원년 멤버'의 자부심을 느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내심 기쁘기도 했습니다.


신규 사업부에서 일한다는 것은 상상 그 이상으로 쉽지 않았습니다.

천천히 준비를 한 사업부가 아니라 시장 선점을 위해 급하게 만든 사업부라서 모든 것을 새롭게 세팅해야 했습니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누구 하나 A부터 Z까지 정확하게 가르쳐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각자 공부를 통해 아이템에 대한 이해를 조금씩 하면서 영업을 진행하여야만 했습니다. 심지어 아이템을 소개하기 위한 브로슈어나 리플릿도 없었고, 있는 거라고는 영업사원 명함뿐이었습니다. 어찌 보면 경력직으로만 편성한 이유였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영업을 뒷받침하거나 관리를 할 수 있는 기존 자료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물론 타 부서의 자료나 전산을 벤치마킹할 수 있었지만 아이템의 성격이 워낙 다른 관계로 동일하게 사용할 수는 없었습니다. 누군가는 만들고 세팅을 해야 했습니다.

네.. 그 누구가 막내인 저였습니다.


'원년 멤버'의 자부심을 느끼기도 전에 살인적인 일정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본업이 영업이었는데 영업시간이 3시간도 되지 않았습니다. 영업 지역도 심지어 본사에서 1시간 반 거리였습니다.

길에서 없어지는 시간이 출퇴근 3시간과 영업 이동시간 3시간 총 6시간이었습니다.

더 아이러니한 것은 영업시간은 3시간도 되지 않았는데, 브로슈어 제작 참여하고 각종 문서 제작하는 등 사무업무 하는데 투입한 시간은 하루 3시간을 훌쩍 더 썼습니다.


영업 결과는 '안 봐도 비디오' 아니었을까요?

네, 3개월 차까지 유일하게 실적을 발생시키지 못했습니다... 그나마 4개월 차 맞이할 즈음 첫 계약을 성사시켰지만, 또 한동안 실적을 발생시킬 수 없었습니다.


직군이 영업직군인데 비중 높게 하는 업무는 사무 업무였던 저는 5개월 차부터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이 추세로 이어진다면 연말에 있을 KPI가 바닥을 찍을 것이 분명했습니다. 하지만 도움을 요청할 곳이 없는, 대안 없는 고민이어서 답답함이 이어졌고 별생각 없이 5개월 동안 회사를 다니면서 한 것을 나열해봤습니다.

1. (소규모) 계약 2건 성사

2. 영업 브로슈어 및 리플릿 제작

3. 매출 실적 관리 자료 제작

4. 재고 관리 자료 제작

5. 주간, 월간 실적 보고 자료 제작 등


영업에 관한 것은 하나, 나머지는 지원 부서에 해당하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나마도 짜내고 짜내서 A4용지 한 장에 쭉 적어 팀장을 겸직하고 있던 본부장에게 갔습니다. 그리고 최대한 불쌍하게 말했습니다.


"본부장님, 제가 지금 영업팀 일원으로서 기여한 내용이 한 줄입니다.."


본부장이 시원하게 웃더니 "잘 봤어" 한 마디 하고 나가보라고 하더라고요.

화장실에서 볼일 다 못 보고 나온 것 같은 엄청난 찝찝함이 있었지만, 어쩔 수 없이 자리를 나왔고 속으로 욕하며 똑같은 일상을 이어갔습니다.


한 달 후 저는 신규 사업부 영업지원팀으로 인사 발령을 받게 됩니다. 6개월 만에 두 번의 인사발령을 경험하게 된 거죠. 심지어 막내였던 제가 차석으로 전환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공식적으로 지원팀이 되자 영업만 안 했지 업무는 더욱 늘었습니다. 그래도 직군에 맞는 업무를 한다는 것, 제 역할에 맞는 일을 하고 그에 대한 평가를 공정하게 받을 수 있다는 것이 마음을 한결 가볍게 해 줬습니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연말 송년회 자리에서 본부장에게 물어봤습니다.


"본부장님, 저 영업지원팀으로 염두에 두고 계셨나요?"

"너 영업 못했잖아"


속으로 또 한 번 욕했습니다. '시간도 안 줬으면서 못했다고 하다니, 막내라고 나만 시켰으면서'

하지만 본부장 포함 영업팀 어느 누구도 저에게 실적으로 욕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브로슈어 만들어줘서 고마웠다, 매주 실적 취합하고 보고하느라 고생했다 격려해 줬습니다.


하지만 회사는 역시 회사였습니다.

그 해 연말 KPI는 영업팀 소속으로 평가받았고, 신규 사업부라는 점을 감안해 줬지만 실적 부진 사유로 암울한 성적을 받게 되었습니다. 억울했지만 받아들였고, 이 경험은 오히려 주먹을 꽉 지게 만드는 계기가 됩니다.


'그래, 영업은 못했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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