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책맞은 장난기에 대한 소심한 변론
시대는 바야흐로 흘러서 텍스트, 비디오, 이미지, 실시간 스트리밍 등 SNS로 소통하는 시대가 되었고, 나의 장난기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다양해져서 텍스트, 이미지, 비디오 영역을 막론하고 그 주책성을 넓혀가고 있다. 문제는 신체적으로 10년 전 젊었을 때와 달리 이성적 나이가 보다 우세한 지금, 주책을 떨고 난 후 나 스스로 감당을 하느냐에 달려있다.
이웃 글을 방문했으면 점잖게 글 읽고 나올 것이지, 뭐 좀 한번 즐겁게 웃겨 보겠다고 오로지 내 장단에 맞춰 댓글을 신나게 달고 나왔다. 댓글 등록이 되었으니 벌써 이웃님이 받았을 테고, 그럼 읽었을 텐데 이 시점에서부터 급격하게 후회가 밀려온다. 이젠 삭제도 못하고, 사과도 못하고..... 큰일 났다. 악의는 전혀 없지만, 무례함으로 받을 수도 있는 일이다.
주책을 부리고 난 어떤 날의 후회를 적은 글이다. 혼자 끙끙대며 속 시끄러운 며칠을 보냈다.
다른 댓글들을 보면 모두가 정중하고 진솔하고 예의 바르다. 이견을 남기는 사람은 없다. 그래야 하는데 나는 좀 다르고 싶었나 보다. 얼굴과 이름을 드러내지 않는 온라인 세계이니만큼 더 조심하고 예의를 지켜야 하는데, 장난과 유머의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것이 개성인 양 활보하다 내가 던진 돌멩이에 걸려 넘어진 꼴이 되고 말았다.
아~ 왜 이리 나잇값도 못하고 주책맞은 지!
친구에게 라일락 잎으로 운세를 봐주겠다며, 가로 세로 두 번을 접게 한다. 그런 다음 이빨로 세 번 깊게 깨물게 하고, 그 이빨의 자국에 따라 운세가 나타난다고 하면 모두가 따라 했다. 세 번을 깨문 아이들은 당장 얼굴을 찡그리며, '으악~ 퉤퉤! 써!' 하고는 뱉어 버렸고, 나는 그 모습이 우스워서 깔깔대며 웃곤 했다. 라일락 이파리의 쓴맛이 얼마나 오래가는지 씹어 본 사람은 안다.
친구는 내게 이런 장난을 쳤다.
창경원 연못에 오리 발바닥 청소를 하는 알바가 있는데 시급이 짭짤하며, 지금 모집 중이니 한번 가보라는 것이다. 오리 발바닥을 주기적으로 닦아주지 않으면 썩는다나!
그 말을 그대로 믿은 나는 창경원으로 가는 버스 번호와 어디로 누구를 찾아가면 되는지 물으며 당장에라도 달려갈 기세였다. 당황한 친구는,
'야, 그걸 믿냐! 오리 발바닥이 어떻게 썩어!' 하며 나를 막아 세웠다. 그때의 실망감이란!
함께 창경원에 가겠다며 나보다 더 큰 설렘을 드러낸 당시 내 짝은 그나마 내게 작은 위안이었다.
모두가 고등학생 시절의 이야기다.
이때는 혈기만 들끓는 십대였으니 앞뒤 못 가릴 정도로 철이 없었다고 하면 그만이다.
40년이 훨씬 지난 지금, 나의 순진무구했던 장난기는 에이징과 맞물리며 객기 어린 주책이 되었고, 그에 따른 쓰라린 자책감은 내 이성이 감당해야 할 몫이 되었다. 상대를 괴롭게 했던 어린 시절 라일락 쓴 맛을 이제는 쏙 빼버렸다고 나는 주장하지만, 그것은 오로지 나의 입장일 뿐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다를 수도 있겠다.
하여, 제 발 저린 심정으로 소심하게 적어본다.
혹시라도 나의 댓글이 무례하게 느껴진다면, 이 주책맞은 중늙은이를 용서해 주기 바란다고.
나 혼자만의 웃음이 아닌, 함께 잠시 웃어보는 글 세상을 원하기 때문인데, 이 조차도 주책이라면 할 말은 없다고.
대문 사진 출처: © hannahtasker, 출처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