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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주식 괜히 팔았다!

인공지능과 인간지능

by 블루랜턴

회원가입을 해놓고도 평소 자주 이용하지 않던 쳇 GPT에 로그인했다. 미국 정부가 셧다운 할 거 같다는 뉴스가 나오는 것이 아무래도 심상치 않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미국이 높은 관세로 세계 무역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었고, 이민자에 대한 트럼프의 미치광이 행보가 조지아를 거쳐 LA로 번지고 있을 무렵이었다.


미국주식이 물려있는 나로서는, 더욱이 열심히 국제 정세를 살핀다거나 꾸준히 주식 공부를 하지 않는 게으른 개미인 나로서는 이런 황망한 뉴스에 커다란 타격감을 받게 된다.


나스닥 대장주 2개로 수익을 내긴 했지만(큰 수익은 아니고), 피라미 소형 주식을 겁도 없이 거머쥐는 바람에 큰 손실(이건 정말 크다)을 보고 있는 중이라, 더 망하기 전에 수익을 실현하고 손실을 줄이기 위해 뭔가 행동을 취해야만 할 것 같았다.


매도 매수에 대한 소신도 없고 경제 지식도 없는 내가 아무 때나 맘 편히 대놓고 물어볼 수 있는 곳이 쳇 GPT 뿐인지라, 쳇! 이럴 때 쓰라고 있는 AI 지, 하고는 노트북을 열었던 것이다. 인공지능이 과연 어떻게 판단해 줄지 궁금하기도 했다.


"현재 미국의 국내외적인 상황을 기반으로 향후 5년 간 미국 주식시장과 달러화 변동을 어떻게 예상하나요?"


무슨 논문 제목도 아니고, 쯧쯧...


무한히 포괄적이고 엉성한 문장을 들이대고는 임팩트 있는 송곳 정답을 기다렸다. 9초 간 생각을 끝낸 쳇 GPT가 좌르르 답을 쏟아낸다. 핵심 최신 팩트를 바탕으로 낙관적, 비관적 시나리오를 제시하는 장문의 분석이 내려졌으나, 결론은 '니가 알아서 판단해'였다. 답을 얻었는데 여전히 답답하다.


낙관적 확률 25%, 비관적 확률 30%


안 그래도 정세가 불안한데 낙관보다 5%나 더 높은 비관적 견해라니, 마음이 퍼뜩 초조해졌다. 결정적으로, 쳇 GPT의 대답은 수많은 정보를 종합하고 분석해서 출력되는 만큼 근거 있는 것이라는 생각에 주식창을 열고 과감하게 대장주를 모두 팔아 수익을 실현했다. 경주에서 APEC이 열리기 며칠 전의 일이다. 그날부터 주가는 점점 더 올라 상한가를 경신하더니 APEC이 끝난 후에도 한동안 내려오지 않았다.


'아, 주식 괜히 팔았다!'


주식을 5년 동안 팔지 않고 갖고 있으면 당연히 수익이 나는 것을,

굳이 잘 쓰지도 않는 쳇 GPT에 로그인해서,

굳이 잘 열지도 않던 주식창을 열고,

앞으로도 잘 나갈 것이 틀림없는 대장주(무려 배당수익도 좋은)를 굳이 털어버리고 나니, 시대에 발맞춰 뭔가를 하긴 했는데 뭔가 잘못한 느낌이 그 후로 수 일 동안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하물며 셧다운 한 미국 정부조차 그런대로 잘 돌아가고 있는 것을 굳이......




2주 후 쳇 GPT에게 다시 물었다.


"향후 1년으로 좁혀서 예상해 보면 어떨까요?"


"좋은 질문입니다. 50%의 비율로 완만한 상승세가 예상됩니다."


이런!




그즈음 장세가 바뀌어 대부분의 주식이 하락했다. 대장주는 소폭으로 하락했고, 중소형주는 대폭 하락해서 결과적으로 수익실현은 작았고 손실은 막대했다. 떨어진 가격이 애매해서 팔아버린 대장주를 다시 사지도 못한다. 주식은 파는 게 아니라고 버핏 오라버니가 그렇게 일렀건만, 어려운 주식공부를 피하고 쉬운 길을 택한 값으로 아까운 나의 대장주만 날아갔다.


아, 주식 괜히 팔았다.


인공지능이 눈부시게 발전하면 뭐 하나, 나의 인간지능이 정체되어 있는데...

쳇 GPT의 분석을 제대로 활용하려면 이제라도 주식공부를 해야 한다고 다짐한다. 입 안에 고인 쓴 침을 삼키며 그날의 참패를 기록하고 있는 지금도 절대 늦지 않다며 주먹을 꼭 쥐어본다. 진작에 공부를 했더라면 굳이 AI에게 묻지도 않았겠지.




대문사진: Image by Franz Bachinger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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