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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똥파리'와 나의 아버지

아버지는 나에게 약점이다.

by 블루랜턴

아버지라는 단어를 보거나 혹은, 친구들의 다정한 아버지를 볼 때면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본 듯 마음이 불편하다. 그렇다. 아버지는 나에게 약점이다.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아빠'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의 칼 같은 생경함에 어린 나는 화들짝 놀래서 뒤를 돌아봤었다. 아마 대 여섯 살쯤이었을 것 같다. 내 또래의 여자아이가 자신의 아버지의 무등을 타고 '아빠!'라고 부르며 귀여운 목소리를 내었고, 그 아빠는 다정하게 받아 주었다.

한 번도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말해 본 적 없는 '아빠'라는 낯선 단어 아니, 있는지조차 몰랐던 그 생경한 단어를 그토록 자연스럽게 말하는 여자아이와, 단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아빠의 무등 타기에 심한 이질감을 느꼈었나 보다. 흥, 아빠가 뭐야! 아버지라고 해야지. 그들 부녀의 자연스럽고도 본능적인 밀접함에 나는 괜히 부아가 끓었고 샘이 났었나 보다. 그들의 얼굴은 기억에 없지만, 여자아이가 '아빠!' 했을 때의 목소리 톤과 분위기, 그리고 어린 내가 느꼈던 헛헛한 역겨움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한참이 지난 후에도 나는 아버지 이야기를 잘 꺼내지 않았다.




2008년에 만들어진 영화 '똥파리'

개봉 후 몇 년이 지난 어느 해 우연히 보게 되었고,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밖에서는 약자이지만 집 안에서는 군림하는 강자, 아버지의 무자비한 가정폭력과, 무방비 상태로 그저 견뎌야 하는 엄마와 자식들, 그럼에도 가족이라는 핏줄의 끈적함으로 아버지와의 관계를 떨쳐내지 못하는 '상훈'을 보며 아버지라는 존재와 가정의 역할을 생각했다.


영화 속 남의 가정 남의 아버지를 보며, 그에 비하면 별것도 아닌 나의 고통을 위로받은 듯했다.


-세상에는 저런 아버지도 있구나.

-아버지를 저렇게 대하는 자식도 있구나.

-저런 내용이 영화로 만들어지다니.


적나라한 욕설들과 거칠고 무자비한 폭력이 난무했지만, 영화는 묘하게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고, 아프고도 따뜻한 감동을 남겼다. 너무 사실 같은 영화를 보며, 영화의 감독과 주연을 맡았던 '양익준'이라는 사람에게 관심이 생겼다. 후에 알게 되었지만, 영화는 어린 시절 가정폭력을 겪었던 '양익준'의 실제 이야기라고 한다. 그는 13년째 공황장애를 앓고 있다. 아버지가 그에게 남긴 흔적이다.


양익준은 모든 것을 쏟아부어 영화를 만들면서

가슴에 묻었던 그늘을 걷어내고 어린 익준을 구해낸 듯하지만...

무참하게 행해진 가정폭력을 진한 가족애로 승화한 것 같아 보이지만...

그런 아버지의 모습이 그 시대에는 어쩔 수 없었던 것이라고 돌려서 말을 하지만...

그런 아버지의 가정폭력이 대물림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하였지만...

그의 가슴 한구석에는 힘없는 어린 양익준이 여전히 울고 있음을 안다.

인생 전부에 걸쳐 영향을 줄 만큼 어린아이들에게 미치는 '아버지의 영향력'은 막강한 것이다.


양익준(1975년생)

2002년 영화 '품행제로'로 배우 데뷔

2008년 영화 '똥파리'로 감독 데뷔

2009년 청룡영화제 신인남우상 수상

2009년 부일영화상 신인감독상 수상 등,

이외에도 영화 '똥파리'와 관련하여 다수의 수상 경력이 있다.

출처; 나무위키




영화 '똥파리'를 보고 난 이후로

나는 조금씩 나의 아버지를 객관화시킬 수 있었다.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아버지를, 이제는 남의 아버지 말하듯 무덤덤하게 말할 수도 있게 되었다. 여전히 가슴 한구석이 편하지 않지만, 아버지를 그냥 하나의 인간상으로 여기기까지 50여 년의 시간이 걸렸다.


내가 어쩔 수 없는 심정으로 짊어지고 있던

아버지에 대한 어두운 기억을 들춰낼 수 있도록, 그리고 내가 그나마 편하게 나라는 존재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영화 '똥파리'와, 상처를 들춰내고 쑤셔대는 아픔을 무릅쓰며 이 영화를 만든 양익준 님에게도 고마움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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