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이 일제히 하늘을 향하고 있을 때가 좋았다. 그 앞에 서면 저절로 경건해지고 설레기까지 했으니까..
잘 단련된 군무처럼 한 송이도 일탈 없이 저렇게 한 방향만을 가리킬 수가 있을까, 경외의 마음으로 오싹 소름이 돋곤 했다. 합장한 채 너 잘 돼라 잘 돼야 해, 나의 안녕을 바라는 염원 같아서 내게는 조건 없는 사랑 그 이상의 무엇이었다.
손을 모으는 것은 마음을 모으는 일, 기도와 다름없다. 조건이 없다는 게 유일한 조건인 듯 '그저 잘 되기만을 바란다'는 내 엄마를 닮았다. 어설픈 데로 아이들을 바라보는 내 마음이기도 했다. 서로를 우리를 식물을 동물을, 온 우주의 평안을 위해, 서로의 불신을 파멸을 믿음과 생성으로 도모해 가는 기도.. 기도 속에는 열등과 하등이 있을 수 없어서 좋다.
나로호처럼 간절한 기도 한 발 쏘아 올리고는 소임을 다한 듯 이제 됐다 정해진 수순으로 활짝 폈다. 청초하고 기품 있게 피어서 아껴 보고 있었다. 너무 간절한 기도에 기력을 다 소진했는지 소소리 바람도 이겨내지 못하고 후루룩 지기 시작한다. 꽃이나 사람이나 피고 지는 시기는 저마다 다르긴 하지만 남들 한창 필 때 저 혼자 저버리는 것은 이율배반 같았다. 더구나 검게 타들어 가듯 지는 모습은 처연하기까지 하니...
사랑을 믿는가? 얼핏 조롱하는 것도 같다. 처음 청순, 고고하게 피었을 때는 누구나가 사랑스럽게 쳐다보지만 지는 내 모습을 보고도 여전히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되묻는 것 같다. 무한 사랑을 받고서도, 경외한다고 까지 해놓고도 우물쭈물 머뭇거린다. 받는 마음과 주는 마음이 다르다. 보는 것과 보이는 것이 다르듯이..
3월 내내 전쟁이 끝나기만을 기도했다. 4월이 돼서도 만우절처럼 언제 전쟁이 있었던가 해 주길 바랐다. 그게 단순히 내 밥상의 가짓수를 줄여서만도, 행여 장거리 여행을 기름값을 이유로 미루게 되는 것만도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 수출을 걱정하는 애국도 뭣도 아니다. 다만 소멸에서 생성으로 가는 길이 얼마나 고단하고 희박한 지를, 그 앞에 재건이란 말이 제 뜻을 담지 못하고 더 이상 건설적이지 않아서 일 것이다.
목련이 속절없이 지는 것도, 잎 진 채 저렇게 검버섯처럼 타들어가는 것도 언제 끝날 지도 모르는 전쟁 앞에 기도가 무산 돼버린 듯 안타까움 때문은 아닐까? 잎 진 자리에 더 풍성한 내년을 기약하듯, 간절한 기도는 조금 더딜 뿐 이루어질 것이어서 더 애태우지 말고 훠이훠이 잘 가요. 그리고 내년에 또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