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리가 났~네

by 김하정

봄바람은 가을바람 같지 않다. 좀처럼 한 방향으로 흐르는 법이 없다. 순풍으로 시작했으면 순풍으로, 거칠게 시작했다고 거칠게 끝나는 것도 아니라서 강약, 세기조차도 예측할 수 없다. 이쪽에서 부는가 싶으면 저쪽에서 불어오고 훅 다가왔다가 싹 멀어지기를 신출귀몰 도깨비 같다. 와글와글 초등학생들이 와~ 하고 달려오다가 금세 학원 가야 한다고 뿔뿔이 흩어지는 것 같다.


바람이라고 다 같은 바람인가? 가을 겨울과 한데 뭉뚱그려지는 것을 거부한다. 앞에 '봄'자만 달면 다 저럴까 의기양양, 한결같지 않은 것도 한결같다. 여우 같은 마누라는 봐도 곰 같은 마누라는 보기 어렵다는 옛말에 빗대어 단연 여우이기를 자처하는 모양새다. 그렇게 쉽게 읽힐 것 같았으면 봄바람이 아니란다. 하루 24시간 안에 아침저녁, 낮과 밤이 있듯이 한 색깔 한 방향이면 심심하지 않겠느냐고, 그래 마냥 모범생 같으면 재미없기도 하지 쉽게 설득당하고 만다.


저 단독으로 감행하는 것 같다가도 어느새 햇살과 아삼육이 되어 따로 또 같이 콜라보를 이룬다. 하늘과도 연개 하여 세상 나긋나긋하다가 돌연 비를 받아 반항아처럼 함께 휩쓸리기도 하는 것이 바람인데 인간미가 있다. 바람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혼자 살 수 없는 법이라 상생할 줄 알아야 한단다. 자꾸 동굴 속으로 숨어드는 내게 자꾸 어울리라고 넌지시 훈계하기를 잊지 않는다. '그래, 그럴 거야, 노력 중이야'


달리 "봄바람 흩날리며~" 겠는가. 벚꽃도 봄바람에 흩날려야 더욱 산발적으로 고루 흩어질 것이고 사람의 마음 또한 산발적으로 흐트러서 무슨 일이든 이참에 한 번 저질러 보게 되는 것이겠지. 다른 계절과 마찬가지로 매번 돌고 돌뿐인데도 유독 봄만 새봄이고 보는 것(새 가을, 새 겨울 하지 않듯이)도 한해의 시작점이라고 치고 새롭게 시작하고픈 사람들의 염원 같은 것이겠지.


내게도 예외는 없어서 이 좋은 날에 가만있으면 안 되지, 자꾸 다시 시작해 보라고 성가시게 군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 어디 있냐, 당장 보이지 않아도 꾸준히 하다 보면 드러나기 마련이다.'라고 듣고 싶은 데로 속삭여 준다. 이럴 때는 쉽게 말 걸기 어려웠는데 생각보다 살가운 데가 있는 옆짝꿍 같다. 듣는 둥 마는 둥 꿈쩍 하지 않으면 '너 그럴 줄 알았다. 뭘 바라겠니' 충격 요법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것도 이겨낼 힘이 없냐고 맞바람 치다가 금세 등뒤로 가서 여기까지 오느라고 애썼다고 밀어주며 어르고 달래는 것도 잊지 않는다. 네 마음 다 안다 다독이다가도 그렇게 약해서 세상 어떻게 살려느냐고 너 알아서 해 순식간에 내치기를.. 야멸차기가 그지없는 것도 봄바람의 일이다. 늘 주변머리 없는 나 같은 사람들, 용기 없어 시작도 못해보고 있는 이들에게 지금 안 하면 언제 하겠냐고 부추기는 일도 네 일이고 보면 너도 참 고단하겠다. 속 그만 썩여야겠구나 처음으로 안쓰럽다.


사람이 이렇게 변화무쌍하면 다신 안 보고 말 것 같은데 그조차 나를 위한 일이고 보면 고마울 따름이다. 잔뜩 헤집어 놓았다가 돌아서 헤살 궂으면 눈 녹듯 금세 따라 웃게 된다. 순풍으로 속눈썹을 간지럽혔다가 스웨터 사이사이로 파고들어 오싹하게 엄습해 오면 오만 정 다 떨어지게 진절머리 나는 것도 사실이다. 이쯤 되면 결단을 내릴 법도 하다. 다시는 얼씬거리지 말라고 벼르다가도 너의 부추김이 없었으면 이만큼도 나서지 못했을 것을 안다.


그렇지 않아도 애교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내게는 그마저 재능 같아서 부러워진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고 '그러긴 해' 용서랄 게 따로 없다. 거기에 더해서 봄바람처럼 살랑대보고 싶고 비와 함께 몰아쳐보고 싶고 좋은 일이면 남의 일에 참견도 해보고 싶어 지니 헤어날 길이 없다. 이래저래 봄바람의 영향으로 어떤 식으로든 저지르고 볼 것 같다.


이러고 보면 바람 저희끼리 밀고 당긴 줄 알았는데 사실은 나와 봄바람의 밀당이었다. 봄바람과 내가 아라리가 나고 말았다. 하던 것을 계속해야 하나, 아니면 새로운 일을 찾아 나서야 되나 할 때마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어르고 달랜다. 그것도 못하냐고 다그쳤다가 내 그럴 줄았다고 내놓고 실망하기도 하면서 나를 단련시켜 주는 것도 봄바람인 것 같다.


옛정을 생각해서 너는 할 수 있을 거라고 용기도 주고 지켜봐 주는 제법 의리도 있는 천의 얼굴 봄바람이다. 티키타카 설레고 좌절하고, 아리고 쓰려가며 봄바람과 내가 제대로 아라리가 났네. 아라리가 나다 보면 이 봄이 끝날쯤엔 한가닥 실마리가 생겨나겠지 싶다.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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