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하고 낭만적인 나의 이야기
운명은 결과가 아닌 과정이야. 그건 세상의 끝에 자라난 새싹이 아니라 사람들이 산과 들, 바다와 강을 지나 낙원으로 향하는 길에 직접 만나게 되는 정해지지 않은 길이야. 그 과정에서 우린 끝없는 고민을 해. 태양이 모습을 감추고 긴 밤이 찾아오면 불안한 미래와 영원하지 않을 지금에 두려움을 느끼며 끝없는 고민과 함께 새벽녘을 보내곤 해. 하지만 그럼에도 다시 동이 트면 발걸음을 내디뎌야 해. 멈춰 서게 된다면 우리는 등 뒤에 있는 어두운 밤에 남겨지겠지만 다시 여정을 떠나는 우리는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을 거야. 지금까지 그렇게 서사를 써 내려가며 언젠가는 떠오를 아침 해와 새로운 내일이 가져다줄 미래를 동경해 왔잖아.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 있다고 해도 그건 내일에 맡기고 우리는 계속 나아가야 하는 존재인 거야.
먼 훗날에 돌아본다면 찰나인 순간이겠지만, 지금의 나에겐 결코 짧지 않은 시간 속에서 난 많은 걸 느끼고 받아들였어. 처음에는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위해 떠올린 말이었지만, 이제는 나 스스로에게도 해 줄 때가 된 것 같은 말들이 있어.
누군가와 함께 만든 유리잔이 깨지면 그걸 다시 이어 붙이는 건 불가능한 일이야. 한 번 깨져버린 유리는 어떻게 붙여도 다시 쉽게 금이 가고 물이 새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그 누군가와 함께 새로운 유리잔을 다시 만든다면 어떨까? 그건 분명 처음에 만들었던 유리잔과 같을 수는 없을 거야. 어쩌면 처음의 모양이 더 마음에 들 수도 있을 테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가장 중요한 본질은 이거였어. 결국 한 번 변화를 맞이한 인연은 과거로 돌아갈 수 없어. 하지만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갈 수는 있지. 그게 설령 과거의 그 모습이 아니라고 해도 말이야. 관계에 있어서 돌아가려 하지 말고 새롭게 나아가려 해야 해. 언젠가는 두 번째 이야기가 첫 번째 이야기보다 아름답고 낭만적이라는 생각이 드는 날이 올 거라 바라면서 뒤를 돌아보지 않는 거야.
나쁜 일이 생기면 그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는 사람들이 있어. 자신을 되돌아보고 그 원인을 찾아 보완할 수 있다면 좋은 습관일 수도 있어. 하지만 세상에는 꼭 내가 잘못을 해서 내게 나쁜 일이 생기는 것만은 아니더라. 세상의 악한 일에게는 누군가를 알아볼 수 있는 능력이 없어. 무언가를 볼 수도 없고, 무언가를 들을 수도, 느낄 수도 없는 그 악은 그냥 누구에게든 붙을 수 있는 거야. 그 일들은 나라서 일어나는 게 아니라 그냥 일어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거지. 그러니까 매 순간 자책할 필요는 없어. 우리에게 부족했던 건 그저 악인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는 힘이었던 거야. 수많은 나쁜 일을 겪은 끝에는 결국 새로운 선한 사람이 나타날 거야. 그날이 오면 우린 못 다했던 선행을 그 사람에게 해주면 돼. 아직 때가 되지 않은 것뿐이야.
사람들은 과거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기도 해. 실패한 기억의 늪에서 가라앉기도 하고, 지난 시간의 사진 속에 갇혀 그 틀을 깨지 못하기도 하지. 지나간 과거는 중요하지 않다는 말도 있지만 받아들이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은 말이야. 내 손을 떠난 기억은 더 이상 내가 조절할 수 없는 거니까. 그러니 기억해야 해. 아팠던 일들은 분명한 내 과거야. 하지만 미래는 아니야.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것은 돌이키지 못하는 과거가 있음에도 그걸 제대로 마주하고 품어낸 뒤 다시 앞으로 나아가는 결심이라고 생각해.
우울하고 피곤한 날들이 있지. 괜히 가까운 사람을 붙잡고 투정 부리고 싶고, 결론이 나오지 않을 만한 문제인데도 오랜 시간 동안 앓기도 하고. 그럴 땐 생각을 멈추는 게 좋은 것 같아. 우울하고 피곤할 때 드는 생각들은 내가 하는 생각이 아니야. 우울과 피곤이 하는 생각이니 그건 우리에게 있어 불협화음과도 같은 거지. 그 멜로디에 귀를 기울여서는 안 돼.
우리는 우리 안의 모든 구름을 안고, 그 위로 다시 떠오르는 태양을 기다려야 해. 내 품의 그 구름은 부드럽고 폭신한 구름일 수도 있고, 비를 잔뜩 머금어 무겁고 축축한 먹구름일 수도 있어. 그럼에도 우린 알고 있잖아. 빛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내게도 분명 외면하고 싶은 과거와 기억이 있어. 난 그것과 이별하지 않을 거야. 그 모든 시간을 품고 앞으로 나아갈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