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물결의 이야기

분노하고 증오하는 나의 이야기

by 아스트라나

난 심연의 밑바닥에서 인간의 민낯을 보게 되면서 모든 게 거짓뿐인 허울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어. 이 분노는 뼈에 깊이 새겨졌어. 절대로 사그라들지 않아. 인간은 믿을 수 없고, 운명은 증오를 불러일으켜. 세상의 모든 것을 부정하고 파멸하고 싶은 마음이야. 나는 더 이상 세상에 물들지 않고 인간의 열등한 감정에 얽매이지 않을 거야. 두려워할 필요 없어. 이 고통은 순식간에 끝나버리고 말 거니까.

인연으로 피해를 본다는 것은 진실 없는 존재에게 진심을 쏟아부은 대가를 받는 형벌이라고 했던가. 그래, 누군가 나를 한 번 배신했다면 그건 그 사람이 악한 거겠지. 하지만 두 번 배신당했다면, 그건 내가 나약하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야. 믿었던 것이 아닌 믿고 싶었던 마음으로 진실을 외면한 그 기억은 결국 이렇게 내게 돌아오는 거야. 누군가에게 시간을 들인다는 것은 다시 돌려받지 못할 삶의 일부를 주는 거야. 그만큼 신중해야 하는 일이지. 내 손을 떠난 그 조각을 놓는다는 건 단순한 포기가 아니니까. 그건 내 과거를 부정하는 일이자 과거를 뒤트는 거야. 쉬운 일도 아니고 그에 따르는 대가도 상당하지.

인간 본성의 약점은 타인이 구원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역설적이게도 타인에게 호감을 받고 싶어 하는 게 인간의 가장 큰 약점이지만. 이 파괴된 시대에서 인간은 인간을 사랑할 수 있을까? 어느 순간부터는 사랑이라는 거 자체가 유치한 망상이라고 느껴졌어. 마음이라는 게 꼭 예쁘고 고결한 건 아닐 수도 있어. 인간은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라면 뭐든 하는 족속들이야. 설령 그게 타인의 목숨을 대가로 하는 일이라고 해도 인간은 망설이지 않아. 자신이 생각한 말을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같은 건 고려하지 않고 뱉어야만 하는 존재이며, 자신의 기쁨 앞에서 남의 불행은 그저 자신을 더욱 빛나게 해주는 도구에 불과해. 그게 인간이야. 이미 다들 알고 있잖아. 가장 깊은 상처를 주는 건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라는 걸.

난 영원이라는 단어를 좋아했어. 동시에 어릴 때부터 의문은 멈추지 않았지. 영원한 건 없다고들 하면서 왜 영원이라는 단어를 만들어낸 건지. 어째서 사람들은 존재하지 않는 걸 그리워하고 갈망하는 건지. 이제야 알겠어. 영원한 게 없다는 사실. 그거 하나만이 영원해. 이걸 느끼기까지 너무 긴 시간이 걸렸어. 꿈이 부서진다는 게 이런 느낌이구나. 마음속에서 어떤 끈이 맥없이 끊어지는 느낌이었어. 이걸 느끼기 전의 나로는 두 번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뜻이겠지.

행복, 사랑, 평화. 인간의 본능에 새겨진 강력한 욕망이야. 다른 욕망과 다를 게 없어 보이지만 본능에 깊이 각인된 만큼 이걸 포기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지. 하지만 이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야. 그냥 어쩔 수 없는 거지. 모든 사람이 행복과 가까워질 수는 없어. 사랑과 평화도 마찬가지야. 세상은 원래 그런 거니까. 행복할 수 없어도, 사랑받을 수 없어도, 평화를 찾지 못해도 저마다의 의미를 지닐 수 있을까. 그건 아직 모르겠어. 힘든 일이겠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면 내가 이렇게 답을 찾지 못하지도 않았을 테니까.

내가 외롭지 않았다면 가면 갈수록 멀어지고 좁아지는 이 길에 오르지 않아도 괜찮았겠지. 하지만 사람은 과거로부터 만들어져.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그만큼 아주 많은 일을 해냈다는 것이기도 해. 슬퍼할 필요 없어. 난 더 이상 슬프다고 느끼지 않으니까.